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2) 할망의 창조 작업

“설문대할망은 제주 땅을 어떵 만들어신고?”라고 누가 묻는다면, 제주 사람들은 누구든지 시원하게 말해줄 수는 없는 문제다. 준비된 말도 별로 없지만, 그래도 이건 틀림없다고 말할 수 있는 설문대할망 이야기는 없다. 있다면 무엇일까.

무언가 잡힐 듯 말 듯, 알 듯 말 듯 우리의 세상 제주 땅을 만든 설문대할망의 창조 작업은 이야기꾼도 설왕설래 한다. 그런 얘기 중 확실하게 말해줄 수 있는 말은 “설문대할망은 제가 누워있는 크기만큼 제주도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설문대할망 본풀이는 여기서부터 만들어진다.

설문대할망이 맨 처음 저지른 사건, 설문대할망의 손가락이 천지의 왁왁한 어둠에 점을 찍은 사건, 태초의 움직임, 그것이 ‘왁왁한 어둠’으로부터 살아있는 것과 죽어있는 것을 곱가르며 하나의 움직임을 만들었고 그 움직임은 이 세상에 ‘바람’이란 것이 생겨나게 하였다.

결국 설문대할망은 바람을 만들었고, 설문대할망이 만든 바람이 세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여도 제주사람들은 이런 말을 확실하게 믿을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제주에서 낳고 제주에서 살고 있는 순 토종 제주 사람들이여. 뒷날 탐라국을 세운 아이, 왕이 될 아이라고 생각되는 삼신이(三神人) 또는 삼을나(三乙那)라고 부르는 ‘세 명의 어린 아이’가 제주 땅 모흥혈에서 솟아났다는 탐라국 건국 시조신화를 믿듯이 제주 땅을 만든 설문대할망 얘기도 의심 없이 믿어주기를 바란다. 그것은 모두 제주인들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창조신화의 원형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원형을 제주 사람들이 서로 믿는 가운데 제주신화의 스토리텔링은 풍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 땅을 만든 설문대할망은 신과 인간을 통 털어 맨 처음에 제주에 생겨난 여신이었으며, 그 여신은 자신이 누워있는 크기로 세상을 만들었다. 그것은 아름다운 제주도이며, 제주도라는 그녀의 몸속에는 앞으로 이 세상에 살아갈 제주 사람들이 모든 것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키가 크고 힘이 센 여신, 세상을 만든 설문대할망을 바람의 신, 풍요의 신이라 한다.

세상은 할망이 만든 바람에서부터 생겨났다. 그렇게 제주 땅에 생겨난 바람은 태초의 어둠을 찢었고, 천지를 나누었다. 그 다음에 이어진  설문대할망의 창조 작업은 바람에 흔들리는 것들을 손으로 모으며 할망 몸의 그림자만큼의 크기로 제주 땅을 만들었는데, 그 작업은 바다에서 흙과 돌을 모아 제주 땅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설문대할망이 세상을 만들 때 자기 키 보다 조금이라도 더 큰 제주도를 만들지 못했기 때문에 생기는 비극은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끝없이 가지를 치며 여러 가지 문제를 만들어 내었다. 제주 땅은 설문대할망이 살아가기에는 너무나 비좁은 땅이었다. 그러므로 거대한 할망이 만든 세상은 할망을 제주 땅에 가두어버렸다. 결국 설문대할망의 창조작업은 제주사람들의 1수 철학, ‘하나의 외로움’을 만들었을 뿐이다. 

다시 설문대할망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아주 옛날 적어도 1만 년 전 쯤에  망망한 바다는 끝이 없었는데, 바다 한 가운데 키가 크고 힘이 세다는 설문대할망이 자기 몸의 그림자를 본떠 세상을 만들었다. 키가 크고 힘이 센 할망 혼자서도 살 수 없는 세상을 만들었기 때문에, 제주 땅에 갇혀버린 이야기가 전해 온다.

설문대할망은 땅이 비좁아 자기의 그림자 위에 누워 잠을 자고 있었다. 설문대할망이 누워 자는 그림자 이불은 망망한 바다에 비양도처럼 바람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할망이 눈을 감고 잠을 자는 밤에는 쉴 수 있어 좋았지만, 아침에 눈을 떠 일어나면, 일할 수 있는 공간이 턱없이 적었다.  설문대할망의 세상을 만드는 작업은 떠다니는 제주 땅을 붙들어 매어 고정시키고, 그녀가 활동할 빈 공간을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바닷물 속에서 흙과 돌을 주어다 한라산과 오름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할망은 먼저 한반도의 남쪽 끝 우주의 중심이 되는 지점에 서서 중심을 잡고 ‘영주(瀛洲)-망망한 바다 가운데 섬’이라 하였고, 뒤에 탐라가 되었다가 지금은 제주라 부르고 있다. 설문대할망은 영주의 중심에 서서 삽을 들어 한 삽 두 삽 모두 일곱 삽을 퍼 올렸다. 그리하여 할망의 몸 그림자를 본떠 만든 제주 땅의 중심에 봉긋한 한라산을 만들고 산봉우리는 삽으로 깎아내려 엉덩이를 대고 앉아보았다. 이것이 1950미터의 한라산이다. 그러고는 다시 내려가 물 위에 서 보았다.

