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 어디냐 물으니 "궁금하면 50원", 황당하네?
기차역 어디냐 물으니 "궁금하면 50원", 황당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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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혁의 중국횡단기] (25) 우창역에서 산 기차표, 출발은 한커우역에서

기차역까지 멀지 않은 것 같아서 정류장과 좀 떨어져서 택시를 기다리는데 좀처럼 택시를 잡을 수가 없었다. 그사이 승용차들이 다가와 서 어디 가느냐고 묻고는 사라지기를 반복하는데 얼마 후엔 검정색 고급 승용차가 다가와 내 앞에 멈추더니 긴 생머리에 까만 선글라스를 낀 매력적인 여성이 나를 보면서 어딜 가느냐고 묻고 있었다.

설마 했는데 그녀도 택시 영업 중이었다. 남녀노소, 승용차, 오토바이를 가리지 않고 무허가 택시영업에 동원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훠처잔(기차역).” 내가 소리치자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그냥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한참 후에야 지나가는 택시기사가 나에게“뒤미엔 샹처(건너편에서 타라).”라고 말해줘서 그때서야 내가 엉뚱한 곳에서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허둥지둥 신호등이 바뀐 횡단보도를 건너 택시기사가 가르쳐준 길로 건너갔다.

기다리는 택시는 안 오고, 자가용 승용차들만 다가와서 어디 가는지를 물어본다. 내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한 청년이 차를 옆에 세우고 는 나에게 다가와서 정색을 하고 어디 가느냐고 물어본다.

“니취나리(어디 가느냐)?”
“훠처잔”
“스우콰이”

15원이면 그다지 비싸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청년의 낡은 승용차에탔다. 차를 출발시키고 나서 청년은 계속하여 말을 걸었다. 여기선 한국의 파오차이(泡菜, 김치)가 유명한데 나도 매우 좋아한다, 중국과 한국의 생활습관이 어떻게 다르냐, 외국여행은 자주 다니느냐, 어디를 갔다 왔느냐 등 들리는 몇 가지 단어로 그의 말을 유추하여 알아듣기는 하겠으나 대화를 나누기는 어렵고 건성으로 짧게 그의 성의에 답할 수 밖에 없었다.

오늘 밤 난징 가는 기차를 탈 수 있기를 기대했으나 기차 출발시간은 내일 아침 8시다. 오늘 밤은 어디서 자야 하나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역 근처 호텔에서 자는 게 좋을까 아니면 유스호스텔을 찾아 가는 게 나을까.

▲ 우한의 시내버스인 전차. ⓒ양기혁
▲ 우한의 시내에 다니는 이층버스. ⓒ양기혁

역 앞의 쉼터에 앉아 가이드북을 들춰보며 고민하다 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유스호스텔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곳을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탐로자 유스 호스텔. 영어로는 Pathfinder Youth Hostel, 우리말로 해석하면 ‘길을 찾는 사람들’이니, 줄여서‘길찾사’라고나 할까.

역 앞에는 택시들이 줄을 서서 장사진을 치고 있었다. 가까이에 있는 차로 다가가서 지도를 보여주며 갈 수 있느냐고 묻자 기사는 지도를 들여다보고 나서 30원을 달라고 한다. 택시를 탈 때마다 흥정을 해야 하니 피곤한 노릇이고 여행객의 비애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택시는 유스호스텔 입구에 앉아 있는 노인의 제지를 받고 멈췄다. 유스호스텔은 후베이(湖北)미술대학 옆에 있었고, 유스호스텔 건물 자체가 미술관의 일부로 사용되던 것을 개조한 것으로 보였다. 그래서 그런지 낡은 건물의 벽이나 담벼락 같은 곳에는 페인트로 그림을 그려 넣은 것이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도미토리 8인실의 배정받은 침대에 짐을 내려놓고,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지갑을 채우기 위해서 은행도 찾아볼 겸해서 거리로 다시 나왔다. 미술대학이 있는 곳이라서 그런지 주변이 미술도구를 파는 가게들이나 갤러리로 채워져 있었다. 둔황에서 성공한 다음부터 신용카드로 돈을 인출하기가 더 쉬워져 중국은행뿐 아니라 다른 일반 은행에서도 인출할 수 있었다.

