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평] 안슬기 감독의 '다섯은 너무 많아'

동거는 괜히 시작돼었나? 같이 살아야지..

깊어 가는 가을의 쓸쓸함은 저녁으로 이어져 외로운 한 낮을 잊고 싶어 한다. 그러한 저녁일수록 사람이 그리운 법. 뜨거운 국물에 소주잔을 기울일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필시 매우 행복한 사람이다. 사람은 사람과 함께 살아야 한다. 그것이 인간-人間 아니겠는가?
어제의 한 낮도 그러한 시간이었다. 태양과 점점 더 멀어지면서 겨울로 접어드는 지구 북반구의 한 낮은 짧고, 음침하다. 곧이어 찾아드는 저녁을 맞아, 그곳으로 갔다.

# 무료시사회
아트플러스네트워크인 프리머스시네마 5관에서 안슬기 감독의 “다섯은 너무 많아” 시사회가 열렸다. 공짜로 영화 볼 수 있는 기회이다. 많은 사람들이 찾을 줄 알았지만, 영화가 시작될 즈음에 주위를 둘러보니 10여명 밖에 되지 않았다. 본 상영을 할 때는 얼마나 될런지...

대학에 다닐 때, 이러한 예술영화전용극장에서 영화를 자주 봤었다. 보통은 5명 정도가 관객석을 채우고 있었다. 가장 많았을 때도 12명이었다. 그런 영화일수록 이해하기 힘들고, 졸음이 쏟아진다. 그러나 이번 영화는 그게 아니었다. 정말 즐겁게 영화를 보았다. 아주 재밌는 영화다.

   
# 시내와 동규
시내는 도시락 전문점에서 일하는 30살 노처녀이다. 그곳에 가출청소년 동규가 간다. 일회용품을 사용하는 곳을 신고하면 포상을 준다는 공지를 보고, 혹하는 마음에 편의점에서 카메라까지 훔쳐서 그런 곳을 기웃거리는 것이다.

도시락을 사들고, 밖으로 나와서 아주 잽싸게 사진을 찍는데, 그 모습을 시내가 본다. 그것을 가만두고 볼 수 없는 시내는 밖으로 나와 도망가는 동규를 쫓아간다. 도망가는 카파라치(?)를 잡기위해 던진 돌이 우연히 그의 머리에 정통으로 맞게 된다. 허걱!

어쩔 수없이 시내는 동규를 자신의 방으로 데려온다.
동규는 방에서 일어나, 일을 마치고 돌아온 시내에게 아무 기억도 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시내가 돌을 던진 것은 기억한다면서... 그렇게 그 둘의 동거(?)는 시작된다.

# 영희와 만수
휴일을 맞아, 시내는 동규의 집을 찾아다니다, 밥을 먹으러 한 분식점에 들른다. 그곳에서 사장 만수는 연변에서 온 영희에게 5달치 월급이 밀렸음에도, 큰 소리 치면서 돈을 못준다는 장면을 보게 된다.

며칠 후, 버스정류장에서 혼자 울고 있는 영희를 발견한 시내는, 그녀를 자신의 방에 데려온다. 그리고 동규와 함께 악덕업주(?) 만수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의 분식점에 쥐새끼를 풀어놓는다.

그러나, 만수에게도 사정은 있었다. 그도 식당 월세가 5달이나 밀려있었고, 쥐 소동으로 인해 손님이 뚝 끊겨버려 길거리로 나앉게 되어버렸다. 불쌍한 만수를 영희와 동규는 시내의 방으로 데리고 온다. 이렇게해서 시내, 동규, 영희, 만수는 조그만 방에서 함께 생활을 시작한다.

# 가족의 해체와 재형성
도시락집에서 번 돈의 대부분을 집에 부치던 성실한 딸 시내는, 이번 달에 들어온 월급을 집으로 보내지 않는다. 딸에게서 매달 오는 돈이 들어오지 않자, 그의 엄마는 딸의 방까지 찾아와서 돈을 주라고 요구한다. 그러자 시내는 강하게 거부하고, 방에서 나가라고 한다. 이렇게 시내는 그녀의 가족과 이별한다.

동규도 마찬가지다. 집에서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살던 동규도 집이 싫어 가출했지만, 시내는 다시 그를 집으로 돌려보낸다. 그러나 그날 밤, 잠을 자던 동규는 다시 집에서 나와버린다. 그리고 시내의 방으로 향한다.

연변처녀 영희 또한 위장결혼을 통해 한국으로 왔지만, 어느 곳에도 갈 곳은 없다. 그녀는 가족이 없다라고 말한다. 만수도 갈 곳이 없는 것은 마찬가지.

조그만 방에서 갈 곳 없고, 가족없는 네 명이 해체된 가족 속에서 새로운 가족을 형성한다.

# 따뜻한 골목길, 따뜻한 방
이 들 네 명에게 있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골목길과 시내의 방은 따뜻한 공간이다. 영화에서는 색깔을 통해 그 분위기를 연출했다. 노랗고 밝은 가로등의 골목길은 기존의 골목길보다도 더 많은 조명이 있고, 더 따뜻한 느낌이다. 좁은 골목길이어서 더 그렇다. 이러한 골목길에서 바라본 그녀의 방도 조그만 창에서 나오는 노랗고 밝은 빛깔 때문인지 들어가고 싶어진다.

비정규직 노동자 시내, 가출청소년 동규, 미등록 이주노동자 영희, 영세자영업자 만수는 같은 계급으로서, 그들의 상처를 서로의 공동체 형성으로 승화시킨다. 그것을 매개해주는 것은 바로 좁지만 밝은 골목길이고, 넷이서 누우면 딱 알맞은 조그만 방이다.

# 다섯은 너무 많아
출연자는 넷인데, 왜 다섯일까요? 정답은 마지막장면에서 드러난다. 만수와 영희가 방으로 들어오면서, 간난아이를 시내에게 안겨준다. 그렇게 그들은 새로운 가족이 되었고, 가족의 재생산을 이루어냈다.

▲ 안슬기 감독
혈연으로만 이루어진 가족이 해체된지는 오래다. 이 땅의 자본주의는 모든 사회관계를 돈을 중심으로 재편시켰다. 아이낳고 키우는게 겁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보험금을 위해 형제자매부모들을 살해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너무나도 끔찍한 세상인 것이다.

나를 보호해줄 곳은 가족이지만, 그 가족이 해체되어버렸다. 그러나 세상은 혼자만은 살 수없는 곳. 억압받고, 착취받는 자들은 그들의 계급을 중심으로 다시 뭉쳐야 한다. 그리고 새로운 가족을 만들어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 상영은?
프리머스시네마에서 25일부터 상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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