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만의 귀향, 2박3일의 기록
60년만의 귀향, 2박3일의 기록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제주4.3 65주기] '4.3으로 떠난 땅, 4.3으로 되밟다' 강정효 사진전

지난 2008년 4.3 6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의 초청으로 도쿄, 오사카, 교토에 거주하는 재일교포들과 일본인 등 140여명이 제주를 찾았습니다. 당시 강정효 작가가 밀착 취재하며 찍은 사진들을 ‘60년만의 귀향, 2박3일의 기록-4.3으로 떠난 땅, 4.3으로 되밟다’ 전시와 사진집으로 내놨습니다. 사진전은 1일부터 10일까지 4.3평화공원 예술전시실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전시되는 35점 중 일부를 싣습니다.

▲ “세월이 약이라지만 절대 그런 거 아닙니다. 정말 생각에서 잊히지 않는 겁니다. 그게 나고 자란 산천이고 혈육이고 4·3사건이죠.” 제주공항 대합실에서 간단하게 진행된 결단식에서 조동현 단장(제주4·3을 생각하는 모임 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고이삼 부단장(신간사 대표), 오광현씨.

 

▲ 드디어 출발. 제주공항에서 4·3평화공원으로 가기 위해 버스로 향하는 방문단.

 

▲ 제주4·3평화공원 위패봉안소 앞에서 4·3을 다룬 대하소설 ‘화산도’의 작가인 김석범선생과 조천중학원 학생으로 4·3때 입산, 형무소에 수감되기까지 했던 김민주선생이 헌화분향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김민주, 고이삼, 김석범, 조동현.

 

▲ 4·3평화공원 위패봉안소에서 친지를 만나는 김춘해씨. 김씨는 무장대와 서북청년단 등에 의해 가족을 잃고는 일본으로 떠났다.

 

▲ 4·3평화공원 위패봉안소에서 한 참가자가 방명록에 소감을 적고 있다. 4·3때 목숨을 잃은 친구의 영면을 기원하는 한편 미국의 책임을 촉구하고 있다.

 

▲ 전야제에서 객석 가운데 자리 잡은 방문단 일행이 풍물가락이 흥겨운 듯 장단을 맞추며 즐거운 표정으로 공연을 감상했다. 이 자리에서 ‘영혼을 노래하는 음유시인’으로 널리 알려진 재일동포2세 가수 이정미 씨는 전야제에 참석한 제주도민들에게 방문단 일행을 소개하며 따뜻한 환영의 박수를 이끌어내기도 했다.

 

▲ 김석범, 김동일, 방정옥씨 등이 4·3당시 희생된 영령에 대한 묵념을 하고 있다. 김동일씨는 조천중학원 2학년인 열여섯 살 때 4·3을 만나 민애청에 가입, 연락원으로 활동했다. 4·3이 일어난 후 산에 올라갔다가 내려오지 못하고 조천리 조직원들과 한라산에서 도피생활을 하다 1949년 체포돼 광주형무소 수감됐다가 3개월 뒤 석방된다. 이후 6·25때 진도군당 위원장 비서로 활동하다 1951년 3월 전라도 지경 지리산 한 산골마을에서 군 토벌대에 체포되기도 했다.

 

▲ 4·3위령제가 끝나갈 무렵 강요배화백을 만나는 김동일할머니. 4·3 당시 연락원으로 활동했던 김동일할머니의 언니를 강화백의 집안에서 제사를 지내는 사실을 뒤늦게 안 김동일할머니는 강화백에게 이모라 부르라며 눈시울을 붉혔다.

 

▲ 저의 친족을 찾아주세요. 북촌리 출신 부모를 둔 한 참가자가 족보를 베낀 종이를 들고 북촌리 주민에게 자신의 친족에 대해 아느냐고 묻고 있다. 이 가족은 북촌리에서 400여명이 희생된 날인 1948년 12월 19일(양력 1949년 1월 17일) 하루에 4명이, 다음날 1명이 사망했다.

 

▲ ‘제주4·3을 생각하는 모임’의 회장이자 도쿄 방문단장인 조동현씨가 제주4·3평화기념관 개관을 연기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신문광고를 소개하며 4·3의 현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는 “지금까지 싸움을 통해서 승리해 얻은 것들을 어떻게 지켜갈 것인가가 저희에게 큰 과제일 것입니다. 물론 거기에 관해서 서둘러 안달 낼 필요는 없겠지만 천천히 함께 확실히 해나가야 할 것”을 강조했다.

 

▲ 이덕구 가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참하게 희생되는 아픔을 겪은 이복숙(이덕구의 형 이호구의 딸), 강실(이덕구의 누나 이태순의 아들)씨 등이 제주에 사는 조카 이명자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이씨는 “작은 아버지는 총사령관이니까 이름을 안 놔도 좋지만은. 새파란 우리 가족들, 농사만 짓다가 이 세상에서 조카를 잘못 만나가지고 죽은 목숨들마저 4·3평화공원에 이름이 없다”며 흐느꼈다.

 <제주의소리>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0 / 400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순 추천순 이 기사에 달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