호스텔 카페에서 양파와 계란을 넣어 볶은 밥과 맥주 한 병으로 저녁을 해결하고 우한에서의 하루를 마감했다. 우창역에서 산 기차표, 출발은 한커우역에서 아침에 눈을 떠 핸드폰을 열어보니, 6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8시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려면 일어나 나갈 준비를 해야 할 시간이다. 화장실을 다녀오고 물을 묻혀 머리를 정돈하고 간단히 세수를 하고 나서 방으로 와 짐을 꾸리기 시작한다. 커튼이 쳐져 있어서 방은 어두컴컴하고 모두가 단잠에 빠져 있다. 어둠 속에서 짐을 배낭 속에 차곡차곡 챙겨 넣었다. 여행 중에 짐을 꺼냈다 집어넣기를 반복하다 보니 이젠 순서와 요령도 생겼다.

▲ '길을 찾는 사람들'의 전경. ⓒ양기혁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입구의 데스크엔 아무도 없다. 방 열쇠를 돌려주고 보증금을 돌려받아야 하는데…. 잠시 서성대고 있으니 밖에서 노인이 들어왔다. 어제 택시 타고 왔을때 입구에 앉아 있던 노인이다.

“워튀팡(我退房, 체크아웃).”

노인에게 말하자 알아듣고 데스크 안쪽에 누군가를 불렀다. 그때서야 여자아이가 나와서 졸린 눈을 비비며 보증금 영수증을 확인하고는 돈을 꺼내주었다. 도로에 나오자 이른 아침 시간이라 그런지 빈 택시가 금방 앞에 와서 멈춰섰다. 그리고 기차표를 샀던 우창역에 도착해서 나온 택시요금은 10원이었다. 어제 갈 때는 30원을 줬는데,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도 잠깐, 역에 들어서면서 엑스레이검사기 속에 배낭을 밀어넣고, 입구에 서 있는 직원에게 기차표를 꺼내 보여주는데 뭔가 이상했다. 기차표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을 가지고 안내데스크로 가서 표를 보여주며 물었다.
“짜이절 부넝상처마(여기서 차를 탈 수 없습니까)?”
표를 본 여직원은 지금 빨리 한커우역으로 가라고 말한다. 지체 없이 밖으로 나와 택시를 찾았다. 어제 오후에 그렇게 많았던 택시들이 보이질 않고, 겨우 한 대가 보닛과 창문을 모두 열어놓고 차를 손보는 중이었다. 택시에 다가가서 한커우역으로 가자고 말하자 차를 청소하고 있던 기사는 대답이 없고 옆에 서 있던 깡마른 체구의 청년이 다가와서 손에 들고 있던 내 기차표를 보고 나서 택시기사에게 뭐라고 말을 건넸다. 그리고 청년은 나에게 앞에 세워둔 검정색 승용차를 타라고 말한다. 내가 그에게 물었다.

“둬샤오치엔(얼마냐)?”
그는 요금은 말하지 않고 시간이 없으니 빨리 타라고만 말한다. 내가 한 번 더 조금 더 큰 소리로“둬샤오치엔!”하고 소리치자 그제서야 그가 요금을 말했다. “빠스콰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되어 흥정을 시도했지만 그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시간을 끌 여유가 없어서 할 수 없이 승용차에 올라탔다. 아직 한 시간의 여유가 있으니 충분히 한커우역까지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청년의 마르고 날렵한 인상이 솜씨 좋게 운전할 것 같은 기대를 갖게 했다.

그러나 7시가 넘어가면서 차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러시아워였다. 차들이 밀리고 속도를 내지 못했다. 그리고 장강대교를 건너서 한커우 시내로 들어서면서 도로가 좁아지고 차들이 더 밀리자 운전에 몰두하던 청년도 불안한지 심각한 표정이 되어 7시 40분을 나타내는 시계를 가리키며 나에게 한마디 했다. 나는 그가 한 말을 알아듣지 못했다. 그러나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말했다.

“이즈저우바(계속 곧장 가라).”

말을 알아들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한커우 기차역의 웅장한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가자 역에서 8시를 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차의 출발시간은 8시 10분이었다. 차는 역 광장에 멈추고 약속한 요금을 지불했다. 청년이 돈을 받으며 걱정되는지 한마디 건넸다.

“스지엔부둬러. 콰이저우.(시간 없다. 빨리 가라.)”
배낭을 짊어지고 광장을 뛰어가기 시작했다. 등에 진 묵직한 배낭이 덜렁대며 움직여서 속도를 내기 힘들다. 역에 들어서서 엑스레이 검사기에 배낭을 통과시키고 나자 옆에 서있던 여직원도 내 손에 든 기차표를 보고는 한마디 한다.

