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백꽃 지는 올렛길서 만난 할망은 올해 백 셋
동백꽃 지는 올렛길서 만난 할망은 올해 백 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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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멍 보멍 들으멍](34)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할망, 그 백 년의 시간

할망   말없이 묵묵히 마늘을 다듬으시는 할망, 불필요한 것은 가지지도 않거니와 불필요한 말도 내뱉지 않는 게 할망의 철학.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어느 올렛길을 따라 걷다가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다. 길 끝에 귤 밭을 낀 자그마한 집이 있고, 그 집 앞마당에 봄볕을 등에 지고 앉아 열심히 마늘을 다듬고 있는 할망이 있다.

“할머니, 이디가 질 끝마씨(여기가 길 끝이에요)?”
“기여(그래). 누게 촞아와샤(누굴 찾아왔어)? 오랜만에 날이 조난(좋으니), 사람덜이 몬딱 낭 허러 간(사람들이 모두 나무하러 갔지). 미깡 밭이 강 가지덜 치곡(귤밭에 가서 가지도 치고), 제초제도 치곡 해부난(뿌리고 하니까) 마을에 아무도 어실 거여(없을 거야).”

친절하게 대답해주시는 그녀의 곁에 다가가 슬그머니 자리를 트고 앉았다. 그녀와 나란히 함께 햇볕을 쬔다. 등이 따스한 게 날이 참 좋다. 가는 곳마다 동백꽃이 떨어져 빨갛게 길을 수놓고, 밭담의 구멍 사이로 노란 유채꽃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의 말처럼 사람들이 모두 일을 하러 나가서인지, 윙윙거리는 벌떼 소리가 선명히 들릴 만큼 주위가 조용하다.

동백꽃 지다   가는 곳마다 동백꽃이 떨어져 차가운 아스팔트 길을 빨갛게 수놓는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그나저나 할머니, 연세가 어떵(어찌) 되십니까?”
“연세? 어떵사 되신지(어떻게 되었는지)…, 한 백 남사신지(나고 있는지)…. 올해 백 셋 이주게(이지).”
“백…셋…마씨(이라고요)? 에이, 거짓말!”
“진짠지 거짓인지 알아져게(알게 뭐야)? 난 이제 말을 잘 듣지 못 허여(못 해). 게난(그러니까), 말 고를거민 호끔 크게 고르라(말 하려거든 조금 크게 말해라).”

세상에…. 생전 처음으로 나이가 세 자리 숫자를 넘은 사람을 만났다. 역사적인 날이 아닐 수 없다. 1910년, 한일합병조약이 체결된 그 해에 할망이 태어났다고? 어안이 벙벙해져 잠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본다. 하지만 할망은 내가 곁에 있거나 말거나 마늘 다듬기에 여념이 없으시다. 가만히 들으니, 숨을 내뱉을 때마다 할망의 몸에서는 소리가 난다. 낡은 시계가 돌아가는 소리 같기도 하고, 커다란 나무의 잔가지에 바람이 스치는 소리 같기도 하다. 옆에 앉아 있기만 해도 뭔가 경건해지는 것이, 기분이 참 묘하다.

할망은 혼자 사신다. 자식 손주들은 모두가 시에 사는데, 일 년에 한 번 설날이 되면 그녀를 찾아온다. 그 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홀로 집에서 보내신다. 노인정에 가시느냐 물었더니, 당신은 이미 노인정에 갈 나이를 훌쩍 넘겨버렸다고. 눈이라도 성하면 가서 화투라도 치실 텐데, 이제 보이지도 않으니 갈 일도 없다 하신다. 할망의 집에는 그 흔한 텔레비전도 라디오도 없다. 있었는데 치워버렸단다. 이유인즉슨,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에 전화기도 아사부런(치워버렸어). 다 쓰잘데기 어신 거(쓸모없는 것).”
“그럼 할머니는 혼자 집에서 뭐 하시맨 마씨(뭐 하시는데요)?”
“뭣허긴!. 고만이 문 걸어뒁 안에서 놀주(가만히 문 잠그고 안에서 놀지).”
“그러다가 할머니 아프면 어떵(어떻게) 하실 거꽈?”
“아프민 죽어불주(아프면 죽어버리지)….”

