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히지 않는 기억의 상처 “우린 조선사람이여”
잊히지 않는 기억의 상처 “우린 조선사람이여”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두루봉이 하르방의 보리밭     계절은 분주하게 농촌의 모습을 바꾸어 간다. 청보리 물결 나부끼던 하르방의 보리밭은 이미 수확이 끝났다./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걸으멍 보멍 들으멍](38) 두루봉이 하르방의 오래된 상처

* 이번 두루봉이 하르방 이야기는 지난 4월7일과 4월27일자에 이은 세번째 연재입니다.
 
하르방의 보리농사는 눈 깜짝할 새에 끝이 났다. 푸른 물결 나부끼던 청보리밭을 가로질러 그를 만나러 온 것이 어제 같은데, 벌써 보리는 베어지고 없다. 우리가 보거나 말거나 계절은 분주하게 농촌 구석구석의 모습을 바꾸어 간다. 꾸지뽕열매가 익어가고 나무엔 비파도 앵두도 달렸다. 하르방의 농장을 걷는 기분 좋은 그 길에는, 여김 없이 낯선 이를 반기는 철부지 강아지가 꼬리를 흔들며 길을 안내한다.

“에라 이 못난이야. 왜 이추룩 늦게 와서(왜 이리 늦게 왔어)? 한참 오질 안허난(한참 오지 않으니), 멀리 떠나부러시카부댄(떠나버렸나 했어).”
두루봉이 하르방이 내 두 손을 꼭 잡으며 말씀하셨다. 그렇게 웃으며 눈살을 찌푸리던 그는 다시 봐도 사랑스런 노인이다. 그것이 사실이든 빈말이든 간에 나는 기쁨과 동시에 죄송한 마음이다. 그간 이런저런 일로 바빴었다 이야기하면서도 모든 것이 변명 같다.

문득, ‘바쁜 젊은이와 한가한 노인의 시간 중에 어느 것이 빨리 갈까?’ 라는 생각이 든다. 나의 바쁨이 쉴 새 없이 시곗바늘을 돌리는 건 사실이지만, 확실한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 나는 뛰어도 어딜 향해 가는 건지 모를 때가 많다. 하지만 하르방의 시간은 이미 정해진 곳으로 흐르고 있다. 무심하게도 그의 기억과 기력을 나날이 쇠퇴시켜버리는 하르방의 남은 시간들이다. 깜짝할 새에 베어져 버린 보리밭의 풍경처럼, 오랜만에 찾아뵌 하르방은 그 새 또 늙어 있다. 그러니 정작 빨리 가는 것은 바쁜 젊은이의 시간이 아닌 한가한 노인의 시간이다. 그 앞에서 바빠서 못 왔다는 핑계를 대 버린 나는 정말 못난이다.

사랑스런 하르방  왜 이리 늦게 왔느냐며 하르방은 나를 반겼다. 언제 보아도 사랑스러운 그의 미소에 몸과 마음이 따스하다./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하르방은 기다렸다는 듯이 오늘도 친절하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으신다. 수백 장의 창호지에 이미 그리고 쓴 이야기들이지만, 요즘은 시력이 나빠져서 당신이 쓴 글이 잘 보이지 않으신단다. 그렇다고 해서 기억들이 모조리 사라져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물음’이다. 무엇에 관해서든 대답할 준비가 되어있고 모든 것을 알고 있는 하르방이지만, 묻는 이가 없기에 침묵할 뿐이다. 게다가 치매라는 병은 먹어야 할 약도 많다. 약을 먹으면 잠만 오니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낸다. 침묵과 잠. 언젠가 인간이 죽으면 원치 않아도 하게 되는 것이 이 두 가지 일이다. 하르방이 벌써부터 침묵을 하고 온종일 잠만 잔다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찡해지는 것이 정신이 바짝 든다. 더 많이, 더 깊이 그에게 물어야 하고 그에게 들어야 하는데 말이다. 
 