계속 흙을 퍼 올려, 바다에 서 있으면 얼굴이 보일만큼, 산꼭대기에 앉으면 제 몸이 앉은 모습이 드러날 만큼 흙을 쌓아 제주도를 완성하였다. 한라산에 앉아 타원형의 세상을 둘러보았다. 아무래도 몸을 움직이기엔 너무 비좁았다. 실망한 설문대할망은 세상을 만든 걸 후회하며 드러누워 눈을 감았다.

그것은 할망이 세상을 만들기 전의 ‘왁왁한 어둠’과는 다른 어둠, 어둠이라고 느껴지는 어둠, 밤이었고, 잠이었고, 절망이었다. 캄캄했다. 자기가 만든 세상의 밝음 속에 ‘하나의 외로움’을 깨달았던 설문대할망은 하나의 외로움이 지워지는 각성된 어둠을 보았다. 또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할망은 계속 눈을 깜박거렸다. 어둠과 밝음이 계속 이어졌다. 순간을 의식하며 숨을 쉬었다. 바람을 마셨다 뱉으며 들숨과 날숨을 만들었고, 숨소리를 의식하며 시간의 단위가 되는 순간을 만들었다. 그것은 찰라였으며, 그 순간처럼 숨을 쉬었고, 숨을 쉬며 들숨 날숨마다 의식과 무의식, 어둠과 밝음을 깨달으며, 드러누워 눈을 감고 뜨면서, 결국 할망은 긴 생각 끝에 잠에서 깨어, 밤과 낮을 만들었다.

할망은 눈을 감고 잠을 자는 밤과 눈을 떠서 생각하고 일을 하는 낮을 나누었다. 밤과 낮의 운행, 순간이 이어져 시간이 됨을 안 할망은 다시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눈을 감고 잠을 자던 밤을 보내고, 눈을 뜨고 아침을 맞이하여 일어나 앉으니 일을 할 공간이 없어 답답하였다.

시간을 만든 할망의 그 다음 창조 작업은 공간을 만드는 일이었다. 비좁은 공간을 일할 수 있는 공간으로 넓히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일, 계획으로 가능한 일이었고, 할망의 몸을 줄일 수 있을 만큼 줄여서 일을 하면 되었다.

다음 계획은 제주 사람들의 크기만큼 제 몸을 줄여, 제주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광활한 공간을 만들어, 거기에 아름다운 일터를 그려보는 일이었다. 제주 사람들의 일터, 사냥을 하고, 방목하여 마소를 키우고, 배를 타고 바다에 가 고기를 잡고, 바닷가 여마다 해초와 소라 전복을 키우는 이어도를 그려보았다. 할망은 자신의 몸속에 자라는 온갖 해초와 곡식의 씨앗을 제주 땅에 털어 놓았다. 바다 밭 물질할 일터에, 들판과 숲에, 곶자왈에 풀도 나무도 땅도 숨을 쉬게 하였다. 이렇게 아침에 눈을 떠 하늘을 보고 땅을 보며 생각해낸 제주 땅은 끝없는 생각 속에서 완성되었다.

이와 같이 제주도, 설문대할망이 이어도와 같은 세상을 만드는 일, 일터를 가꾸는 계획은 제 몸을 줄여 자기가 만든 땅에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것이었다. 제주도를 사람 사는 세상으로 그려내는 것은 제주도를 밖에서 보면, 할망이 누워 잠을 자는 평온한 섬이지만, 할망의 몸을 들여다보듯 섬 안을 들여다보면, 아기자기 오목조목 99의 골짜기에다 360개의 오름이 펼쳐지게 하였다. 설문대할망은 제주 땅에 360개의 오름을 만들었다는 오름의 신이다.

▲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제주의소리

맨 처음 설문대할망이 오름을 만들 때는 치마의 흙이 터진 구멍에서 새어나와 360개의 오름을 만들었다. 너무 큰 할망의 치마에서 새어나온 흙은 바다를 매웠을 것 같다. 때문에 할망 몸을 줄여야 오름을 만들 수 있다. 설문대할망은 제 몸을 360분의 1의 크기로 줄여 치마에 흙을 담고 날라 하루에 오름을 하나씩 만들어 나갔다. 그리고 360개의 오름을 완성하는 시간을 1년이라 하였다. 그리하여 1년 만에 360개의 오름이 완성되었다. 오름마다 비슷하면서 다른 굼부리들(噴火口)이 생겨나 한라산 바람 신 ‘보름웃도[風神]들이 쉬어가는 쉼터가 되었다. /문무병

* 본문의 아래아 발음은 [ㅗ]로 표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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