봄날 한라산   유채꽃이 만발한 봄날, 한라산이 보이는 할망의 마을에서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토막토막 건조하게 그녀는 말한다. 필요 없는 물건을 곁에 두지 않는다는 할망의 철학은, 쓸모없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는 것에도 일맥상통하는지, 답이 필요하다 싶은 질문에만 대답하신다. ‘물어도 대답이 없는 나의 질문들은 모조리 의미 없는 것이로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언제가 되면 나도 할머니처럼 필요한 말만 할 수 있을까?’ 하고 혼자 생각에 잠긴다. 말이든 물건이든, 우리는 참으로 필요 없는 것들을 많이 달고 산다.

그렇다고 제 버릇 금세 남 줄 수 있나, 썰렁한 분위기를 참을 수 없던 나는 할망에게 큰소리로 시키지도 않은 자기소개를 했다.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몇 살인지, 지금 뭘 하는지, 한참을 이야기해도 별 반응이 없다. 할망이 듣거나 말거나 내 입은 홀로 방정을 떨고, 할망은 내가 있거나 말거나 마늘만 다듬는, 우스꽝스런 풍경이다. 그러다가 내가 재작년까지 일본에 살았었다는 말을 하자, 그제야 말문을 여셨다.

“나 젊을 적에, 우리 아버지가 일본서 살안(살았어). 나도 아버지 따랑이네(따라서) 일본에 가젠 해신디(가려고 했는데), 어멍이 혼자 있고 나는 아기도 봐야허곡(봐야하고), 쇠도 매곡 해부난(소도 기르고 해야하니까) 일본에 가질 못허연(못했지).”

그녀의 아버지는 그시절 애월 항에서 일본으로 가는 배에 올랐다. 할망은 지금과 달리 그 시절엔 애월 항과 한림 항에 일본으로 가는 배가 왕래했었다고 회상하셨다. 더 많은 이야기가 듣고 싶었지만, 그녀는 일본에 가고 싶었지만 가지 못했다는 말만 몇 번이고 반복하신다. 아마도 할망은 그 시절 아버지를 따라 일본에 가지 못한 것이 가장 아쉬우신가 보다.

“할아버지는요?” 하고 내가 물었다. 사실, 홀로 사시는 할망들께 할아버지에 관해 물을 때마다 나는 맘속으로 기도한다. 제발 오래 살다가 돌아가셨거나, 차라리 병으로 가셨다는 대답이 돌아오기를. 하지만 이 섬의 많은 여성은 상당수가 4.3사건 때문에 홀어미가 되었거나, 아버지 없는 딸로 자라야 했다. 같은 대답이 나올 적마다 가슴이 무너지지만, 어쩔 수 없는 이 땅의 지난날이다. 삼다도라 불리는 제주에 여자가 많은 것은, 4.3사건으로 많은 남자가 세상을 떠나서임을 우리는 잘 안다. (하지만 장담하건대, 상당수의 한국인은 제주에 여성이 많은 것이 아름다운 미스터리라도 되는 양 생각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할망 그리고 퐁낭   할망 뒤에 보이는 커다란 팽나무. 할망이 살아온 백 년의 시간, 그녀와 어우러져 아낌없이 주기만 하는 삶을 살았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그렇게 할망의 남편도 4.3사건 때문에 세상을 떠났다. 친정집에 피신을 갔을 때 일어난 일이다. 게다가 그녀의 큰 오라버니도 남편과 함께 총살당했다. 그것도 거기까지. 할망은 더는 말을 잇고 싶지 않으신지, 다시 말문을 걸어 잠근 채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을 안 하신다. 그래서 나도 입을 다물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러고 있자니, 파란 하늘 밑, 할망이 앉아 있는 풍경 뒤로 근사한 퐁낭(팽나무)이 보인다.