(1) ‘우린 조선사람이여게’
그에게는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내가 올 적마다 반복해서 들려주는 이야기이지만, 늘 처음 듣는 척 진지하게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가 했던 이야기를 또 하는 데에는 나름의 커다란 이유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가(내가) 여덟 살 때야. 왜놈들이 너무너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할 때. 마을에 무백이라는 노인이 있었어. 한문을 아주 잘 아는 노인인데, 상투를 틀고  매날(맨날) 누더기를 입고 그렁뱅이(거지)처럼 보이는 사람이라. 한 날, 일본 경찰이 그 노인을 막 곡괭이로 때리는 것을 봤어. 하도 맞아노난(맞으니까) 노인이 다 죽어가. 일로 때령 구르민 이디서 죽어가고(여기를 때려서 구르면 여기서 죽어가고), 저디 때리민 저디강 구르고(저기를 때리면 저기서 구르고). 결국, 숨이 다 죽지는 안혀고(않고) 그냥 축 늘어졍이네(늘어져서)... 너무 무서왕(무서워서) 나는 아버지 손가락을 꼭 잡고, 보당 못행(보다 못해서) 물어봔(물었어). ‘아방, 무사 또렴수과(아버지, 왜 때리는거에요?)’, 겨난(그러니) 아방이 고라라(아버지가 말했어). ‘우린 조선사람이여게.’ 그 말에 가슴이 부서질꺼 닮안. 말도 나오질 안 허연(않았어). 지금도 이디가(여기가=가슴이) 아파. 그 생각하민(하면). 휴우…”

우린 조선사람이여     여덟 살 어린 시절, 공출의 양을 미처 맞추지 못한 고무백 하르방은 일본 경찰들에게 모질게 폭행을 당했다. 왜 때리느냐 아버지께 묻자 아버지는 말했다. “우린 조선사람이여.”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크게 숨을 고른 하르방은 인상을 찌푸리며 한 손으로 가슴을 퉁퉁 친다. 당시 일본군이 식량 확보를 위해 시행했던 공출이라는 제도는, 가난한 이들에게는 죽음과도 같은 일이었다. 특히, 하르방이 무백이 노인의 기억을 회상하던 당시는 제2차 세계대전이 말기에 이르렀을 무렵이다. 제주에는 10만 명에 육박하는 관동군도 주둔하였었고, 그들 부대의 대부분이 하르방 마을 주변(한경면 일대)에 있었다. 공출은 더욱 잔인해져만 갔다. 그들은 ‘청결’이라는 제도를 만들어서 마을의 집들을 청소한다는 목적으로 주민들의 집안 살림까지 모조리 파악했다. 집에 있는 놋그릇이며 숟가락까지 뺏어가 전쟁에 쓸 무기와 실탄을 만들 작정이었다. 당시 그들이 치르려 했던 전쟁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 것이었는지, 하르방은 설명하셨다.

“미국 비행기가 공중에 올라가면 한방에 쑤욱 하고 하늘 끝까지 날아. 가마오름근처에 가면 비행기가 날아다니는 하늘길이 이서(있어). 4월 13일, 그때 비행기가 제일 많이 날아다녔어. 근데 일본 비행기들은 힘이 어시난(없으니까) 중간에 떨어지기도 하곡, 아맹(아무리) 높이 날아도 미국 비행기는 쫓아가지도 못허여(못해). 그뿐이냐게, 어느 날 일본놈들이 대포를 하나 쏸(쐈어). 한 번도 대포를 안 쏘아보니까 쏘아보구졍(쏘아보고 싶어서)…허허허. 경 행(그렇게 해서) 쏘아 올린 대포가 멀리 가지도 못행(못하고) 밭이 강(밭에 가서) 떨어져신디(떨어졌는데), 할망이 촐 베당이네(풀 베다가) 대포가 탕 떨어지니까 화들짝 놀란(놀라서). 겐디(그런데), 대포알이 터져도 아무추룩도 안 허고(아무렇지도 않고), 촐 베던 그 할망은 다치지도 아니 허연게(않았어). 게난 마을 사람들이 비웃으멍 왕이네(비웃으며 와서는) 그 파편을 다 봉강 간(주어 갔지)! 그걸 때려당(때려서) 납도 만들고 빼앗긴 숟가락도 몰래 다시 만들곡. 허허허.. 그런 나라가 미국하고 무신(무신) 전쟁을 하겠다고 한 거라? 어이고…말은 안 했지만 다들 비웃어서(비웃었어).”

