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지원책, 농민들 '그림의 떡'

지난달 16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 국회비준안이 통과된 뒤 제주농업의 최고 화두는 ‘과연 제주농업이 FTA시대를 맞아 출구가 있을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이에 대한 대답은 다양하다.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더 이상 희망이 없다”는 의견부터 “정부가 올바른 농업정책을 펼치면 오히려 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의견 등 가지각색이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농민들은 울분과 절망 그리고 분노로 얼룩져 있다는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없다. 한-칠레 FTA 국회비준이 확정되던 그 날의 참담함을 상기하며 농민들의 심정과 그들이 생각하는 대안은 무엇인지 들어봤다.

△도대체 무엇이 달라지는 건지...불안하기만 한 농민들

제주시 도련동에 소재한 키위 하우스시설 앞에 멈춰섰다. 이 곳은 제주키위영농조합에서 총무를 맡아 제주지역 키위의 경쟁력을 한 단계 올린 고봉주(45)씨가 일하는 키위하우스다.

고씨는 90년대 이후 불어 닥친 농산물개방에 대응해 친환경농업에 전념한 결과 도내 처음으로 무농약 품질인증을 획득하는 등 고품질 키위생산에 앞장서온 농사꾼이다.

그런 그가 요즘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한-칠FP FTA 국회비준안이 통과됐으니 칠레산 키위가 수입될 것은 자명한데 도대체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감이 안 잡히기 때문이다.

고씨는 “칠레는 세계시장에서 키위생산량이 17%에 달하는 과일수출국이어서 제주산 키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며 “하지만 이와 관련한 어떠한 정보나 대처방안이 없어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할지 막막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남제주군에서 감귤농사를 짓는 김모씨(39)의 경우에도 그동안 자신의 감귤과수원 2000평과 남의 과수원 3000여평을 임대해 수년간 농사를 지어왔지만 감귤가격 폭락으로 감귤농사를 접어야만 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그나마 있는 2000여평의 과수원도 융자받고 보증서다보니 실제로 남은 것은 하나도 없다.

김씨는 “요즘 폐원신청들 하고 있는데 나는 그마저도 할 수가 없다. 부적지과수원이 아니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그냥 감귤나무를 베어내야 할 판”이라며 “이젠 더 이상 농사짓기도 힘들고 그렇다고 특별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살길이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이젠 정말 실질적인 지원을...

“자금 지원요? 그건 남의 얘기죠...융자지원 백날 받아 봐야 빚만 늘고 결국엔 농사짓는 땅마저 다 빼앗기는데...“ 라며 말끝을 흐리는 농민을 보며 착찹함을 지울 수가 없었다.

지금 우리의 농촌은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위기에 처해있다. 정부가 FTA와 관련 각종 특별법안과 수천억원의 예비비를 편성해놓고 지원한다고 호들갑이지만 정작 농민들은 새로운 작물을 찾지 못하거나 찾는다 하더라도 담보능력이 없어 빚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정부가 농업정책의 잘못으로 농가의 빚을 늘리는데 역할을 했기 때문에 농가부채의 일정부분 경감해주고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러나 각종 지원책이 나와도 농민들은 반갑지가 않다. 농촌지역 연대보증으로 연쇄파산의 후유증에다가 농신보 대출한도인 5000만원을 초과하거나 담보능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보다 완벽한 지원대책이 전제되지 않는 한 농민들을 다시 빚더미로 몰아넣는 꼴이 된다.

복지시책도 마찬가지다. 농업인자녀 학자금과 영유아 양육비지원을 늘리고 농가도우미사업을 현실에 맞게 조정해야만 한다. 도대체 영유아 양육비지원사업 등을 거주지의 토지용도에 따라 제한하다니 그 발상자체가 의심스럽다. 농가도우미 지원일수도 30일에서 90일로 늘리고 지원단가도 현실화시켜야 한다.

지금 농민들이 원하는 것은 거창한 대책이 아니다. 그야말로 어려움에 처해 있는 농민들에게 도움이 되는 지원책을 원하고 있다. 대출 및 농신보 상한선과 복지시책을 확대하는 등 실제로 활용이 가능한 지원 말이다.

△농업강국 칠레, 극복대안 있나

칠레는 지리적으로나 기후적으로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고 있는 나라다. 남북으로 4200㎞에 달하는 광활한 면적이 있기에 아열대와 온대, 한대가 모두 공존해 다양한 과일을 생산하는 농업강대국이다.

정부가 한양대 연구결과를 토대로 10년간 품목별 피해예상액을 보면 키위를 347억원으로 예상했고 무관세쿼터를 제공하고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 뒤로 논의하기로 한 감귤의 손실은 미미할 것으로 분석했다.

그러나 이같은 한양대 연구결과를 토대로 한 정부의 예상은 자칫 엄청난 농정실패를 야기할 수도 있다. 그것은 타 과실류나 소비대체, 피해농가들의 대체작물 전환에 따른 공급과잉 등의 변수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한-중 마늘협상 파동으로 양파로 작목전환을 많이해 양파대란을 겪은 바 있고 오렌지 수입으로 감귤은 물론 사과, 배, 딸기, 토마토까지 가격이 폭락한 경험이 있다.

대다수의 농민들은 극복대안에 대해 특별한 처방이 없다고들 말한다. “고시 합격하고 출세한 높은 사람들도 못 내놓는 대안이 농민들에게서 나오겠냐” “평소에 먹는 밥 한 끼가 보약보다 더 중요하듯 평소 농업정책이 제대로 펼쳐졌다면 이러진 않았을 것이니 만큼 있는 정책이라도 제대로 펼친다면 그게 대안” 등이 농민들의 말.

김필환 한국농업경영인제주도연합회 사무처장은 “가장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알아야 하는 것이고 그 다음은 그것을 근거로 대책을 세워야 한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아직 이러한 준비가 덜 된 것 같다”며 “FTA 이후 여러 대책들이 나오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다수의 농가에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라며 정부의 호들갑스런 대책안에 대해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취재의 변]
국제화 세계화의 틀 속에서 농산물 개방화시대에 접어든 우리농업. 이미 그 극복방안이 나왔을런지도 모른다. 특별법을 만들어 각종지원을 하고 새로운 품종을 개발하고 복지혜택을 늘리고......그런데 이런 방안들마저 탁상공론의 한 단면을 보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 건 기자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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