[김정숙의 제주신화 이야기] (54) 가믄장 여성

세상은 다양함 속에서 가벼워졌고 가까워졌다.


가믄장 여성들의 입장과 기질은 단호하고 완강하다. 부모, 남편, 자식, 주위의 반대, 회유나 방해, 무시에도 그러하다. 자신의 입장을 고수하기 위해 부모와 절연하며, 반대편에 서서 그녀를 우롱했던 언니들에게 가차 없이 보복을 했던 가믄장 여신처럼 그녀는 복잡하게 얽혀있는 관계를 단호하게 끊어버린다.


이런 단호함의 원인은 부당함에 대한 저항이겠지만, 너무나도 확고한 하나의 신념은 사람과 사물들의 중층적인 관계를 흑백논리의 단순함으로 풀어버리는 아쉬움을 남길 수 있다.


과잉 가믄장아기 여성은 사소한 감정적 교환을 주고받는 일은 낭비라고 생각하는 모습을 가진다. 인내, 수용적인 태도, 섬세함, 동정심, 양보와 희생 등 전통적으로 여성의 미덕이라고 여겨지는 것에 대해 단호히 거부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사회의 전통이나, 표준적 가치가 되어 왔다는 것은 이미 권력을 획득한 것들이고, 여성차별과 배제를 위해 복무해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바지를 입고 안팎을 뛰어다니며 성취해낸 가믄장 여성의 페미니즘은 슈퍼우먼 콤플렉스와 자신에게 내재된 자연스러운 여성성을 돌보지 못하는 오류를 낳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남성적인 가치만이 존중되는 사회에서 여성성의 전복을 통해야만 가능했던, 적어도 적확한 선택의 과정이었다.


학교 교육도 받지 못한 채 생산현장으로 나가 돈을 벌고, 거칠고 무서운 여자라는 손가락질을 받으면서 여성의 권리를 위해 애쓰고, 맨땅에 헤딩하고 바늘귀를 통과하며 남성 이상의 성취를 이루어나갔던, 사내 같은 가믄장 여성들의 부단한 정진에 의해 전반적인 여성의 힘과 권리가 획득되어왔다는 점을 간과할 수는 없다.   

 

▲ <나의 페미니즘> 도미니크 카도나 감독(출처/ 제13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나는 여성주의자인가, 아닌가…? 페미니즘 내부의 차이와 다양함에 대해 느낄 수 있는 다큐멘터리

세상은 다양함 속에서 가벼워졌고 가까워졌다.

나라를 구하지 않아도 위대한 발명을 하지 않고도, 영웅은 도처에 나타나고 있다. 잘 살아온 꼰대들에 지겨워하고 예외적으로 살아온 삶의 영웅성이 회자된다. 젊은이들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아 온 기성세대들의 한계에 메시지를 던지며 자신에게 정확히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구체적인 즐거움을 찾으려 소비를 즐긴다. 연예인들은 가장 각광받는다. 무엇보다 돈과 외모가 자신을 만족시키는 요소가 되고 있다. 대의명분, 광장의 대오, 지휘보다는 자신의 개성과 기호, 불규칙한 모임과 소통을 원한다.

자신과의 관련성 여부에 따라 사회적인 문제, 갈등에 무관심하게 되기도 적극적이 되기도  한다. 


인종차별이나 여성차별이란 개념들은 이제 개인 소양에 타격을 주는 부끄러운 일로 인식되고 있다. 여성 문제 역시도 개인적 차원의 문제로 귀결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억압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이 정도는 봉사와 원조, 배려를 베푸는 개개인의 풍요와 소양에 의해 지나갈만한 것이 되었다.


여성에 대한 사회구조적인 억압이 개인적으로 해결되려 하는 경향을 띠고 있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닐 것이다. 다만 상상을 초월한 부패와 천박한 차별이 더욱 첨예하게 진행되는 구조 내에서, 적어도 교양 있게 사람들과 교제하고 자유롭게 자신의 일상들에 대한 선택을 하면서 살 수 있을 정도의 부와 소양을 가지는 여성만이 그런 범주에 속할 수 있다는 것을, 해결이라고 할 수는 없다. /김정숙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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