공출하라는 무서운 명령      하르방의 작품, ‘공출하라는 무서운 명령I’, <청수 아리랑 시리즈 제 1호>(2010) “나도 똥소로기처럼 날고 싶다”에서 발췌/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당시 하르방에게는 절친한 친구가 하나 있었다. 집에서 기르던 어미 말이 낳은 몽생이(망아지)다. 낳은 지 한 달이 될 때부터 그는 몽생이와 매일 같이 놀았다. 그리고 말이 두 살, 하르방이 여덟 살이 되던 해에 그는 무백이 노인의 죽음을 경험했다. 아방의 ‘우린 조선사람이여게’라는 말이 뇌리에 박힌 두루봉이 하르방은 언젠가 이 말을 타고 전쟁에 나가 왜놈들을 박살 내 버리겠다는 포부를 다졌다. 조선사람이라는 이유로 가진 것을 빼앗기고, 가난한 자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며 그는 자랐다.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커다란 상처였으나, 무백이 하르방의 죽음을 계기로 그에게는 인생을 걸고 지켜나가야 할 목표가 생겼다. 정의로운 사람이 되자. 내 땅과 내 조국을 지킬 수 있는 몸과 마음의 힘을 기르자. 어른이 되면 말을 타고 나아가서 큰 세상을 보고 오자. 두 살 된 몽생이를 지금부터 가르쳐야 한다. 마루라는 사냥개 역시 훈련을 잘 시켜야 한다. 조금 더 크면 총 쏘는 법도 배워야 한다.... 초등학교 일 학년생의 머리에서 나왔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의 포부이고, 삶의 계획이었다. 그리고 하르방은 어린 시절 꿈꾼 그대로 자라났다(몽생이와 마루는 4.3사건때 강제로 빼앗겨 버렸지만). 여든 평생의 여정에는 힘들고 거친 길이 산넘어 산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도 우리의 사회는 하르방이 인정할 만큼 정의롭지 못한 것인지, 그는 이런 글을 남겼다.

필자는 어설픈 글을 쓰면서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옛날엔 알지 못하니 그렇다하고, 지금은 어떠한가? 안심할 수 있겠는가? 스스로가 우리를 지킬 수 있겠는가? 그동안 이 나라를 지키고 이끌어온 부류들을 믿을 수 있겠는가? 노망으로 헛걱정을 하고 있는지, 헛걱정이라면 한없이 미안허구나. <하르방 그림 ‘공출하라, 무서운 명령II’중 발췌>

하르방의 슬픈 회상      가난하고 힘이 없어 죽어간 사람들, 배우지 못해 조국을 지키지 못했던 사람들을 생각하는 하르방은 슬프다. 일제강점기에서부터 4.3사건을 거쳐 현재에 이르기까지, 세월은 흘렀지만 우리사회는 하르방이 인정할 만큼 정의롭지 못한 것일까./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2) ‘해방이 뭐고 자유가 뭐시여?’
일본 강점기의 기억은 듣고만 있어도 하루가 간다. 아니, 한 달을 듣는다 해도 쉽게 끝나지 않을 것들이다. 게다가 연거푸 한숨을 내뿜으려 말씀해 주신 해방 이후의 기억은 또 어떤가? 4.3사건과 한국전쟁, 잠시 머물던 일본의 기억, 대구에서 군 복무를 하던 군사정권 당시의 기억, 학생운동의 기억, 1991년의 제주도개발특별법에 저항하던 기억… 그야말로 대한민국과 제주 현대사의 지난 팔십 년이 피가 되어 그의 몸을 흐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예나 지금이나 그 자신을 ‘한낮 농사꾼’이라 말씀하시니, 그 또한 신기한 일이다.

