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쉽고, 더 재미난 '제주 문화 이야기'를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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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섬의 숨, 쉼] 제주 옛 이야기 '담금질'이 필요한 때

요즘 친구들과 하는 농담이 있다.

"나, 노후 대책 정핸"
"뭐?"
"모델"
"모오델? 젊은 날 패션도 평균 이하인 주제에 무슨 모델?"
"패션모델 말고 제주 원주민 사진 모델"
"아이고, 나도 해사켜. 그냥 사진만 같이 찍어주면 되는 거지“

농담으로 끝나야 하는 이야기이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중국인들은 무서운 기세로 제주 땅을 사들이고, 육지에서 온 재기발랄한 젊은이들은 게스트하우스, 커피숍 등을 통해 개성 넘치는 문화를 확산시켜 나가고, 여기에 외국인들까지 자신들의 문화를 조직화 하고 있다.

그럼 여기서 해묵은 질문이 나온다.
"게난 뭐. 언제까지 제주도에 제주 사람만 살거라? 세상이 변했네. 무조건 촌스럽게 배격할 것이 아니라 잘 품는 것이 좋은 거 아니"
"맞아"
맞는 얘기다. 하지만 속이 개운치 않다.

그런데 지난 일요일 참가한 역사기행에서 이영권 선생님이 왜 내가 맞아, 라고 하면서도 개운하지 못했던가에 대한 답을 주셨다. 지난 17일 한수풀도서관이 주최한 우리 동네 역사알기 '대정을 알면 제주도가 보인다(1) 모슬포 칼바람이 완성한 추사체)-에서 였다.

역사기행을 이끈 이영권 선생님은 기행에 앞서 나눠준 자료에서 제주인과 '육짓것'에 대한 얘기를 먼저 시작했다.

"(전략)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외지인 배타 심리를 제주인의 자존심이라고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다. 거꾸로 나는 그것을 아주 경멸한다. 과거 역사 속에서 우리제주사람들이 외지인에게 당했던 일이 아무리 많다 하더라도 , 그리하여 그 억울함이 여태껏 풀리지 않았다 하더라도 ..... 오히려 그럴수록 그 속 에서 교훈을 찾아 그들과 대등한 공존을 모색함이 옳은 일이다. (중략) 물론 외지인에게 다 내어주자는 이야기는 절대 아니다. 당당하고 대등하게 그들과 공존하자는 “

그래 바로 그것이었다.
당당하고 대등하게 그들과 공존해야 하는데...... 아직 미처 준비가 안됐는데 갑자기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면서 당황스럽다는 것이다. 그것은 옳고 그른 것, 좋고 나쁜 것의 문제가 아니다.

제주 원주민이면서도 젊은 한때 서울에서 생활하면서 나름 균형감각을 갖추었다(고 혼자 생각하)는 나는 혼란스러웠다. 늘 변명해왔듯 생활에 쫓기며 허덕허덕 살다  잠깐씩 미욱한 머리로 고민하자니 대답이 쉽게 나오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랑비에 옷 젖는 것처럼 몇 년간 꾸준히 한 문제를 고민하다보니(누가 하라고 한 것은 아니지만) 이제 드디어 답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생각한 답은 제주문화의 원형을 삶에서 살려내자는 것이다.
아주 쉽게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옛 이야기를 지금 이야기와도 연결 하자는 것.  시대는 다르지만 변하지 않고 흐르는 제주 정신, 문화의 고갱이를 퍼내어 제주 사람이 제주 사람으로 단단해질 것이다. 그래서 제주 문화의 그릇이 크고 넓어지면 어떤 외부 문화가 들어와도 문제없을 것이다. 거기에 그 재료들을 맛있게 요리할 수 있는 제주 사람들이 늘어나면 더욱 깊고 풍부한 맛의 제주문화가 세계로 나갈 것이다. ‘글로컬’의 실현이다.

