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르방미소    두루봉이 하르방 임경재(80) 어르신은 동안이다. 장난끼 어린 그의 모습에서는 천진난만한 아이의 모습과 굳센 농민의 모습이 겹친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걸으멍 보멍 들으멍](35) 농부, 치매, 늦깎이 천재 예술가, 그리고 그의 딸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잊고 싶은 기억이 많거나, 기억해야 할 일이 많거나 할 때 망각은 의식적인 삶의 방편이 된다. 하지만 늘 그런 것만도 아니다. 망각의 동물인 우리가 제아무리 기억을 지울 수 있다 해도,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 뒤돌아보자. 때때로 우리의 상처는 잊은 줄로 알았던 기억들을 들추어내어 우리를 슬프게 하지 않던가?

얼마 전, 우연한 계기로 평생을 농부로 살아오신 하르방 한 분을 만났다. 올해 여든이 되신 그는 스스로를 두루봉이(멍청이의 제주어)라 부르신다. 기억이 오락가락하는 병(치매)에 걸리셨다며, 무례한 말을 하게 되더라도 용서하라 시던 그는 상당한 젠틀맨에 용모도 곱상하시다.

그러나 한 번 말문이 터지면 끝없이 흘러나오는 그의 이야기는, 대하드라마나 장편 서사시를 능가한다. 게다가 대단한 것은, 그 모든 기억을 수백 장, 수천 장일지 모를 종이에 오 년째 빼곡히 적고 그림으로 그려 오셨다는 사실이다. 웬만한 연구자나 역사가도 해내지 못할 방대한 개인의 기록이자, 시대의 기록이다. 그를 만나고 가슴이 설레어 며칠 잠을 설쳤다. 이 동네 저 동네 돌아다니며 할망들에게 약장수 소리를 듣고 있는 말 많은 내가, 그를 만나고 말문이 떡하니 막혀버린 것이다. 비상사태가 아닐 수 없다. 그런 두루봉이 하르방과의 만남. 오늘은 그 첫 번 째 이야기다.

하르방 보리밭   보리밭에 석양이 드리우니 너무나 아름다운 풍경이다. 이 땅에서 하르방이 났다. 하르방이 기억하는 모든 것을 보리밭도 기억하려나. 말 없이 반짝이기만 한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하르방 한라봉   혼자만 알고 계시다는 하르방의 비밀의 귤나무. 집에 가서 먹으라며 한 봉다리(봉지) 가득 커다란 한라봉을 따 주셨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드넓게 펼쳐지는 초록빛 보리밭이 바람에 물결친다. 동백꽃이 흐드러진 나무 밑 흙길 사이로 철없는 강아지가 뛰어논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아래 또렷하게 보이는 한라산과 오름의 능선만이, 이곳이 꿈속 천국이 아닌 제주도임을 겨우 확인하게 해 줄 유일한 단서다. 한경면에 위치한 두루봉이 하르방의 오래된 농장에는 이렇듯 여김 없이 평화로운 봄이 왔다.

“허이구 세상에 아가씨, 눈물이 날 정도로 좋은 날이에요.” 하르방이 나를 보며 곱게 웃으신다. 그러시고는, 따라오라며 내 손을 잡고 수확이 끝난 귤밭 안을 천천히 걷는다. 한참을 걸어 농장 안으로 들어가니 잘 여문 한라봉이 황금알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귤나무가 몇 그루 있다.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먹으려고 놔둔 비밀의 나무란다. 커다란 귤만 골라 따신 후 봉지에 담아 건네주시며 그가 말했다. “예쁜 아가씨, 집이 강(집에 가서) 먹어요.” 시종일관 방긋방긋 웃는 그의 모습은, 마치 크리스마스카드에 그려진 상냥한 산타할아버지 같다. 그렇게 하르방과 느릿느릿 걷고 천천히 말하며 보내는 즐거운 봄날의 데이트.

1933년에 태어난 그는, 어린 나이에 일제 강점기를 경험하며 자랐다. 당시 마을에 상주하던 일본군들은, 울던 아이 울음도 그치게 할 정도로 무서운 존재였다. 얼마나 선명하게 드리운 공포였는지, 하르방의 기억은 세 살, 다섯 살 시절까지도 서슴없이 거슬러 간다.

