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땅에 생겨나는 건 골프장 그리고 리조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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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멍 보멍 들으멍] (37)아스팔트 위의 두 하르방, 금산의 추억 / 정신지

 

공유지 개발현장       개발의 현장 앞에 잠시 멈추어 생각한다. 좀 더 좋은 방법으로 ‘모두의 것’을 자연스레 나누며 살 지혜를 할망 하르방에게 다시금 배워야 할 때가 아닌지.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소음과 먼지로 꽉 막힌듯한 귀가 지저귀는 새소리에 뻥 뚫린다. 필터를 새로 갈아 낀 진공청소기처럼 힘차게 숲의 공기를 빨아들이고 나니 몸도 마음도 상쾌하다. 그렇게 한참 숲 속을 걸었다. 붉고 촉촉한 흙을 만져보기도 하고, 오래된 곰솔 나무를 두 팔로 안아보기도 하며, 소풍 나온 아이 마냥 걷는다.

애월읍 납읍리에 있는 금산공원은 희귀한 난대림지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숲이다. 비단처럼 아름다운 나무들이 많다 해서 이 숲은 금산이라 이름 지어졌다. 수백 년은 되었을 거라는 금산의 숲에는 신령님도 사신단다. 나쁜 기운을 막아주고, 마을 아이들이 건강하고 똑똑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해주는 신령 깃든 이 산을 마을 사람들은 오랜 시간 보물처럼 아껴왔다. 일 년에 한 번 마을의 포제(제주지역에서 행하여지는 유교식 마을제사의 일반적인 명칭)가 있는 날이면, 관계자 이외에는 통행도 제한될 정도로 금산은 신성한 곳이다. 숲 안에 자리 잡은 포제단에서 제관(제사를 통괄하는 인물)들은 열흘 정도 머물면서 의식을 진행하는데, 제관이 되려면 나이도 먹어야 하거니와 몸도 마음도 깨끗한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고 오는 길에 만난 동네 할망도 말씀하셨다.

그렇게 숲을 걸으며 정글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만끽하고 있던 중, 갑자기 내 앞에 총을 들고 군복으로 무장한 채 얼굴에 시꺼먼 먹칠까지 한 남자가 나타난다. 숲 한 가운데서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다짜고짜 그에게 혹 영화촬영이라도 하느냐 물었다. 그러자 모자를 벗어 죄송하다며 고개 숙이는 무장군인(?)의 정체는 서바이벌게임을 하러 온 제주시의 고등학생이었다. 가까스로 힐링되려던 나의 몸과 마음이 그들의 병정놀이에 화들짝 놀란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신성한 숲에서 미군복(그것도 상당한 고가로 보이는 서바이벌게임용)으로 무장한 채 병정놀이를 하던 학생들 탓에, 마이너스 이온 가득한 숲 속에 나의 어두운 한숨이 섞이고 만다.

금산무장 군인     즐겁게 산책을 하던 도중, 숲에서 무장군인(?)을 만났다. 자세히 보면 보이는가? 완전무장한 그의 정체는 다름 아닌, 병정놀이에 심취한 고등학생이다./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 유쾌한 두 하르방     장가가던 날 부끄러워 산으로 도망을 쳤다는 큰 하르방 이야기를 하며 모두 박장대소한다. 이렇듯 금산의 추억은 언제나 그들 마음 속에 자리 잡고 있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숲을 빠져나와 마을을 서성이다가 햇볕에 지글지글 데워진 아스팔트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아계신 하르방 두 분과 마주쳤다. 그 중 한 분이, “어디로 올라감수과(올라가세요)? 이디(여기)가 마을 마지막 동넨디?(동네인데?)” 하고 물으신다. 내가 올레코스를 걷는 관광객으로 보였던 거다. 그래서 터벅터벅 그들에게 다가가 반전의 무기인 나의 제주어를 슬그머니 꺼내 들고 넉살 좋게 답했다.