“콰이 저우(快走, 빨리 가라).”
“짜이날 상처(어디서 차를 탑니까)?”
“알로우(이층).”

여자는 사람들이 몰려가고 있는 에스컬레이터를 가리킨다. 이층으로 올라가자 사람들로 가득한 거대한 대합실이 나타났다. 양쪽의 벽에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점멸되는 글자들이 흐르다가 사라지는데 수십 군데의 개찰구에서 어디로 들어가서 기차를 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마음이 다급해지니 차분하게 알아보기도 힘들었다. 청소하는 아주머니 두 사람이 지나가자 황급히 붙잡고 물었다.

“워야오취난징, 짜이날 상처(난징 가려는 데 어디서 차를 타느냐)?”
여인네들은 대답은 하지 않고 자기들끼리 쳐다보며 웃고는 그냥 가버린다. 내가 뭘 잘못 얘기했나? 생각하는데 한 중년 여인이 다가와서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니부상처(당신은 차를 타지 못한다).”
그리고 뒤이어 작은 키에 다부진 체격의 남자가 오더니, “우스콰이(오십원).” 손바닥을 펴 보이며 오십 원을 내면 자기가 기차를 탈 수 있게 데려다 주겠다고 한다.

기차 출발 시간은 이제 몇 분 남지 않았다. 그가 어떻게 데려다 줄지 는 모르지만 망설이고 있을 수 없었다. 나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는 내 배낭을 받아서 어깨 위로 올려 메고는 뛰기 시작했다. 나도 따라서 뛰었다. 한 개찰구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내려가더니 거기 난징 가는 기차가 대기하고 있었고 그는 배낭을 기차 안으로 들이밀고 나서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불과 1분도 채 안 되는 동안에 벌어진 일이었다. 나는 좀 황당하고 어이가 없었다. 그런 정도는 낯선 여행객에게 친절을 베풀어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개찰구를 지나서 계단을 내려가면 된다고 그냥 가르쳐 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급박한 순간을 절묘하게 이용하는 이들의 비상한 장사 수단에 감탄해야 하는 건지 상대방의 딱한 처지를 이용하여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 비열한 짓이라고 비난을 해야 할 것인지 혼란스럽다.

어쩐지 지갑에서 돈을 꺼내주기가 싫었지만 그래도 약속이고 거래인지라 지갑에서 100원 지폐를 제외하고 남은 40원을 그에게 내밀었다. 그는 10원을 깎아줄 것인지 잠깐 망설이더니 그 돈을 받고 돌아갔다. 그리고 곧 기차는 출발했다. 나는 좋게 생각하기로 마음먹었다. 지출이 좀 있었지만 기차요금 180원은 살아났다.

기차는 깨끗하고 쾌적했다. 전에 탔던 기차와는 다른 고급스런 분위기에 승객도 붐비지 않고 빈 좌석이 많아 여유가 있었다. 아마 등급이 다른 고급열차인 모양이다. 기차 내의 매점에서 산 커피 한잔과 비스킷으로 아침 식사를 대신하고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몇 군데 중간 역을 거치고 한적한 농촌 풍경도 뒤로 하고 몇 시간 후기차는 또 다른 장강대교를 건너가면서 난징에 도착하였음을 알렸다. 아래는 6.7km의 철도, 위는 자동차가 다니는 4.5km의 고속도로로 된 거대한 규모의 이중복합교인 난징의 장강대교는 우한의 장강대교가
러시아의 지원으로 건설된 반면 순수한 중국 자체 기술로 건설되어 1960~70년대 중국인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준 상징물이기도 했다.

기차역에 도착해서 우선 다음 가야 할 공자의 고향 취푸(曲阜, 곡부)로 가는 길목인 옌저우가는 기차표를 먼저 알아봐야 했다. 뜻밖에도 기차는 오후 2시 50분 출발이다. 겨우 세 시간 남짓 남았을 뿐이었다. 태평천국박물관과 난징대학살기념관은 가보고 싶었다. 세 시간이면 그중 가까운 한 곳은 가볼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역 밖으로 나왔는데 마침 소나기가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두 곳 다 역에서 가깝지가 않았으므로 비가 내리는 것을 핑계로 난징 관광을 포기하고 바로 옌저우로 가기로 작정했다. /양기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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