“일본 경찰을 보민(보면), 울던 아이도 울음을 뚝 그쳐. 어른들이 무서워하니까 아이들도 그걸 알아채는 거라. 모아둔 식량은 죄다 공출(일제식민지하에서 전시 군사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1940년부터 강제로 시행된 제도)행 가곡(해 가고), 마당에 멍석을 펴 놓고 방에 있는 것은 수저 하나 빠짐없이 내 놔야 했주(내놓아야 했어). 안 냈다가는 사정없이 때려. 놋그릇이영(랑) 수저영 압수 해다가 총알을 만들고. 허리엔 칼도 차곡(차고), 모자도 쓰곡 허난(쓰고 하니까) 무서울 정도가 아니지.
… 가만히 눈을 감으면 다 보여. 세네 살 때 기억부터 모조리.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무섭고 화가 났어. 죄 어신(없는) 사람들이 매를 맞고, 가진 걸 빼앗기는 걸 봐부난(봐버리니까). 네 살 때부터는 더 무서웠어. 참 이상하게 왜놈들 이름까지 다 기억이 나.”

하르방 습작   하르방 다섯 살의 기억이 담긴 기록의 습작. 글씨도 그림도 정성껏 연습을 하셔서 화선지에 옮겨 쓰신다. 그 막대한 양에 놀라고 또 놀랄 뿐이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 하르방과따님    농민아티스트(?) 임경재 할아버님과 농부의 딸 임애덕 박사님. 서로의 이야기를 주고 받는 그들의 평화로운 모습에서 너무나 많은 것을 보고 배운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하르방이 인상을 찌푸리며 그 기억들을 뿜어내신다. 그래서 내가 날도 좋은데 좋은 기억은 없냐 묻자, 곧장 화제를 바꾸셨다.

“다섯 살이 되던 해에 나는 소를 모는 목동이 되었어. 오전에는 할머니께서 나를 서당에 보내시고, 다섯 난 어린아이가 꾸벅꾸벅 졸면서 ‘하늘 처언 따아지’를 외웠지. 할머니는 회초리를 들고 나를 쫓아다니면서 공부허랜(하라고) 가르치셨어.
그때 마을 통장네 집에 일본군이 선물이라고 준 소 한 마리가 새끼를 낳았는데, 그 송아지를 만지멍(만지며) 노는 게 좋았어. 다리도 보듬고, 머리도 보듬고, 그럼 나도 좋고 송아지도 좋고….”

보드라운 기억을 더듬으시던 하르방은 잠시 말씀을 멈추고 먼 산을 바라보신다. 봄볕에 기분이 좋으신가 보다. 그렇게 그의 기억은 마치 퍼즐 조각을 맞추듯 여기저기 흩어지다가 모이고 하면서 천천히 모양새를 찾아가는 듯했다. 그리고 사실, 내게 말씀해 주신 상당수의 이야기는 이미 화선지에 먹으로 쓰이고 그려져 완성되어있다. 그런데도 하르방은 그것들을 되풀이하여 이야기하시고, 다른 종이에 적어가기를 매일같이 반복하신다.

이쯤 해서 궁금해지지 않는가? 한평생 흙만 만지며 농부로 살아오신 하르방이, 어쩌다가 붓을 쥐고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 사실, 두루봉이 하르방이 기억을 기록하는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따로 있다. 사회복지가로 활동하시는 하르방의 따님이 나이 드신 아버지를 생각하는 효성 어린 마음. 그것이 바로 이 아름다운 사건의 발단이 되었다. 하르방을 닮아 상냥하고 자연스러운 그녀는, 나를 만나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딱히 제가 아버지 삶에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니었죠. 4.3사건 같은 건 부모가 우리에게 알리려 하지도 않았고, 아주 무지하게 자랐으니까. 그런데 아버지가 나이를 드시고 쇠약해져 가면서 과거에 관한 기억을 말씀하기 시작하셨어요. 내가 하는 일이 사회복지라서, 아버지 말씀에 더 귀를 기울이고 싶었지만 저는 시간이 없고 아버지는 말씀이 많아지시고. 그래서 어느 날 아버지께, ‘아부지, 나신디(나에게) 곧잰 하신(하려 하신) 말씀, 이디(여기) 종이 위에 한 번 그려보십서(그려보세요).’ 한 거죠. 난 일하러 가야 하니까, 그냥 그 핑계였을 수도 있지만…(웃음).

어쨌든 아버지가 그림을 그리셨는데, 너무 잘 그리신 거! 그림도 잘 그리고, 글도 완전 시인이 따로 없어서 정말 놀랐어요. 그렇게 해서 기억을 그려가는 작업이 시작된 거죠. 근데, 슬픈 기억을 그리며 아버지가 하도 많이 우셔서, 저도 매번 따라서 울었어요. 그러면서 노인들을 이해하게 되고, 우리 부모들이 살아온 제주의 역사를 알아가게 되고. 그렇게 시작하게 된 일인데 이렇게 오래 꾸준히 하실 줄은 몰랐죠.