“아, 예~. 저는 근처 유수암에 살암신디예(사는데요), 오늘 날씨가 막 조아부난(좋아서) 이꺼정(여기까지) 걸으러 온 거 마씨(에요). 금산도 걷고, 이디(여기) 잘도(정말) 좋은 마을인게예?(이네요?)”
“아이고 이 아가씨, 고튼(같은) 우뜨르(윗마을) 사람이로구나. 제주 토박이말을 잘도 썸신게(잘 쓰네)! 게민(그럼) 이디 왕 호끔 아잤당 가(여기서 조금 앉았다 가). 그디(거기) 걸엉가도 아무것도 어서(없으니까).”
“겐디(근데), 할아버님들은 차 다니는 질(길) 위에 아장(앉아서) 무시거 하셤수과(뭐 하세요)?
“뭣 허긴! 집에 이시민(있으면) 심심허난 게(심심하니까). 이디 아장 넘어가는 사람들 베렴주게(여기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 보는 거지).”
 
두 분은 서로 바라보며 껄껄껄 웃으셨다. 건강한 80대의 두 하르방은 듣자하니 친척이자 친구라신다. 말없이 길가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다가, 내가 나타나니 말문이 터지셨는지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고 간다.
“우린 아주 어릴 적부터 금산에서 자랐주게(자랐지). 보리볼래(보리수나무의 열매)도 따당(따다가) 먹고, 도토리도 봉가당(주어다가) 볶아 먹고. 옛날엔 도토리도 잘도 커나서! 지금은 낭이(나무가) 늙어부난(늙어서) 열매가 호끌락허주만(작지만). 학교가 어신(없는) 옛날에는, 금산 안에 있는 글청(서당)에서 글도 배와났고(배웠었고). 겐디, 왜정시대가 시작되멍(그런데, 일제강점기가 되면서) 그것도 어서져부렀주(없어졌지).”

올해로 여든일곱 살이라는 큰 하르방이 옛 기억을 더듬기 시작하신다. 그러자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나셨는지 웃음 섞인 목소리로 옆에 앉은 작은 하르방이 말했다.
“이 하르방이, 열일곱에 장게(장가) 가신디, 결혼식 날 장게 아니 가켄(안 가겠다고) 금산으로 도망 가부런 게(도망을 가버렸어)! 게난(그래서), 나가 도망간 거 다시 촛아왕(찾아와서) 결혼시켰주게. 허허헛”

무슨 그런 쓸데없는 말을 하느냐며 큰 하르방이 화를 낸다. 하지만 그들의 웃는 모습에는 소년 같은 장난기가 돈다. 그렇담 큰 하르방은 도대체 결혼식 날 무슨 사연으로 금산으로 도망을 쳤단 말인가? 가만히 있을 내가 아니다. 무언가 뒷이야기가 있을 것 같아 꼬치꼬치 캐물었다.
 
“할아버지, 혹시, 약혼자 말고 다른 애인이 있어수과(있었어요)?”
“어이, 그런 거 아니라!”
“그럼 혹시, 할아버지 독신주의자?”
“무시거(뭣이)?”
“그럼 뭔데요, 금산으로 도망친 이유가!”
그러자 조용히 말씀하신 한 마디.
“무산고허믄(왜냐하면), 막 부끄러완 게(너무 부끄러워서 그랬지)!”

그 말에 모두가 박장대소다. 그도 그런 것이, 제주에서도 유교적 전통이 타 지역보다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납읍리에서 그들은 자랐다. ‘남녀칠세부동석’을 수도 없이 들으며 자라온 열일곱의 청년에게, 하루아침에 떨어진 부모의 결혼명령은 그를 산으로 줄행랑치게 할 정도로 부끄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좋은 아내를 만나 70년을 동고동락하며 그는 슬하에 일곱 명의 자식을 두었다.

“할아버지, 할머니는 어디 계셤수과(계세요)?”
“오늘은 날 조난(날이 좋아서), 밭이 강 검질맴주게(밭에 가서 풀매고 있지).”
“왜 할머니만 일하시고 할아버진 이디 아자(여기 앉아) 계시는 거?”
“어이! 나도 젊은 적에 일 많이 해서(했어). 게난 이제 다 설러부런(그래서 이제 다 치워버렸지).”

