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3) 설문대할망의 속 깊은 물

설문대할망이 설계한 제주의 겉 표면은 할망이 누워 자는 제 그림자의 크기로 만들었기 때문에  크고 힘이 센 할망 홀로 살아가기 엔 너무나도 비좁은 땅, 하나의 외로움을 키우는 땅이 되어버렸지만, 할망이 만든 제주 땅속은 ‘생명의 지하수가 넘쳐나는 물통’이어서 그 깊이를 더듬어 들어가면, 측량할 길 없는 심연으로, 사람들은 뒤에 그것을 할망의 사랑, 모성(母性)이라 하였다.

거대한 여신이 혼자서 세상을 만들었다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제주형 거녀 신화인데 설문대할망 신화의 독자성을 인정하지 않고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넘어가는 시기의 신화라는 식의 생각은 좀 어색해 뵌다. 설문대할망 신화는 제주형 거녀 창세신화로서의 여성성으로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며 어머니 사랑의 탯줄이다. 그것은 줄지 않는 속 깊고 영원한 풍요의 하나, 속 깊은 어머니 사랑[母性]은 하나라는 1‘=하나’의 수 철학을 완성하였다. 그러므로 설문대할망 신화는 누구나 생각해 낼 수 있는 사실, ‘제주도는 물의 의해 창조되었다.’ 바다 한 가운데 화산이 폭발하여 제주 섬이 생겨났다는 사실을 제주 사람들만의 그려낼 수 있고, 꿈꿀 수 있는 상상력으로 생명의 땅에 영원히 솟구치는 생수처럼 모성을 그려내었다.

설문대할망은 그녀가 만든 땅의 생수를 발로 딛고 깊이를 재어 본다. 제주 땅을 밟아보는 것이 어쩜 제 몸속을 들여다보는 것 같다. 제 몸에 혈관처럼 흐르는 물, 그런데 그 물은 사랑의 깊이처럼 다르다. 할망은 바닷가 마을 제주시 용담동에 있는 ‘용연물[龍淵]’에 들어서 보았다. 물은 맑고 청랑했고 맛은 달았다. 그 깊은 물은 발등에 까지 밖에 올라오지 않는 얕은 물이었다. 할망은 이런 해안에 솟아나는 물들을 해안의 거의 모든 마을에 만들어 주었다.

사람들은 이 물을 생명의 식수, ‘생수’(生水)라 하였다. 할망은 조금 위로 올라가 지금의 서홍리에 있는 ‘홍리물’에 서 보았다. 그 물의 깊이는 발목같이 찼다. 그 물이면 논에 물을 대어 농사를 지을 만큼은 될 것 같았다. 이런 물들은 많은 양을 흘려보낼 수 있어 논농사를 지을 물, ‘생산의 물’로 사용하게 하였다. 그리고 할망은 한라산에 올라 물장오리 물에 서 보았다. 물 가운데 서자 물의 깊이를 잴 수 없는 심연이라 할망의 몸은 물장오리 물속에 빠져 하나가 되었다. 할망의 크기 만큼이라지만 할망의 크기를 재던 땅밖의 크기와는 다른 생명의 깊이였기 때문에 헤아릴 수 없는 것이었다. 그것은 ‘생명의 물’이었고, 그 깊이는 설문대할망 사랑의 깊이, 영원한 제주 사랑의 깊이였다.

물의 깊이를 재며 할망은 제주의 땅속을 들여다보듯 제 몸을 들여다보며 물장오리 물통과 할망의 몸은 하나가 되어 영원 속으로 빨려들었다. 이것이 지하수가 영원히 흘러넘치는 약속의 땅, 이여도라는 낙원을 제주 땅에 설계한 설문대할망의 물 이야기다. 

제주도는 화산이 폭발하고 용암이 분출하고 흘러내려 만들어진 화산도다. 그런데 설문대할망 본풀이는 할망이 방귀를 뀌니 천지를 진동하게 하였고, 그 굉음 너무 요란하여 화산을 폭발케 하였으며, 물을 뒤집고 바다 속의 용암이 분출하여 산을 만들었다. 할망은 이 난리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바다 속에서 흙을 삽으로 퍼 올리고, 치마로 흙을 날라 오름을 만들었고, 돌을 모아다 한라산 아흔아홉 골에 안개가 끼고 바람이 흐르게 하였다.

사람 사는 세상 제주를 만들기 위해 할망은 제주에 서로 외롭지 않게 새 세상을 열어갈 500명장군들을 탄생시켰다. 할망은 한라산 서북 벽에 영실 기암을 돌로 빚었고, 이들을 오백장군이라 불렀고 이 돌 장군에 뜨거운 바람 입으로 불어넣어 생명을 완성하였다. 이것이 한라산 영실기암에서 태어난 최초의 한라산신이다. 

할망은 돌로 만든 500장군에 생명을 불어넣어 최초의 사람 500의 장군을 만들어 한라산을 다스리게 하였는데 이들을 하로산또라 하였다. 이 뜻은 한라산신이란 뜻이다. 