도중에 뇌경색으로 쓰러지시기까지 해서, 다른 형제들은 나 때문에 아버지가 쓰러지셨다고 욕을 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놀랍게도 잘 회복하시고 그 이후에 조금씩 치매가 찾아왔는데, 어떻게 된 게 그림을 더 잘 그리셨어요. 이걸 혼자 보면 안 되겠다 싶어서 지인들에게 보여주고 전시회도 하고 하다 보니 2009년에는 시민예술상까지 받으신 거죠. 그림 그리기 시작한 것이 2008년인데, 벌써 세월이 이렇게 흘렀네. 치매 때문에 단기적인 기억을 못 하시는 때도 있는데, 신기하게 오래된 기억들은 기가 차게 끄집어내요. 내 아버지이지만 가끔 천재가 아닌가 싶을 때도 있어, 하하하. 어떻게 그 오랜 세월 그 재능을 감추고 살아 오셨나 몰라, 우리 아부지.”

하르방과 함께 이야기하고 있는데 따님이 찾아오셔서 셋이 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말끝마다 묻어나는 그녀의 아버지에 관한 관심과 애정이, 저무는 해에 반짝이던 연둣빛 보리만큼이나 사랑스럽다. 두루봉이 하르방과 그의 따님은 두 분 모두 이 농장에서 태어나셨단다. 같은 땅에서 나고 자랐지만 각기 다른 시대의 공기를 마시며 살아오신 부녀지간이다. 하지만 사람은 땅을 닮는다고, 두 분의 자상한 미소는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 그들의 오래된 농장을 닮았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잊힌 기억들을 사랑스럽게 보듬으며 살아가는 두 사람. 모두가 이렇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망각을 이유로 인간이 규정짓는 대표적인 질병은 치매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치매에 걸린 많은 사람은 오랜 기억들을 선명하게 기억해 내는 마술 같은 힘을 얻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두루봉이 하르방이 치매에 걸렸기 때문에 이 모든 기억을 마술처럼 쏟아내게 된 것만은 아니다. 그저, 살아오신 모든 세월에 너무나도 강렬하게 드리운 슬픔을 가슴에 담고 달려오셨을 뿐. 그리고 그것을 토해내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을 만큼의 상태에 이르러 병이 났는지도 모를 일이다.

기억이란 그런 거다. 귀 기울여 그것을 바라보는 주변인의 관심 어린 태도가 있을 때 빛을 발하며 마술이 되고, 살아있는 역사의 기록이 된다. 하지만 치매는 병이다. 아파서 잊어야 하고, 잊혀서 아픈, 당사자와 주변인을 아프게 하는 혹독한 병이다. 그래서 흔히 벽에 똥칠한다고 저속하게 표현하며  노망(老忘)이라는 말을 쓰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처음에 말했듯 인간이 정말 망각의 동물이라면, 우리는 삶에 존재하는 모든 기억을 잊었다 되찾기를 반복하며 살고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모두가, 너무나 당연하게 말이다.
“슬프니까 그리려 들어. 즐겁기만 했으면 안 그렸을 거야.” 하르방은 말씀하셨다.<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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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루봉이 하르방 임경재 어르신과의 울고 웃는 데이트는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제주의소리>

정신지는 ?

이 여자, 택시 기사들과 대화 나누길 즐기는 ‘수다쟁이’다. ‘역마살’도 단단히 타고났다. 거기에다 ‘촌스러움’까지 좋아하는 독특하고 야무진 여자다. 그녀의 이름은 정신지(32). 파주·부산 출신의 부모님 아래 서울서 태어나 여섯 살에 제주로 이민(?) 왔지만 스무살에 다시 서울로 나갔다가 일본의 대학과 대학원에서 ‘지역연구학’이라는 인문학을 전공했다. 그동안 세계 17개국의 섬·지방·대도시를 떠돌며 사람과 집단, 그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혀왔다. 지난 봄, 일본의 국립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學)에서 문학박사 과정도 수료했다. 이제 12년간의 지구촌 유목 생활을 마치고, 태어난 곳은 아니되, 자신을 성숙하게 키워준 ‘진짜 고향’ 제주로 지난 봄 돌아와 부모님이 살고 있는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에 짐을 풀었다.  매주 한차례 <제주의소리>를 통해 제주와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고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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