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8) 설문대할망의 오줌에서 생겨난 것들

▲ 설문대할망. (그림 박재동).

"옛날 성산 일출봉에 아침 해가 떠올 때 쯤 되었을 거라. 할망이 바당에 빨래하러 왔다가 오끗 오줌이 마려운 거라. 거기서 참던 오줌보를 클러분 거라(풀어버린 거야). 그 순간, 할망 음문에서 괄락괄락 오줌이 쏟아져 나오는데, 내 터져 내려오는 듯, 홍수지 듯, 물소리 바람소리 범벅되고, 땅은 갈라져 되싸지멍(뒤집어지며) 밀려나고, 바당은 되싸졌당 부서졍(부서져) 큰절(큰파도) 지치며 물살은 바당에 모살도(모래도) 다 씰어부런(쓸어버려) 성산포 앞바당이 물게꿈(물거품)을 내멍 정말 지픈 바당 되어분 거라(깊은 바다가 돼버린 거야). 할망은 그제사 일출봉을 돈돈허게(든든하게) 쇠줄로 묶언 물게꿈에 쓸려가지 못하게 했다지. 해뜨는 거 보잰. 그루후잰(그 뒤로부터) 할망은 소섬을 빨래판으로 삼아 빨래를 했는데, 그때 할망은 뭘 빨았을까?"

설문대할망이 싼 오줌홍수에 제주의 동쪽 성산포 땅이 떨어져나가 소섬이 되었다는 신화의 수수께끼를 풀어보기로 한다. 할망은 왜 하필이면 해 뜨는 일출봉이 있는 동쪽 바다를 향해 오줌을 누었을까? 우주의 창조나 나라의 개국은 동쪽에서 일어나며, 그것을 다른 신화 <천지왕 본풀이>는 ‘동성개문(東城開門)’이라 한다. 첫닭이 울어 새벽을 알리자, 동쪽으로 해가 떠올라 세상이 열렸다는 이야기다.

<삼성신화[三聖神話]>는 동쪽바다 열혼포(지금의 성산읍 온평리) 혼인지에서 삼신인(三神人)이 벽랑국의 세 공주를 맞아 결혼하여 나라를 열었다고 한다. 그러나 <설문대할망 신화>는 성산출일(城山出日)에 '성산 일출봉에 해 떠 올 때' 거대한 하문을 열어 오줌을 싸니, 땅이 갈라져나가 빨래판 같은 소섬이 되었고, 지금도 소섬은 해산물이 많은 '섬 중 섬(빨래판)'이며, 할망의 빨래판이었던 소섬은 할망이 만든 바다밭(해녀들이 물질하여 해산물을 잡는 해녀 작업장)이며 지금도 해녀들이 전복을 따고, 미역을 캐는 '바당밭[海田]'은 지금도 크고 기름지다. 그렇다면 '할망의 오줌을 누었다'는 그때의 창조 행위는 어떻게 풀어야 하나?

할망이 오줌을 누자, 할망의 하문이 열리고, 할망의 오줌보에서 온갖 생명이 쏟아져 나왔다. 큰 고래에서부터 작은 자리돔까지 온갖 물고기와 문어 해삼 소라 전복 같은 해산물과 미역, 우뭇가사리(천초) 몸, 톳 같은 해초까지 쏟아져 나와 할망의 빨래판 밖에 안 되는 소섬둘레의 바다밭[漁場]을 풍요롭고 기름지게 하였다.

결국 할망이 오줌을 싼 일은 "바다에 씨를 뿌린" 행위였으며, 그것은 미래의 제주 해녀들을 위해 바다밭을 가꾸는 일, 생명 출산의 생산활동이었다. 할망의 똥이 오름을 만들었다는 신의 배설물에서 자연이 만들어졌다는 항문출산과는 다른 경우로, 할망의 하문에서부터 온갖 해산물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은, 자궁출산이라는 생산행위이며 바다에 싼 할망의 오줌은 생명을 키우는 양수였다.

할망이 동쪽 바다에 오줌을 싼 행위 자체가 바다에 생명을 불어넣은 물질의 시작이었다. 그리하여 할망의 오줌홍수는 기름진 바다를 만들었고, 할망은 제주 해녀의 수호신이 되었던 것이다. 제일 중요한 수수께끼는 아직도 풀리지 않았다. 할망의 무서운 정력에 의해 떨어져 나가 만들어진 섬, 빨래판이 된 소섬 위에 할망은 무엇을 놓고 무엇을 빨았을까. 그때 빨았던 옷은 어떤 옷일까? 제주의 동쪽 끝이 오줌에 쓸려가 만들어진 빨래판, 제주도란 섬을 섬중 섬인 빨래판에 넣고 빨 순 없었을 거다. 그리고 제주도만한 할망의 옷을 빨기엔 빨래판이 너무 작았을 거다.