금산숲속    상록활엽수가 우거진 납읍리 난대림 금산공원은 예로부터 선비들의 휴식처로 알려져 있다. 숲을 걸으며 나도 선비가 된 기분, 몸도 마음도 상쾌하다./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  곰솔나무      소풍 온 아이처럼 숲을 걷는다. 곰솔 나무를 두 팔로 안아보기도 하고, 흙을 손에 쥐어보기도 하며 걷는 숲길은 그야말로 치유의 길이다.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역시 제주는 할망이 대세다. 하르방들은 일이 없으면 노신다. 이렇게 가만히 길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바라보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다. 하지만 거의 모든 할망에게 휴일은 없다. 일이 없으면 일을 만들어서라도 하신다. 그들은 놀아도 밭에서 놀고, 물에서 노신다. 자식들이 제발 일 그만하고 쉬라 하셔도 쉬는 법을 모르는 게 제주의 어멍이고 할망이다. 더욱이 내가 와 있는 이 마을은,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의 전통이 제주에서 가장 강하다고 소문난 마을이 아니던가. ‘유교’를 키워드로 이어져 나가는 그들의 이야기가 재밌고 흥미롭다.

“이제도(지금도) 금산에선 포제를 허여(해). 나도 헌관(제관)이라. 원래는 일 년에 두 번을 허는디(하는데), 이젠 사람도 많이 없고 늙은 사람들 다 가불고 허난(돌아가시고 하니까) 한 번만 햄주게(하지). 나라에서 문화재로 지정하니까 돈도 나왐주만은(나오지만), 세금 떼어먹잰(먹으려고) 그거 한 거 아니냐! 원래는 마을 사람들 산인디(산인데), 이젠 나라에서 지정해부난 옛날추룩(처럼) 우리 것 같지 아니 허여(않아).”
큰 하르방 말씀에 화기애애하던 분위기가 사뭇 진지해진다.
 
“게메(그러게), 마을에 우리 어릴 적에 퐁낭(팽나무)이 잘도 많아나신디(정말 많았는데). 그 몇백 년 된 낭들도 게(말이야). 그것도 다 폴앙 데껴부렀주게(팔아서 없애버렸지). 사채 하는 사람들이 베어당(베어다가) 다른 데 심었어. 게난 이젠 큰 퐁낭이 어서(없어). 옛날엔 이디(여기)도 셔나고(있었고) 저디(저기도)도 퐁낭이 셔나서(있었어).”
그러던 중, 길을 가던 다른 하르방이 나타나 잠시 이야기에 합류하신다.
“이 아가씬 올레길 관광 오신거라? 금산 가봤어요? 저거 좋으면, 그냥 통째로 가져다 서울 한복판에 가져다 놓을 자신 있으면 가져가세요. 게민(그러면) 돈 많~이 벌겁니다.”
“아이고 무사(왜)? 또 금산 폴잰(팔려고)?”
“하하하. 가져가지도 못헌다.”

그렇게 갑자기 나타난 하르방이 금산을 서울에 가져가 돈을 벌라는 씁쓸한 농담을 남기고는 훌쩍 가던 길로 사라지셨다. 한 시간 남짓 수다를 떨었을까? 달아오른 아스팔트에 앉아있던지라 몸이 뻐근하다. 자리를 털고 일어나 하르방들께 인사를 하고 마을을 빠져나왔다. 즐거운 만남이었건만, 나도 모르게 집에 오는 길 내내 이 생각 저 생각 하며 마음이 무겁다.
장가가는 날 부끄러워 산으로 도망쳤다던 큰 하르방과, 그를 끌고 내려와 결혼식을 올리게 한 작은 하르방에게 있어 금산은 분명 기억의 보물창고다. 처음으로 글을 배운 그들의 모교이기도 하며, 제관이 되어 그곳에서 포제를 지냈던 그들의 성지이기도 하다. 이제 올레코스에 포함된 마을의 관광명소인 금산은, 멋진 화장실과 벤치도 있는 자랑스러운 곳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 좋다는 금산공원에 없는 게 하나 있다. 바로 마을 사람들이다. 나는 그들의 숲에서 미군복으로 무장하고 서바이벌게임을 하던 고등학생과 올레꾼은 보았지만, 마을 사람은 보지 못했다. ‘젊어서 일을 많이 한 탓에 할망은 일해도 나는 놀고 먹겠다’ 던 유쾌한 두 하르방이야말로 진짜 금산의 주인이건만, 나는 왜 그들을 금산공원의 비어있는 벤치가 아닌 무더운 아스팔트 길 위에서 만나야 했을까? 그 생각을 하며 돌아오는 길은 마음뿐 아니라 머리도 무겁다.
 
