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정국/릴레이칼럼(3)]어찌 분노하고 울부짖지 않을 수 있나

‘쿠데타’란 사전적으로 “무력을 사용한 비합법적 수단으로 정권을 탈취함”를 의미한다.  '국가에 대한 일격'이라는 뜻이며, 일반적으로 일부 지배계급이 자기권력을 더 확장하기 위하여 또는 다른 부분이 가진 권력을 빼앗기 위하여 이루어진다.

역사상 유명한 쿠데타는 프랑스의 B. 나폴레옹(나폴레옹 1세)·L. 나폴레옹(나폴레옹 3세)이 행한 쿠데타이다.

나폴레옹 1세는 1799년 11월 9일 무력으로 의회를 급습하여 총재정부를 타도하고 스스로 제 1 집정이 되었다가 황제가 되어 독재적 지위에 올랐다. 1851년 나폴레옹 3세는 무력으로 의회를 해산하고 지위를 강화하여 제정(帝政)의 길을 열었다. 이 두 경우는 모두 무력을 사용하여 비합법적으로 권력을 빼앗아 제정을 확립하고 독재체제를 확립한 것이다.

제 1 차세계대전 후 쿠테타로는 1922년 이탈리아 B. 무솔리니가 로마진군으로 정권을 빼앗아 파시스트 독재정권을 수립한 것이 유명하다. 제 2 차세계대전 후에는 제 3 세계 여러 나라에서 쿠데타가 자주 일어났다.

독립 후에도 제 3 세계 여러 나라는 제국주의로부터의 경제적 종속구조를 벗어나지 못하여 빈곤과 기아상태가 계속되었고, 다국적기업에 의존한 개발로 농촌은 황폐화, 도시는 빈민화되는 등 여러 가지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고 민중의 불만을 증대시켜 왔다. 이때 민중운동이 힘을 발휘하여 현상을 타개하지 못할 경우 유일하게 조직된 세력을 가진 군대가 쿠데타를 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경우는 민중운동을 가로막기 위한 반동적 쿠데타가 통례이지만, 민중지지가 뒷받침된 급진적 장교들의 진보적 쿠테타도 많이 일어나고 있다.

박정희 대통령조차 체육관 선거의 다수결을 민주주의라 하지 않았다

▲ 밀고 당기는 싸움이 벌어졌다.

'의회쿠데타'란 무력 대신에 '다수결이라는 합법적 수단으로 정권을 탈취함'을 의미한다. 혹자들은 '다수결'이라는 말과 '민주주의'를 동의어로 쓰려고도 하나, 그것은 결코 옳지 않다.

'다수결=민주주의'이기 위해서는 '='의 대목이 매우 중요하다. '='가 어떤 내용으로 채워지느냐에 따라 그것은 옳기도 하고 그르기도 하다. 이를테면, 유신 때 체육관에서 대통령을 선거했을 때 분명 다수결이었다. 그런데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자신의 '다수결'을 결코 '민주주의'라 강변하지 않았다. 유정회를 만들어 '다수결'로 매사를 밀어부친 그는 그것을 민주주의라 정당화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말을 썼다. 일말의 양심이 있었음인가?

역사는 발전하지만 않고 퇴보하기도 함을 우리는 현실에서 목도하고 있다. '다수결=민주주의'! 자타가 공인하는 천하의 독재자 박정희도 차마 주장하지 못했던 '다수결=민주주의'를 21세기의 대한민국의 내로라 하는 언론들, 그리고 야당당수와 국회의장, 그리고 현아무개의원은 잘도 써댄다. 다수결로 했으니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2004.3.12에 백주에 대한민국 의회에서 벌어진 사태를 민주주의의 승리라 한다면 나는 차라리 민주주의가 열 번 백 번 패배하기를 바라겠다. 그것은 다수결일지언정 민주주의는 아니다.

