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주의 책놀이책 Q&A] (5) 과학책만 읽는 아이

# 에피소드5. 문학책을 어려워하는 아이

“ 아빠, 과학책만 읽으면 안 돼?”
초등학교 2학년이 되자 지훈이는 독서록을 쓰는 숙제 때문에 매일 난관에 봉착한다. 과학책을 읽을 때는 신이 나서 시간 가는 줄 모르던 아이가 위인전이나 동화책을 읽으면 몸을 비비 꼬고 헤맨다. 과학책은 시키지 않아도 반복해서 읽고 스스로 요약도 잘하지만 조금만 문학적인 내용이 포함되거나 상상력이 필요한 책을 만나면
거부감을 보인다. 지훈이가 혹시 다른 아이들보다 감수성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 걱정도 되고, 평소 아빠가 무뚝뚝한 탓인가 싶어 자책감도 든다.
“ 나는 가족들이 왜 돼지로 변신했는지 모르겠어.”
『돼지책』을 읽으면서 지훈이는 책 속에 등장하는 가족의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그림이 품고 있는 의미를 파악하는 것을 어려워했고, 과학과 관련된 소재가 아니다 보니 집중도도 확연히 떨어졌다.
“ 이 책을 읽고 나서 어떤 감정을 느꼈니?”
“ 잘 이해가 안 가. 아빠와 아이들이 신 나게 웃다가 갑자기 돼지로 변하고, 마지막에는 엄마도 막 웃고. 이상해.”

한두 가지 반찬만 선호하는 아이들의 심리

과학책이나 학습만화 등 특정 장르만 유독 선호하는 아이들이 있다. 부모님은 다양하게 읽혀주고 싶지만 아이가 원치 않아서 발만 동동 구르는 경우가 많다. 한 가지 비유를 떠올려 보자. 아이가 밥을 먹다가 맛난 반찬을 하나 먹었다. 어묵을 좋아하는 아이는 어묵에 맛을 들이게 되고, 콩나물을 좋아하는 아이는 콩나물에, 김을 좋아하는 아이는 김만 먹는다. 그러다가 김치를 먹으면 갑자기 싫어지면서 한두 가지 반찬만 먹게 된다.

반찬을 책이라고 생각해 보면 감이 올 것이다. 한두 가지 반찬을 편식하는 아이에게 골고루 먹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다양한 맛을 알려주는 것이다. 김치도 잘 씻어서 고춧가루를 없애고 튀김가루를 입혀서 맛있게 요리하면 아이들은 김치 요리를 즐길 수 있다. 맛난 반찬을 많이 넣어 줘서 평소에 편식하던 반찬을 1/n로 만들어버리면 편식은 끝난다. 반찬이든 책이든 편식에 빠지는 까닭은 그것이 1/n이 아니라 2/n, 3/n, 또는 n/n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가 김치를 싫어한다고 해서 아이가 싫어하는 방식으로 김치를 억지로 먹이려고 하면 아이는 평생 김치를 멀리할 수 있다. 학습만화에만 빠지는 아이가 걱정돼 학습만화를 집에서 모두 감춰버리면 아이는 어른이 될 때까지 학습만화에 빠질 수 있다. 스마트폰이나 PC 게임도 마찬가지다. 이 마음의 작용을 잘 알아야 지혜롭게 대처하고 현명한 육아를 할 수 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싫어하는 반찬을 ‘좋아하는 방식’으로 먹이는지 알아보자.

▲ 그림 김라연(blog.naver.com/gomgomHUG).