할망의 빨래판은 할망의 더러워진 속옷, 오름을 만들며 더러워진 100통이나 되는 옷감으로 겨우 만들었던 헌 속옷을 빨았던 빨래판이다. 속옷을 빠는 이야기는 앞에서 할망이 제주 백성들에게 빨래를 가르쳤던 문명창조의 이야기와는 다른 이야기다. 할망이 제 속옷을 빨았던 이야기에는 세상에 해녀들이 바당에 물질 나갈 때 입는 해녀복의 기원을 말하려는 것이며, 할망이 속옷을 빠는 행위를 통해 해녀의 생산활동 '물질'과 할망이 만든 바다밭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다.

▲ 설문대할망. (그림 박재동).

섬 중의 섬, 제주 속의 소섬, 할망의 빨래판은 제주의 모든 더러워진 것들을 놓고 빠는 정화의 빨래판이었다. 세상을 빠는 빨래판으로 소섬을 사용했다는 거다. 그러므로 할망의 오줌홍수가 만들어낸 빨래판에는 제주의 모든 빨래감을 끊임없이 빨고 또 빠는 행위, 그런 생산과 재생의 암유가 담겨 있다. 그리하여 할망의 오줌홍수는 제주 해녀들의 일터 바다밭을 만들고 바다밭에서 물질하는 제주 해녀의 세상을 이야기한다. 할망의 오줌홍수 이야기에는 우주창조 이후, 할망의 오줌 속에서 태어나는 자궁출산의 생명들이 바다에서 생겨나는 이야기다.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우주 창조의 신새벽에 오줌을 싸는 할망의 행위는 생명의 땅, 빨래판을 만드는 의식이며, 빨래판이 된 소섬을 깨끗하게 씻어내는 정화의식이다. 그리고 소섬을 해녀들의 삶터, 바다농사의 터전으로 바다밭을 가는 경작의례다. 

여기서 잠간 다른 홍수신화와 오줌이야기를 살펴보자. 히브리인들의 홍수신화인 '노아' 이야기를 보면, 인간의 죄로 인해 분노한 신이 대홍수를 일으켜 지상의 대부분의 생명을 앗아가 버린다. 결과는 홍수로 정화된 세상에 새로운 세계가 건설되는 것이지만, 홍수 자체는 인간의 죄에 대한 신의 징벌이다. 프랑스의 소설가 르 클레지오는 그의 소설 <홍수>에서 억만의 시간 떨어지는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비유로 홍수의 파괴력을 말한 바 있다. 이렇게 홍수는 상상을 초월하는 파괴력이며, 씻김을 통한 재생력이다.

그리고 우리의 설화 중 삼국시대의 가장 유명한 오줌 이야기는 김유신의 누이 문희와 보희 자매의 오줌 꿈 이야기다. 언니 보희가 동생 문희에게 간밤의 꿈 이야기를 한다. "서악에 올라가 오줌을 누자 서라벌 장안에 가득 찼다." 꿈 내용을 들은 동생 문희는 비단 치마를 꿈 값으로 지불하고, 옷깃을 벌려 언니 꿈을 산다. 꿈을 샀던 문희는 뒷날 김춘추와 결혼을 하여 왕비가 되었다. 오줌 홍수가 터져 나와 바다를 이루는 꿈과 신화에서 공통적으로 눈길을 사로잡는 대목은 어마어마한 오줌의 양이다. 여성의 엄청난 양의 오줌과 오줌발은 음기가 강한 여인, 풍요와 다산의 기운이 넘치는 여인 문희가 통일신라의 첫 왕비가 되는 엄청난 오줌 꿈과 적절하게 연결된다. 엄청난 양의 오줌은 창조주의 정력이며 생산력이 변하여 왕업을 이을 권력과 힘으로 바뀐 것이다. 파괴의 힘과 센 힘을 다 가진 모든 여인들의 원형적인 인물은 설문대할망이다. 창세의 순간, 우주 창조의 기운이 가장 왕성하던 때 여신의 오줌 홍수가 이 오줌발들의 원조였음을 보여준다.

거칠고 원시적이고 힘 있는 할망의 오줌 신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대목이 하나 더 있다. 바다뿐 아니라 소섬이라는 섬도 오줌홍수라는 창조의 결실이라는 거다. 오줌 홍수에 떠내려간 땅이 만든 섬, 그 섬은 할망의 빨래판으로 쓰이던 섬이며, 섬에는 할망이 오줌에서 생겨난 생산물 창고와 같은 바다밭이 있다.

 

▲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제주의소리

홍수신화의 파괴력과 오줌신화의 생산력을 두루 보여주는 할망의 오줌홍수이야기는 홍수나 쓰나미 같은 파괴를 통한 재생과 씻김이다. 엄청난 양의 오줌으로 쏟아내는 생명창조의 힘. 바다를 기름지게 하고, 바다에서 생명을 키워내는 자궁출산의 힘이다. 할망의 오줌 이야기는 할망을 닮은 미래의 해녀들의 세상, 빨래판에서 세상을 씻는 거창한 창조 작업이기도 하지만, 해녀들의 '물질'하는 바다밭이 세상에 생겨난 이야기이기도 하다.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