납읍리뿐만이 아니라, 제주의 마을, 우리나라의 마을, 나아가 세상의 거의 모든 마을에는 마을소유의 ‘공유지’라는 것이 있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모두의 것이기에 마을 주민 각자의 자치적인 관리와 운영이 필요한 ‘모두의 터’ 말이다. 금산공원처럼 산신령이 사는 뒷산도, 해녀들이 물질하는 바닷동네의 앞바당(바다)도, 말과 소에게 풀을 먹이던 목초지도, 심지어 신을 모시던 마을의 당이나 포제단도, 과거에는 마을 사람 모두가 주인의식을 가졌던 공유지다. 게다가, 하르방들에게 있어 금산이 그랬듯이 ‘모두의 터’는 단지 사람들만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때에 따라 그것은 신의 것이고 동물의 것이며 자연의 것이었다. 그래서 포제 기간에는 산에 함부로 들어가서도 안 된다고 했던 것이고, 과거에 지금보다 훨씬 큰 도토리가 많았던 이유도 사람들이 환경을 현명하게 관리하고 보호한 결과였다. 마을마다 공유하던 땅과 바다가 있었듯이 그것을 관리하던 할망하르방의 지혜 역시 오랜 세월 공유되어 왔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고 생활방식이 변하며 그들의 공유지는 더 이상 사람들의 생계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지 않는다. 먹고 살 걱정이야 예전 같지 않다고 해도, 자식들에게 용돈 한 푼 더 주고 싶은 할망 하르방의 순진한 마음에 의해 공유지는 지방정부의 것, 나라의 것, 심각한 경우 해외 투자자들의 것이 되어왔다. 마을의 공유지에 언제부턴가 천연기념물 팻말이 세워지고, 유네스코 마크가 달리고, 올레코스의 리본이 곳곳에 달리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또 다른 ‘모두의 것’이라는 개념으로 그들의 공유지에 쉽사리 ‘우리’를 끼워 넣어 왔다. 국민의 것이고 세계인의 것이니 관광객의 것이 되었고, 그러다 보니 개개인의 것도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을 공유지에는 오늘도 골프장이 생기고 리조트가 선다.
 
변화를 무작정 탓하는 게 아니다. 할망 하르방이 이제는 공유지를 생활에 이용하지 않는다고 해서, 뒷산이나 목장, 앞 바당을 쉽게 그들의 손에서 떼어놓은 결과, 나는 즐거운 만남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가끔 마음이 무겁다. 자식에게는 누가 될까봐 이야기 안 하시고, 공무원은 또 너무 커다란 존재라 느껴 말 못하는 불평불만이 그들에게는 있다. 그래서 나 같은 말 많은 나그네에게 농담 섞어가며 그것들을 소심히 털어놓을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분들이 바로 이 섬의 어멍 아방이고 할망 하르방이라는 사실을, 나 역시 소심하게 털어놓고 싶을 뿐이다.

더 큰 ‘모두’를 위해 당신의 땅과 바다를 내놓으며 살아오신 할망 하르방의 남은 길 위에, 그들을 위한 자연스럽고 편안한 의자가 있다면 좋겠다. 우리 마음대로 만들어 멋대로 가져다 놓는 의자가 아닌, 그들이 앉고 싶은 의자 말이다. 설령 의자가 싫어 바닥에 앉는 것을 택하시더라도, 솔직히 아스팔트는 좀 아니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가정의 달이다. <제주의소리>

<정신지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정신지는 ?

   

이 여자, 택시 기사들과 대화 나누길 즐기는 ‘수다쟁이’다. ‘역마살’도 단단히 타고났다. 거기에다 ‘촌스러움’까지 좋아하는 독특하고 야무진 여자다. 그녀의 이름은 정신지(32). 파주·부산 출신의 부모님 아래 서울서 태어나 여섯 살에 제주로 이민(?) 왔지만 스무살에 다시 서울로 나갔다가 일본의 대학과 대학원에서 ‘지역연구학’이라는 인문학을 전공했다. 그동안 세계 17개국의 섬·지방·대도시를 떠돌며 사람과 집단, 그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혀왔다. 지난 봄, 일본의 국립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學)에서 문학박사 과정도 수료했다. 이제 12년간의 지구촌 유목 생활을 마치고, 태어난 곳은 아니되, 자신을 성숙하게 키워준 ‘진짜 고향’ 제주로 지난 봄 돌아와 부모님이 살고 있는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 <제주의소리> '걸으멍 보멍 들으멍'이란 코너를 통해 제주와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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