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후 칼럼> 고사리밭은 인간의 행복, 욕망, 이기심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장소

 

▲ 채취한 고사리를 보며 즐거워하는 사람들. ⓒ제주의소리DB

겨우내 얼어 붙었던 땅을 뚫고 연약한 식물들이 싹을 틔우고 꽃들이 활짝 피는 4월에서 5월 중순까지 제주는 어린 고사리를 꺾으며 행복을 느끼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영국시인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T. S. Eliot)은 " 황무지" 에서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이라고 표현하였다. 하지만 녹색의 옷으로 갈아 입는 산과 들녘에서 고사리를 꺾는 즐거움은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제주에 내리는 봄비인 이른바 ‘고사리 장마’는 고사리의 생육에 큰 도움이 된다. 비가 온 다음날 불쑥 올라온 고사리는 사람들에게 큰 행복을 선사하는 진객이다.

4월 들어 매일 새벽부터 많은 주민과 관광객, 전문 채취꾼들이 배낭, 고사리 앞치마, 장갑 등으로 무장하고 고사리 꺾기에 나선다.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과 어울러져 목가적이고 낭만적인 모습을 연출한다. 주말이면 산과 오름, 들판에 고사리보다 사람들이 더 많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로 제주는 고사리 채취 열기로 달아오른다.

사람들은 고사리가 많이 자라는 장소를 먼저 발견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그러나 많은 채취꾼들이 훓고 지나간 자리를 보물찾기 하듯 유심히 살펴보면 고개를 내밀고 있는 어린순을 찾을 수 있다. 고사리에 홀리다 보면 산나물 채취 금지구역에 죄책감 없이 용감무쌍하게 들어가거나, 길을 잃어버려 실종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고사리 채취에는 꺾는 행복과 생명을 거두는 잔혹함이 함께한다. 고사리의 어린순은 어린애가 귀여운 손을 꼭 쥔 모습을 하고 있다. 고사리는 숲이나 풀 속에 꼭꼭 숨어 있어 찾기가 여간 쉽지 않다. 털이 보송보송하고 꼬불꼬불한 머리 모양을 한 어린순이 곧추서 있는 모습을 보는 순간 자연의 경이에 놀라면서 꺾는 쾌락에 빠져든다.

고사리 찾기에 집중하다 보면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몰입상태에 이르게 된다. 고사리를 꺾느라 자주 굽히게 되는 허리에 전해지는 통증은 느낄 새가 없다. 고사리를 식별할 수 없을 정도로 날이 어두워져서야 문득 시간이 가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고사리를 어렵게 찾아서 밑동을 꺾는 일은 잔인하다. 식물은 모든 것을 알고 있고, 감각을 동원해서 세계를 보고 있다고 한다. 하찮은 생명은 없다. 사람들에게는 행복한 일이지만 고사리는 생명을 빼앗긴다. 너무 작고 볼품 없는 고사리는 사람들이 눈길을 주지 않아 후손을 번식시키는 행운을 누린다.

늘씬하고 수려한 자태를 뽐내는 고사리는 쉽게 꺾이는 수모를 당한다. 모든 생명이 경이롭다는 자연의 이치에 조금이라도 공감한다면 사람의 손에 꺾이는 어린 고사리들이 느끼게 될 고통을 공유하고 싶은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고사리를 채취하는 사람들에게는 놀이하는 인간과 생존 욕구의 실현이라는 양가적 성향이 혼재한다. 자본주의의 발전과정에서 바뀐 베짱이와 개미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여가 시간에 고사리밭에 나가는 일이 마냥 즐겁고 행복한 일이다. 아름다운 자연과 함께하면서 ‘꺾는’ 짜릿한 순간을 향유하거나 맛있는 나물을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무한경쟁의 심리적 압박을 해소하고 삶의 가치를 높이는 재충전의 기회가 된다.

전문 채취꾼은 어린 고사리를 꺾을 수 있는 50여일 동안 최대한의 소득을 올리기 위해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인다. 귀중한 용돈을 벌거나 자손들에게 선물할려고 고군분투하는 나이 드신 어른들의 건강한 모습이 간간이 눈에 띈다.

65세 이상 노인 빈곤율이 45.1%인 우리 사회의 고령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회도 갖게 된다. 이들은 이른 새벽부터 주어진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면서도 들판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고사리를 보고 하루해가 너무 짧다고 한탄한다.

이렇게 채취한 고사리는 삶거나 말려서 시장에 내놓는다. 제주 오일장이나 동문시장에 가면  싱싱한 고사리를 구입할 수 있다. 국내에서 소비되는 고사리는 개인이 취미삼아 채취하는 자급자족용, 전문적 채취와 양식 재배, 수입산으로 구분된다.

양식 재배나 수입산을 빼고 사람들에게 정신적 물질적 행복을 안겨주는 고사리 채취 노력의 결과물은 국내총생산(GDP)에 포함되지 않는다. 지디피는 고사리 채취에서 느끼는 삶의 만족도나 행복을 재는 지표라고 할 수 없다. 지디피가 행복의 바로미터가 되지 못하는 이유다.

최근 행복에 대한 논의가 분분하다. 행복은 정신과 물질적 만족의 조화에 있다. 행복을 위해 경제성장을 통한 소득 증대는 필요하다. 소득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되면 소득이 늘어도 행복은 늘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우리는 늘 작은 행복을 꿈꾸지만 돈을 벌고 소비하는 욕망을 끝없이 자극하는 세상에서 행복은 멀어져만 간다. 인간에게 행복은 절박하지만 막연한 것일 수 있다. 돈 없는 사랑은 사랑이 아닌 사회에서 행복을 찾기는 어렵다. 소득, 기회, 지위의 격차가 벌어지고 빨리 빨리만 요구한다면 오히려 피로감만 늘어날 뿐이다.

▲ 권영후 소통기획자. ⓒ제주의소리
풀속에 꽁꽁 숨어있는 고사리를 발견하고 기뻐하는 사람들과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기를 쓰는 사람들이 고사리밭에서 조우한다. 베짱이의 즐거움과 개미의 부지런함이 충돌하지만 공유지의 비극은 발생하지 않는다.

고사리밭은 인간의 행복, 욕망, 이기심, 경쟁, 갈등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장소가 된다. 고사리 채취를 통해 충족되는 물질적 욕망은 우리의 삶에 필요한 요소다. 이와 함께 고사리 꺾기에서 배우는 정신적 가치는 행복지수를 높여줄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이에 현실로 존재한다. / 권영후 소통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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