설문대할망의 몸을 이루는 것은 물 이외에 또 무엇이 있을까? 그리고 몸에 담고 있는 할망의 신성(神性)은 무엇일까? 제주 사람들에게 “설문대할망은 어떤 신인가?” 할망은 어떠한 능력을 가진 신(神)이었는가를 그려보려는 물음, 거기에는 할망의 신성(神性)에 대한 명상을 포함하고 있다. 키가 크고 힘이 센 설문대할망이 몸속에는 무엇이 들어있으며, 할망의 신령함이라 말할 수 있는 것, 제주정신의 바탕이 되는 설문대할망의 신성(神性)은 어떻게 완성되었는가 하는 가장 근본적인 물음이다.

제주 사람들은 설문대할망은 키가 크고 힘이 센 여신(=할망)이었을 뿐만 아니라 할망의 몸에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 ‘그 모든 것’은 무엇일까? 큰 키, 센 힘과 같은 신의 위대한 성격과 가진 영력(靈力), 할망의 몸에 담겨 있는 모든 것은 바람[風], 물[水], 불[火], 흙[土], 돌[石]이며, 이러한 질료들은 제주의 자연에서 취할 수 있는 것이라면, 설문대할망이 만들었다는 제주도와 설문대할망은 다른 둘이며, 그것이 그것, 즉 제주도가 설문대할망이라는 같은 하나다.

그런 가설 속에는 육지 사람들이 제주도를 두고 삼다도(三多島)라 하며, 여자가 많고(女多), 바람이 많고(風多), 돌이 많다.(石多)를 말하는 것이 설문대할망 본풀이 속에서는 바람, 물, 돌, 흙, 불이라는 자연의 모든 속성을 다 이야기 한다. 제주도는 설문대할망을 다 품을 만큼 큰 물통이었다. 제주 땅은 물에서 태어났다는 단자론은 발전하여 바다 밑의 흙과 돌을 긁고, 삽으로 퍼 올려 한라산을 만들었다는 물, 흙, 돌 3원소론으로 발전하며, 물속에는 물, 흙, 돌이 불 속에서 용암의 형태로 부글부글 끓고 있다가 갑자기 용암으로 흘러 바위와 흙이 되고, 바람에 풍화하여 여러 가지 형태의 자연을 만들었고, 사람형태의 돌사람, 500장군을 만들었다.

몸속에 불과 물을 섞어 피가 돌게 하고 물로서 불을 식혀 체온을 만들고, 물을 마시고 바람을 마시고 오줌을 싸 몸속을 정화하는 여신인 설문대할망과 같은 모습을 가진 500명의 아들을 만들어 인간 세상을 열었으니 사람 사는 세상 제주도는 윤곽이 잡혀갔다.

이와 같이 설문대할망 본풀이라는 제주형 거녀신화는 설문대할망과 제주도가 둘이면서 하나라는 데 제주창세신화의 비밀이 있다.  설문대할망의 몸이 바람, 물, 불, 흙, 돌로 만들어졌다면, 여기에 바람은 할망의 몸에 숨을 쉬게 하고, 피를 돌게 하고, 뼈를 만들고, 살을 만들고 결국은 자신과 비슷한 모습으로 이 세상 제주 땅에 제주의 사람 오백의 장군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다. 할망의 몸에는 제주의 자연을 이루는 이런 질료들이 바탕을 이루었고, 제주 사람의 영혼과 육체는 신이 자기 모습으로 제주 사람을 만들었다는 데 서 이루어진 신성론이다.

할망의 살과 뼈, 피와 골, 몸속에 담긴 정신은 바다에서 건져낸 흙과 돌 그리고 물과 불이 범벅된 용암이며, 하늘과 땅, 제주 땅과 제주사람 사이를 흐르는 바람에서 비롯하였다. 설문대할망이 우리가 살고 있는 제주 땅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다른 쪽으로 진행시켜보자. 제주 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할망의 몸속엔 어신 거 어시 다 이서.” “할망이 제주도주.” 설문대할망이 어떤 할망인가 생각해보는 데서부터 제주 사람들은 제주에 태어나 제주에 살고 있는 ‘나[=제주인]’를 찾게 된다. 그래야 육지 사람과 다른 할망의 자손이 되는 것이다.

▲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제주의소리

제주를 만든 설문대할망은 하늘에서 내려온 신이 아니다. 그리고 설문대할망 신화는 그리스 신화나 북유럽신화의 거인신화와는 다른 제주 사람들의 상상력이 그려낸 제주형 거녀설화이며 그녀의 제주 땅 건설 과정을 보면 화산섬 제주의 형성과정을 제주 사람들의 상상력으로 재구성한 신화로 후대에 지명전설의 형태로 남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제주사람이라면 제주땅을 만든 이야기 속에 남아있는 제주형 창조신화를 새롭게 재구성하여 <설문대할망 본풀이>를 완성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시인·민속학자 문무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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