국회의원 자신들이 한 일이 무조건 옳다고 강변한다면 그건 과대망상이다  

▲ 박관용 의장이 국회 경호요원의 경호를 받으며 의장석에 오르려 하고 있다.
'국회의원=국민', 이 관계도 '다수결=민주주의'와 같은 맥락에서 따져볼 수 있다. 역시 '='의 내용이 중요하다. 국회의원이 민의를 대변하고자 하면 일단 '국회의원=국민”'라는 말을 쓸 수 있다.

그러나 한나라의 최병렬이나 홍사덕, 혹은 민주당의 조순형이 생각하듯이, 국민들이 대통령을 탄핵한 야당을 비난하는 게 홍보가 잘못되거나 여론이 조작되거나 언론이 잘못 보도하기 때문에 그러는 것이므로 그들의 반대여론이 70%든 80%든 우리가 한 게 옳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국회의원=국민'이라는 말을 쓰는 것은 재고해볼 필요가 있다.

본래 국민 여론이 어떻든 국민들이 뽑은 국회의원들이 한 일이기 때문에 국민들은 국회의원들이 한 일을,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졌든 옳다고 지지해야 한다고 강변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자아분열 혹은 과대망상이나 매 한가지이다.

물론 국민들에 의해서 뽑히긴 하였으나 국회의원들이 매사에 국민여론을 반영하기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지역적으로 뽑히긴 하였으나 전국적인 견지에서 논하고 판단하고 선택해야 하는 일들이 있을 수 있으며 역사적으로 그것은 타당성을 입증받기도 한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그것은 '정의' 혹은 '보편적 진리'가 뒷받침해주고 있어야 한다.

'보편적 진리'를 반영하지 않은 '합법'은 결코 정당하지 않다

 

▲ 국회 경비요원들이 박관용 의장을 보호하고 있다.
'합법적인 절차'를 밟았으므로 대통령 탄핵이 정당하다고 강변하는 이들이 있다. 법은 절차이다. 그러나 그 법이 '정의' 혹은 '보편적 진리'를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면 그 법은 '합법적'일지는 모르나 정당하지는 않다.

이를테면, 역사적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합법적'으로 고통을 당하고 죽음을 당하고.... 일제시대, 그리고 유신독재시대의 희생자들... 그들은 대부분 다른 게 아니라 '법'의 이름으로 고통을 당하고 죽음을 당했다.

'“법에 따른 절차' 자체가 그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할 수 없다는 의미이다. 한나라의 최병렬은 이렇게 공갈했던 것으로 언론은 전한다. “탄핵에 반대하면 공천을 주지 않고 출당시키겠다.” 그것은 그들이 주장하는 '합법적인 절차에 의한 다수결'이 민주주의도 아니고 정당하지도 못함을 명백하게 입증한다.

공천을 주지 않겠다는 이야기는 선거를 앞둔 국회의원에게는 사약과도 같다. “너 죽을래, 찬성할래?” 이러고도 '합법적인 절차'가 스스로 민주주의의 필요충분조건이라고 할 터인가?

인류의 역사는 민주주의와 사회정의, 그리고 개인의 인권을 위한 투쟁의 기록이다. '다수결'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국회의 횡포를 목격했으면서도, “자, 이제 조용히 법의 판결을 기다리자”고 한다면 그게 어디 온전하게 민주주의를 누릴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분노하고 절망하고 고통으로 울부짖지 않는다면 건강한 역사를 가꾸어 나갈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의회가 다수결의 이름으로 정권을 탈취코자 하는 행위를 “의회쿠데타”라고 이름짓지 못한다면 그럼 뭐라 불러야 할까?

그렇다. 인류보편의 사전에 '의회쿠데타'란 말은 없다. 그러나 한민족은 창조적인 민족이 아니더냐? 인류사에 없는 새로운 일을 저지르고 그것에 걸맞는 새로운 이름을 갖는 일, 그것도 창조가 아니겠더냐? 의회와 쿠데타는 논리적 모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질러진 일인 걸 나보고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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