“우와, 할머니. 저 나무 잘도(엄청) 늙은 나무 아니꽈(아니에요)?”
“저디, 저 낭 말이가(저기 저 나무 말이야)? 한없이 오래되어서(됐지). 그 낭 밑에, 옛날에 도구리(돌이나 나무를 파내어 만든 큰 통) 만드는 하르방이 살아나서(살았었어). 이 마농(마늘) 담는 바구니, 옛날에는 다 낭(나무)으로 만들었주게(만들었었지). 도구리랜 핸(도구리라고 해서). 그 하르방이 시국에(4.3사건에) 죽지 않앵(않고) 살아시민(살았으면) 저 낭이 저 추룩 크진 안 해실 거여(저 나무가 저렇게 크진 않았을 거야). 호끔씩 끊어당 도구리영 뭐 영 만들어시난 게(조금씩 잘라서 통이든 뭐든 만들었었으니까). 이제사 누게 낭 하느냐 게(지금은 누가 나무를 해)? 경 행 쓰질 아니 허난(그렇게 쓰지를 않으니), 낭이 저추룩 컸주(나무가 저렇게 자랐지).”

할망 말씀을 들으니 알겠다. 마을마다 있는 팽나무는 그저 지금처럼 마을을 지키고 앉아 그늘을 제공하기만 하는 나무가 아니었다. 팽나무에게도 그럴싸한 역사가 있었다. 언젠가 저 가지의 한 부분이 할망의 부엌에서 그녀의 일을 도왔을 테고, 누군가의 집의 땔감이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제는 집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침묵 속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는 할망 역시, 백 년의 시간 누군가에게 아낌없이 무언가를 주기만 하다가 늙어버렸다. 그리고 혼자가 되어 홀로 떠날 길을 채비 중이시다.

그렇게 모든 것은 혼자다. 그리고 그 길에 많은 것을 얻고, 또 잃는다. 하지만 얻어 온 모든 것을 아낌없이 주며 살아온 당신이기에 할망은 너무나 쉽게 내게 말할 수 있었나, ‘아프면 죽어불지’ 라고? 백 년의 나이테를 가진 할망은 슬퍼도 슬프지 않다. 그저 그녀의 몸에서 불필요한 것들이 사라지면서 단단하게 말라가는 과정에 있을 뿐, 저 나무만큼이나 할망은 튼튼한 인간이다. 

환한 봄볕을 맞으며 그녀와 충분한 침묵을 나눈 후, 나는 다시 길을 나섰다. 시끄러운 나그네의 말벗이 되어주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말이다. 올봄, 할망이 마당에 나와서 따스한 햇살을 더 많이 쬐실 수 있도록, 쭉 날씨가 화창하면 좋겠다. 그리고 할망보다 먼저 나서 나보다 오래 살지도 모를 저 나무가 제발 누군가의 욕심에 잘려나가지 않기를 바라고, 또 바랄뿐이다.<제주의소리>

<정신지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정신지는 ?

   

이 여자, 택시 기사들과 대화 나누길 즐기는 ‘수다쟁이’다. ‘역마살’도 단단히 타고났다. 거기에다 ‘촌스러움’까지 좋아하는 독특하고 야무진 여자다. 그녀의 이름은 정신지(32). 파주·부산 출신의 부모님 아래 서울서 태어나 여섯 살에 제주로 이민(?) 왔지만 스무살에 다시 서울로 나갔다가 일본의 대학과 대학원에서 ‘지역연구학’이라는 인문학을 전공했다. 그동안 세계 17개국의 섬·지방·대도시를 떠돌며 사람과 집단, 그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혀왔다. 지난 봄, 일본의 국립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學)에서 문학박사 과정도 수료했다. 이제 12년간의 지구촌 유목 생활을 마치고, 태어난 곳은 아니되, 자신을 성숙하게 키워준 ‘진짜 고향’ 제주로 지난 봄 돌아와 부모님이 살고 있는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에 짐을 풀었다.  매주 한차례 <제주의소리>를 통해 제주와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있다.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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