자, 이제 정답이 눈앞에 있으니 실천 방안이 문제다.
나는 연구원도 아니도 공무원도 아니고 언론인도 아니다. 그래서 어떤 근거, 이론이 풍부하지는 않다. 하지만 살다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론 학문 상품화의 틀에 갇혀있는 제주 문화를 좀 풀어주자고.
가령 제주 신화, 제주 옛이야기, 해녀 등의 재료들이 재료로 보관만 되어 있는 것은 너무 아깝다. 또 너무 상품화만을 강조하다 보면 재료의 깊은 맛이 나오기 전에 설익은 맛으로 세상에 나와 좋은 재료의 가치를 떨어뜨릴 수도 있다.

그러니 누구나 재료를 갖고 자기만의 비법을 찾아가는 과정이 계속되면 생각보다 빠른 시간 안에 최고의 만찬을 차려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겠지만 그 중 좋은 방법으로 나는 제주 옛이야기를 요즘의 삶에서 담금질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백제의 서동이 선화공주를 '서동요'로 차지한 것을 봐도 사람들 사이에서 일상으로 퍼진다는 것은 아주 강력한 힘이다.

마찬가지로 제주의 옛이야기, 제주의 신화, 제주의 역사가 재미있는 이야기로 다시 살아났으면 좋겠다.

이쯤에서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너무 아쉬운 기억 하나.

2001년이 언제더라... 참 까마득하기도 하다.
그때 나는 아주 많이 젊었었고 몇몇 글벗들과 일주일에 한 번씩 만나 글공부를 했었다. 지치지도 않고 열심히. 그리고 그 결과물로 아주 작은 문집을 냈었다.
몽생이 글 김상남 그림의 '제주도 옛이야기'
그 작은 문집의 뒷면에는 이런 글이 쓰여 있다.
"제주도 옛이야기는 한라산과 푸른 바다를 터전 삼아 제주 섬을 꿋꿋이 지켜온 우리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남겨준 값진 보석입니다"

하지만 거기서 끝. 모두 생업에 쫓겨 제 갈 길을 갔다. 글쓰기의 길을 잘 걸어 좋은 작가가 된 이도 몇몇 있었지만 대부분은 모두 생업을 위해 글쓰기는 뒤로 미룬 상태다.

▲ 네이버 인기 웹툰인 '신과 함께'. 책으로도 발간됐다.

그 사이 제주도 옛이야기는 전국적으로 엄청나게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많은 이야기책으로 세상에 나왔다. 좋은 일이다. 뿐만 아니라 젊은 웹툰 작가 주호민이 제주신화 이야기가 많이 나오는 작품 '신과 함께' 는 네이버 히트작으로 떠오르며 이제 곧 영화로도 만들어질 것이라 한다. 이 역시 좋은 일이다.

하지만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 허전하다.
그것은 내가 어떤 이야기책에서 '조왕신'을 '부엌 신'이라 쓴 것을 보고 슬펐던 것과 비슷하다. 물론 조왕신이 부엌신인 것은 맞다. 하지만 조왕신과 부엌신은 느낌의 차이가 크다. 설명하기 힘들지만 제주 원주민들은 다 안다.

그래서 대등한 공존을 위해 제주 작가들에 의해서도 끊임없이 쉬운 제주이야기가 나왔으면 좋겠다. 또 제주 문화가 다양한 방법으로 제주 곳곳에서 교육되었으면 좋겠다. 아주 쉽고 재미있게. 그래서 유치원생들이, 초등학생들이. 청소년들이 제주 이야기와 제주 문화를 재미있게 읽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이야기들이 서동요처럼 제주 사람들의 삶을 파고들 때 단단한 캐릭터가 되어 또 다른 문화 창작물의 토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 바람섬(홍경희). ⓒ제주의소리

그런데 이런 일들이 사실은 벌써 진행되고 있었다. 다행히도.
대정 역사기행은 쉽고 재미있었다. 또 올해 동부 아름다운 청소년센터와 해바라기 지역아동센터가 손을 잡아 아이들이 지역 문화를 이해하고 풀어낸 신문을 펴낼 것 이라 한다.


이런 예쁜 얘기들이 불씨가 되어 더 많은 일들이 진행됐으면 좋겠다. 더 많은 사람들이 제주 문화의 원형에 대해 고민하고 실질적으로 찾아나가는 일을 시작했으면 좋겠다.

살랑 살랑 봄바람이 부니...... 참 생각도 많아지는 요즘이다. /바람섬(홍경희)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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