# 솔루션5. 아이와 함께 풍덩 빠져서 ‘재미’를 찾아주세요

“ 지훈아, 이 책 표지에 있는 그림을 보니까 어떤 생각이 들어?”
“ 아이들과 아빠는 기분이 좋아 보이는데 엄마 얼굴은 왠지 기분이 별로인 것 같은데?”
“ 이렇게 엄마가 아빠랑 꼬마들을 다 업고 있으면 힘들지 않을까? 지훈이라면 어떻게 하겠어?
“ 아빠가 더 힘이 세니까 엄마랑 위치를 바꿔.”
“ 그것도 좋은 생각이구나. 아빠는 아빠랑 꼬마들이 힘을 합쳐서 엄마를 업어 주면 좋겠어.”
“ 근데 꼭 엄마, 아빠만 아이들을 업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꼬마들이 엄마랑 아빠를 업으면 어떨까? 그림책이니까 다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림책에 실려 있는 그림을 중점적으로 다루자 지훈이가 지루해 하는 것이 눈에 띄게 줄었다. 본격적으로 표정 놀이를 해 볼 요량으로 몇 가지 시도를 더 해 보았다.
“ 지훈아, 엄마가 슬픈 표정을 지은 이유가 뭔지 한 번 살펴볼까?”
“ 그러고 보니 아빠랑 꼬마들이 엄마에게 하는 말이 ‘밥 줘!’ 밖에 없어. 엄마는 밥하고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하고 일도 해. 나라도 슬플 것 같아.”
“ 지훈이가 『돼지책』의 핵심을 파악하고 있는 것 같은데?”
칭찬해 줬더니 지훈이가 웃었다. 그림책을 이렇게 재미있게 보는 모습은 처음 봤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졌다. 이건 좀 어렵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한 가지를 더 물어보았다. 책 전체를 훑으며 주인공의 표정이 변하는 과정을 말해 보라고 한 것이다.
“ 지훈아, 엄마의 표정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한 번 살펴볼까? 엄마의 표정이 어디에서 달라졌니?”
“ 음, 표지에서 엄마는 슬픈 표정이었고 집안일을 할 때도 비슷한 표정이었어. 그런데 가족들이 돼지로 바뀌고 나서 고생하니까 조금 웃다가 집안일을 다 같이 하니까 웃는 표정으로 바뀌었어!”
“ 지훈아, 아빠는 이 책에서 아빠의 표정이 재미있어. 여기 아빠가 웃고 있는 그림이 있다! 어떤 느낌이 들어?”
“ 음, 좀 어려운데? 아빠 표정은 뭐랄까 왠지 넉넉해 보여. 지난번에 엄마랑 아빠랑 양로원에 봉사활동 하러 갔을 때 아빠 표정이랑 비슷하네!”
지훈이가 봉사활동을 갔던 일까지 떠올리면서 대답할 줄은 몰랐다. 표정에 집중하면서 책을 읽으니 아이도 부담 없이 즐기는 것 같았다. 지훈이가 결코 감수성이 약하거나 감정이 없는 아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표정 놀이의 가장 큰 수확이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방법을 잘 모르기 때문에 표현을 못 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지훈이와 함께 책을 볼 때는 인물들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면서 지훈이랑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눠 봐야겠다.

과학책에 빠지는 아이의 원인은 ‘과학책’에 없다

학습만화에 빠지는 아이의 문제를 부모가 잘 해결하지 못하는 까닭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부모는 ‘학습만화’에서 원인을 찾지만, 정작 원인은 학습만화에 없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피상적인 현상만 바라보며 진단을 찾기 쉽지만 좀 더 넓게 바라봐야만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은 학습만화뿐 아니라 과학책, 스마트폰 등에도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다.

과학책에 빠지는 아이의 원인은 과학책 말고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아이마다 사정이 다르지만 ‘부모’와 긴밀히 관계돼 있고, 중요한 것은 ‘욕구불만’ 또는 ‘결여’(채워지지 못함)에 있다. 채워지지 못한 것은 채워주면 그만이다. 지훈이 엄마가 지훈이와 표정놀이를 한 사례에는 여러 가지 ‘채움 방정식’이 들어 있다. 지훈이는 문학책 보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데, 지훈이 엄마가 문학책을 함께 읽어 줌으로써 두려운 마음이 채워진다.

그리고 엄마가 표정을 통해서 질문을 던지고, 그 질문이 어렵지 않게 답변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문학책도 재밌을 수 있다’는 마음도 채워진다. 표정놀이를 통해서 지훈이가 집중력이 있는 아이라는 것을 인정해주고 칭찬을 해주자 지훈이의 마음이 또 채워졌다.

과학책에 빠지고 문학책을 두려워하는 아이에 대한 ‘채움’의 지혜는 사례로 설명했으므로 이번에는 학습만화에 빠지는 아이를 어떻게 채울 것인가 덧붙이려고 한다. 스마트폰과 PC게임 등도 비슷하게 접근할 수 있다.

1. 시간을 정하고 부모가 아이와 함께 학습만화에 풍덩 빠진다.
2. 부모가 학습만화를 보면서 재밌는 점을 이야기하며 학습만화의 매력에 대해서 인정해 준다.
3. 아이로 하여금 학습만화의 어떤 점이 특히 좋은지 설명할 기회를 준다.

위 세 가지 정도만 제대로 할 수 있다면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욕구불만과 결여의 부분을 채울 수 있다. 채운다는 것은 ‘객관화’하는 것과 같다. 채워졌기 때문에 더 이상 붙잡고 집착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물고기를 잡을 때 잡지 못한 물고기를 잡으려고 집착하지만, 한번 잡은 물고기는 더 이상 집착하지 않는 것과 같다. 부모님들은 집중력을 발휘해 피상적인 접근에서 벗어나 문제의 원인을 정확할 필요가 있고, 채울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채워주자는 마음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학습만화에 빠지는 원인은 학습만화에 있지 않다”는 말이 가지고 있는 뜻을 이해한다면 비슷한 문제가 생겼을 때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오승주 독서지도사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