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9) 설문대할망, 어부와 해녀의 신 되다

오늘 설문대할망 이야기를 마치려 한다. 그런데 할망 이야기에서 빠뜨릴 수 없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하르방 이야기다. 설문대하르방은 있었는가? 없었다. 후에 만들어낸 이야기다. 마지막 이야기는 ‘할망과 비슷한 하르방이 있었다’고 이야기를 시작하기엔 뭔가 어색하다. 그렇지만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이야기다.

혹자는 설문대하르방이 있었는데 그 하르방은 설문대할망의 음문에 대적할 만한 ‘거대한 남근을 가진 남자’라 한다. 그런데 하르방은 어색하게 달려있는 성기를 꺼떡꺼떡 흔들며 바다 한가운데 서서 할망의 음문으로 물고기를 몰아다 주었다 한다. 그러면 할망은 물고기를 음문으로 받아 음문 안에 가두어 잡았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하르방이 할망과 같은 거인이라는 점, 몸 크기에 걸맞은 엄청난 남근의 소유자라는 점, 그리고 이 거대한 남근으로 바다를 휘저어 고기를 잡았다는 이야기다.

창세의 거녀 신화가 세속화 되어 인간사회의 우스개로 전락해버린 이야기다. 여기서 하르방은 고기잡이의 조력자다. (이 이야기는 후에 어부수호신이 되었다는 이야기와 이어진다.) 아무튼 하르방 이야기는 신화의 신성성은 사라지고 우스갯거리[逸話, 笑話]가 되어버렸다. “오죽 할 일이 없었을까? 연장은 그런데 쓰라고 달린 건가?”하며 웃고 마는 하르방 이야기는 ‘설문대’에 할망 대신 ‘하르방’을 갖다 붙여 만든 ‘물고기를 모는 설문대하르방 살 막대기 이야기’다.

민속학자 주강현이 말하는 팔도에 있는 남근신앙은 아니다. 그가 우리나라 삼천리 방방곡곡의 유명한 남근석들을 답사한 뒤 다양하게 불리는 호칭들 ‘남근, 남근암, 남근탑, 수탑, 성기바위, 미륵바위, 자지바위, 좆바위, 삐죽바위’ 같은 이름들을 소개하면서 그 바위에 가서 빌면 남자아이를 낳는다는 우리나라의 남근신앙을 가부장적 남아선호 사상과 연결시켜 얘기했던 그의 책 <우리문화의 수수께끼>처럼 국토 전역에 널려 있는 남근바위 이야기와는 다른 이야기다.

설문대하르방 이야기는 설문대할망 신화 쇠퇴기에 만들어진 변형된 이야기 로 더 이상 의미부여가 불필요한 이야기다. 그러나 설문대하르방 신화는 하르방이 바다농사의 조력자임을 분명히 한다. 설문대하르방은 할망의 짝이라고 갖다 놓아도 정말 어색한 하르방이다.

▲ (그림 박재동).

“하르방을 만들어 할망 조끗디(곁에) 보초 세완(세워) 물고기를 다울리랜(급히 몰아 쫓으라) 했는디 할망 강알(사타구니 아래)로 몰아갈만한 연장이 어싱 거(없었던 게) 아니? 하르방은 생각다 못해 하르방의 물건을 고딱고딱 흘들멍 괴기를 다울렸댄 허매(하지). 그게 사실인줄은 나도 몰르크라(모르겠어). 아맹해도(아무래도) 말 좋아허는 하르방이 이선(있어) 지워낸 말일 테주. 할망 혼자 외로우카부댄(외로울까봐).”하고 웃고 넘길 이야기인지.

마지막 이야기는 설문대할망은 표선리 당캐 바다를 차지한 신이 되면서 이름도 세명주할망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아득한 옛날, 제주 땅을 설계하고 만들었다는 창조주 설문대할망이 먼 훗날 한 마을 그러니까 표선리 당캐 바다를 지켜주는 해녀수호신으로 좌정하였다는 이야기다.

할망은 신으로서의 기능은 대부분 다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름은 ‘세명주할망’이라 불린다. 할망이 하는 일은 바람을 말리는 일, 바람을 내쫓는 일, 바람을 모는 일을 했기 때문에 ‘바람할망[風神]’이라 부른다. 그리하여 설문대할망은 표선 당캐을 지키는 세명주할망이라 부른다. 이때부터 할망은 일만어부 일만좀수를 지켜주는 해녀수호신이 되었고 하르방은 할망을 도와 어부를 지켜주는 신이 되었다.

“어느 날, 할망은 오백장군들에게 한라산을 지키라하고, 지리서를 들고 좌정처를 찾아 한라산을 내려왔다. 앉아 천리를 보고, 서서 만리를 보는 신통력을 지닌 세명주할망이 지리서를 내다보니, 표선면 당캐가 좌정할 만 하였다. 그리하여 나고 드는 상선 중선 하선과 만민 자손, 천석궁 만석궁이를 다 거느리고, 잠녀들을 거부자로 만들어주는 표선면 당캐(堂浦)의 어부와 해녀를 차지한 신이 되었다.”

 

▲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제주의소리

이야기의 시작에서 설문대할망은 손가락 끝을 움직여 왁왁한 어둠을 뚫었고, 바람을 일으켜 세상에 빛을 내어 하늘과 땅을 갈랐고, 물을 뒤집어 땅을 만들고, 땅에는 자신의 똥과 오줌으로 오름을 만들고 생수가 솟아나게 하였다.

자신의 몸을 이루는 지수화풍(地水火風) 즉, 돌과 물과 불과 바람을 몸에서 꺼내어 세상을 만들었고, 다시 바람이 되어 지금까지 제주 바람으로 살아 우리를 지켜주신다. 제주의 해녀와 어부들을 지켜주는 것도 할망의 일이었으니 설문대할망의 몸은 미래의 제주, 우리들의 이어도라 할 것이다.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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