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대학의 라인하트와 로고프 두 교수는 2010년 한 논문을 통해 "과다한 국가부채가 그 나라의 경제성장을 크게 저해하기 시작하는 시점은 그것이 GDP의 90%를 넘어설 때부터"라는 실증적 조사를 발표했는데 이것은 그 후 재정삭감을 주장하는 미국의 공화당 정치인들이나 남유럽 재정위기에 대해 긴축재정을 해법으로 제시하는 유럽연합의 정치인들이 가장 자주 인용하는 이론적 무기가 되었다.

그런데 절묘한 시점에 반박 이론이 등장했다. 일주일 전 미국 매사추세츠 대학의 경제학자들이 로고프 교수의 논문에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논문을 발표하여 미국 경제학계를 발칵 뒤집었다. 특히 MS 엑셀을 다루는 과정에서 일부 중요한 통계가 누락되었다는 이들의 주장을 로고프도 시인했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소신을 주장할 때 반드시 전문가들의 이론이 필요한 모양이다. 그 동안 숨을 죽이고 있던 반 긴축 세력이 반격에 나섰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의 수장, 마누엘 바호주 위원장은 그의 막강한 권한에 비해 목소리가 작았다. 독일과 프랑스 양국 정부가 사전 조율하고 합의한 사항을 집행하는 고무도장 같은 역할을 해 왔다는 비난이 없지 않았다. 그런 그가 유럽은 재정적자 감축을 더 이상 밀어붙이기 힘든 정치적, 사회적 한계에 봉착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기에 이르렀다.

IMF도 케인즈 학파로 알려져 있는 사람들이 주요 보직에 포진해 있다. 이들은 긴축보다는 경기부양 쪽을 강조하며 지나친 재정긴축은 세계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리스 스페인 이탈리아 등 어려운 나라들에게는 재정적자 감축목표 달성 시기를 몇년씩 연기해주어야 하며, 다른 나라들은 정부지출의 지나친 감축을 자제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정치·사회적 수용한계에 봉착한 유럽

IMF의 이러한 자세는 현재 미국 민주당의 경제철학에 가까운 것이다. 긴축주의자들이 수세에 몰리기 시작한 것은 유럽 재정개혁의 구심점이 없어지면서부터다. 올랑드 대통령은 선거 공약에서 긴축반대를 내세웠다. 그러한 그도 정부의 지출이 한 나라 GDP의 56%를 차지하는 것이 지나친 것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를 개혁하는 데 많은 애를 써왔다.

그러나 최근의 제롬 카위자크 스캔들, 즉 예산장관이 자기의 스위스 비밀계좌를 숨겨왔고 대통령과 내각도 이를 감싸고 돌았던 사건으로 말미암아 올랑드 정권은 "캐비어(caviar, 최고급의 철갑상어 알) 좌파"라는 오명을 쓰게 됐다. 이래서는 유럽의 개혁을 이끄는 독-불 쌍두마차를 끌어갈 수가 없다.

영국의 비협조도 지적되어야 한다. 생전에 마가렛 대처 여사는 "사회라는 것은 없다. 남자와 여자라는 개인들 그리고 가족이 있을 뿐이다"라며 작은 정부를 추구했고 유럽 단일 통화 출범에 대해서도 이는 각 회원국들이 자기의 주권을 포기하는 것이라며 반대했다. 영국도 프랑스도 없이 독일 혼자서 개혁을 이끌기에는 독일의 지난 역사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지난 주말 G-20 경제장관회의도 일본이 돈을 찍어내서라도 경기부양을 하겠다는 터무니없는 통화정책에 청신호를 보냈다. 엔저를 유도하여 일본의 수출동력을 부활시키겠다는 것이 뻔한데도 환율은 부산물일 뿐이라는 일본의 궤변을 용인한 것이다. 원칙도 구심점도 없이 표류하는 세월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독일 혼자는 개혁의 동력 될 수 없어

2007년 미국의 주택가격 폭락을 일찍 예견하여 큰 돈을 벌었던 미국의 헤지 펀드, 폴슨 사의 대표 존 폴슨은 2010년에는 앨런 그린스펀을 고문으로 영입한 이후에는 금(金) 투자에 몰입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끝없는 양적 완화는 기필코 물가 및 자산 가격의 거품을 초래할 것이라는 믿음에 기초한 것이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제주의소리
IMF가 키프로스 구제금융의 조건으로 중앙은행의 금을 매각할 것을 요구했다는 소식과 이것이 다른 유럽 중앙은행에게도 적용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로 최근 국제 금 가격이 크게 하락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폴슨 사의 투자전략은 요지부동이다.

블룸버그 통신이 세계적 금 전문가 29명을 상대로 조사한 설문의 답을 평균내면 금년 연말의 국제 금값은, 최근 폭락 직전의 가격보다 훨씬 높은 온스 당 1717달러였다고 한다. 금은 물가와도 관계 있지만 불안심리와 더 밀접하게 움직인다고 하는데 한동안 두 가지가 함께 작용할 것 같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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