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대성, '불패신화' 첫 장 제주에서
구대성, '불패신화' 첫 장 제주에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태욱의 '野'한이야기] (3) 제주도 야구의 '낡은 시대' 떠나보낸 84년 전국소년체전

▲ 84년 전국소년체전에서 서귀중과 충남중이 경기를 치르는 장면(85년 서귀중학교 졸업앨범에서)

지난 5월 25일에 대구벌에서 개막한 제42회 전국소년체육대회가 4일간의 일정을 끝내고 막을 내렸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제주선수단은 소정의 목표를 달성했다고 자평하고 있지만 , 야구에서는 그리 만족할만한 성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초등부 제주선발팀은 예선1차전에서 전북대표인 군산신풍초등학교를 상대로, 중등부 대표인 제주일중은 대전 대표인 충남중학교를 상대로 각각 예선 1차전에서 패배를 맛봤다는 소식입니다. 제주에 야구가 처음 도입된 지 45년이 되었는데, 여전히 도내에는 초등부 야구단이 2개, 중등부 야구단이 1개밖에 없을 정도로 허약한 토대가 원망스럽기만 합니다.

그런데 이번 대회에서 제주일중이 충남중학교에 패배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오래전 일을 떠올렸습니다. 정확히 29년 전, 그러니까 1984년에 제주도에서 열린 소년체육대회에서도 제주도 대표팀은 충남중학교를 상대한 경기에서 고배를 마셨기 때문입니다.

1984년 제13회 전국소년체전 첫 제주유치 

제13회(1984년) 전국소년체육대회를 제주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하자 제주도 체육회가 분주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전국대회를 치를 수 있는 경기장을 확보해야하고, 전국무대에서 제주도 선수들이 상대와 대등한 경기를 펼칠 수 있도록 경기력을 높여야하는 시급한 과제가 놓였기 때문입니다.

야구의 경우를 보면, 84년 소년체육대회를 개최하기 전에는 전용구장이 없어서 학교 운동장을 빌려 대회를 치러야 했습니다. 펜스도 마운드도 없는 모래 운동장에 이동식 베이스를 놓고 공식대회를 치렀었는데, 그런 대회조차도 1년에 한두 차례에 불과한 실정이었습니다.

전용구장이 없는 것뿐만 아니라, 제대로 가르칠 전문가도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야구를 조금 아는 선생님이나 동네 선배가 틈틈이 선수들을 가르쳐야할 형편이었는데, 그 같은 환경에서 전국무대란 그야말로 넘을 수 없는 벽이었습니다. 그런 형편에 소년체육대회를 제주에서 치른다니 시름이 깊어질 밖에.

서귀중의 야구단 창단과 전국소년체전 출전

당시까지만 해도 제주도에서는 남원중학교가 오래도록 중학교 야구의 패권을 지키던 시절입니다. 그래서 83년 여름까지도 남원중이 이듬해 열릴 전국소년체전에 제주대표로 참가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서귀중학교가 급하게 야구부를 창단했습니다. 당시 서귀중학교 운동장을 동계훈련장소로 사용하게 된 OB베어스(현재의 두산베어스)구단이 서귀중학교에 전문 지도자를 파견하고, 장비와 시설을 대폭 지원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입니다.

83년 가을에 전국소년체전 출전 티켓을 놓고 남원중과 서귀중이 남주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예선전을 치렀습니다. 그런데 두 팀이 시합을 하는 장면을 보니 차림새에서 완벽한 대조를 이루더군요. 선수 전원이 개인 유니폼, 점퍼, 야구전용 가방에 스파이크까지 갖출 정도로 화려한 서귀중 선수단에 비해, 선배로부터 물려받는 낡은 유니폼에 낡은 글러브를 착용한 남원중은 너무나 초라해보였습니다. 영화 에서 일본 생도들과 조선YMCA청년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것과 비슷한 대조를 보았다면 짐작하실까요? 아무튼 두 팀 간의 경기에서 서귀중은 2연승을 거두며 소년체전 출전권을 따냈습니다.

그리고 84년 5월 25일에 오라벌에서 제13회 전국소년체전이 개막했습니다. 당시 중등부 야구대회는 새로 개장한 오라구장에서 열렸는데, 서귀중이 예선1차전에서 맞붙은 상대는 공교롭게도 구대성이 마운드를 지키던 충남중학교였습니다. 

구대성 선수는 훗날 대전고, 한양대, 한화이글즈를 거치는 동안 위력적인 강속구와 칼날 같은 제구력을 과시하며 '대성불패'라는 신화를 일궈낸 발군의 투수입니다. 또, 시드니올림픽 3.4위 결정전에서는 일본의 타선을 완벽하게 제압해서 '일본 킬러'라는 별명도 얻게 되었죠.

구대성, '불패신화' 첫 장 제주도에서 쓰다 

세간에는 구대성 선수가 87년 대전고를 청룡기 우승으로 이끌면서 불패신화를 쓰기 시작했다고 알려졌는데, 구대성 선수 본인은 "충남중에 다닐 때 제주도에서 열린 소년체전에 참가해 이미 팀을 우승을 이끌었다"고 자랑합니다.

예선 1차전에서 서귀중은 충남중을 상대로 잘 싸웠지만 아쉽게도 3대2로 패하고 맙니다. 당시 서귀중의 좌익수로 출전했던 서귀포시생활체육야구연합회 김대성 회장의 증언입니다.

"강태석, 현승민, 변건필 등이 2루타를 날린 것을 포함해 우리가 안타를 더 많이 쳤습니다. 그런데 주루플레이가 미숙해서 점수와 잘 연결시키지 못해서 졌죠. … 그래도 3회말에 내가 볼넷을 얻은 후 2루 도루에 성공했고, 허상혁이 안타를 치자 내가 홈을 밟아 팀의 첫 득점을 올렸는데, 지금도 그 기억이 생생합니다."

충남중은 복병 서귀중을 만나 신승을 올린 후 승승장구하며 대회 우승까지 이르게 되었는데, 그 대회가 구대성 선수가 써나가는 불패신화의 첫 장이 된 셈입니다.

한편, 이듬해에도 남원중은 지역대회에서 서귀중에 패하면서 야구부가 해체되는 아픔을 겪습니다. 제주도에는 서귀중 한 팀이 남았는데, OB구단에서 지원을 끊는 바람에 서귀중 역시 해체의 길로 접어듭니다. 도내 중등부 야구단이 사라지자 진학할 학교가 없어진 초등학교 팀들도 해체의 수순을 밟게 되었고.

결국 전국소년체전의 유치를 계기로 제주도 야구는 '낡은 시대'를 떠나보냈지만, '새로운 시대'는 쉽사리 오지 않았습니다. 이 같은 공허하고 혼란스런 상황이 이어지면서 제주도 야구계는 오래도록 길고 어두운 터널 안에 갇혀야 했습니다. /장태욱

<제주의소리/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0 / 400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순 추천순 이 기사에 달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