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량농부...가수 정태춘, 박은옥씨를 만나다.
"요즘 어떻게 지내지?"
"귤따느라 정신이 없으니 와서 좀 거들어라."
"귤 수확을 시작했구나. 그럼 내일 귤을 다섯 상자만 준비해주라."
"어디에 쓸려고?"
"태춘이 형과 은옥이 누나가 너네 집 귤을 잡수시고 싶단다."
친구가 말하는 태춘이 형과 은옥이 누나란 바로 가수 정태춘, 박은옥씨 부부를 말합니다. 이 친구가 어떻게 해서 두 분과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두 분이 가끔 제주에 다녀가실 때마다 제 친구를 만나고 가시는 정도만 알고 있을 뿐이고 작년에 제주에 방문하셨을 때 우연히 제가 재배한 귤을 잡수시고 기억하고 계시다가 구하고 싶다고 부탁을 하셨다고 합니다.
두 분에 대한 그런 추억을 간직하고 있었는지라 직접 제 귤을 잡수시겠다고 하니 정말 감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불량농부 생애에 이런 영광이 더 있을 수 있을까요?
며칠 전 까지만 해도 '동방신기'와 '신화'에 열광하는 학생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던 제가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리는 것은 무슨 일일까요?
공항에서 만나자는 전화에 귤을 차에다 싣고 급히 공항 출발탑승구로 갔습니다. 평소 제 스타일대로라면 주차장에 반듯하게 차를 주차했을 텐데 염치도 없이 출발탑승구 입구 구석에 차를 처박아 두고 단속 경찰관에게 사정해가며 상봉의 감격을 나누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귤 값을 받지 않겠다고 사양했는데도 박은옥씨는 극구 지갑을 열고 돈을 주셨습니다. 작별 인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음반가게에 들러서 귤값을 쪼개고 오랜만에 음반을 구입했습니다.
어린 학생들이 자신들의 스타에 열광하는 것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았던 지난 날의 행동이 부끄럽고 미안해져서 사과의 말을 한마디 하려 합니다.
"얘들아, 내게도 가슴을 두근거리게 하는 스타가 있단다. 난 오늘 그 스타를 만나는 감격에 빠져 있지. 나도 이젠 동방신기와 신화를 사랑하는 너희들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것 같다."
장태욱 시민기자
taeuk30@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