<1945년, 해방의 감격은 삼일도 없다> 그가 그린 그림의 제목이다. 해방된 나라에서 청년으로 성장한 그를 그 후에도 싸우게 하고 투쟁하게 했으며, 그가 가족을 꾸리고 아버지가 된 후에도 맘 편하게 살지 못하도록, 죽을 만큼 그를 괴롭히고 못살 게 한 것은 누구였을까? 기나긴 이야기의 시작이 그의 그림 한구석에 깨알같이 적혀져 있다.

필자 유년기부터 우리들의 삶에 아픔과 슬픔이 범벅된 세상을 걸어오다 보니, 기껏 느낀 것이 일당백 목표의 총잡이, 천한 길에서 세월이 갔다./ 우리들에게 한없이 즐거운 게 1945년 8월15일이었다. 필자는 일본군 보급창고를 부수고 도둑질하는 우리의 가난한 백성들이 피투성이가 되는 장면을 잘 지켜봤노라./ 여기에서 뭐라고 논하고 싶지 않다. 단, 유식과 무식의 차일 뿐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해방의 기쁨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무식 말고 무엇이 더 있었는가? 이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언제 어느 시간에 죽게 될 것인가./ 어린 나이였지만 냉철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총뿐이다. 화승총을 만들어 보자. 총의 구조는 이미 머릿속에 있다. <하르방 그림 ‘1945년, 해방의 감격은 삼일도 없다’ 중 발췌>

지금이라도..     ‘공출하라는 무서운 명령II’ 중 발췌. 지금이라도 왜놈에게 아부행각 한 자라면 죽은 자일지라도 엄한 처벌로 대접을 잘해야 놈들에게 억울한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함이 되지 않을까? / 사진=정신지  ⓒ 제주의소리

해방된 마을의 모습을 보며 그 후에 벌어질 상황들을 상상이라도 한 것인지, 갓 열세 살이 된 하르방은 독학으로 총을 배웠고 사냥술을 배웠다. 말도 잘 타고 노루도 잘 잡는 그를 마을 사람들은 든든해했다. 하지만 해방의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4.3사건이 터지기도 전에, 이미 마을 사람들은 분열되어 있었다고 그는 말한다. 가난하고 배운 것이 없어서라고 하르방은 말했다. “조국이 뭣산지(뭔지를) 모르는 이가 어찌 조국을 지킬 수 이시크냐(있겠느냐)?”

2013년을 사는 나는 결코 가난하지 않고, 배운 것이 없지도 않다. 하지만 그런 나에게 역시 조국이라는 말은 참으로 생소하다. 그래서, “할아버지, 조국이 뭡니까?”하고 물어보았다.

“조국 말이가(말이냐)? 조국은, ‘이것이 우리 땅이다’ 하는 마음이 어시민(없으면) 있으나 마나 한 거. 나는 어린 때부터 조국을 알아서(알았어). 여덟 살에 두 살 난 몽생이에 올라탄 그때부터 ‘우린 조선사람이다’ 라는 말이 늘 가슴에 있었어. 그 시절, 밤이면 동네 어른들이 앉아서 이야기를 허여(해). 그걸 들으면 우리나라 젊은이들이 지금 만주에서 싸우고 있다는 말도 들리고. 겐디(그런데) 막상 젊은 놈덜(젊은이들) 다 잡혀 가고 하민(하면), 어떤 어른들은 도망가곡(가고) 했단 말이여. 도망만 다닌 사람들은 조국이 뭔지, 해방이 뭔지 잘 몰라. 민족정신이 없기 때문에 4.3도 저런 엄청난 피해를 가져온 거야. 만약 조국이 뭔지를 알고, ‘우리는 왜놈들에게 고통을 받았다’는 정신을 확실히 잊지 않고 있었으면 4.3도 그추룩 되진 안혔주(그렇게까지 되지는 않았지). 해방이다 자유다, 구호만 있었어. 해방이 뭐고 자유가 뭐여? 뭐시 해방이고 뭐가 자유라? 난 오히려 그때 깨달았다고. 우리가 우리 자신을 공격하려고 한다는 것을 어린 때 깨달았다고. 왜놈들도 다 이겨낸 시국에, 무사(왜) 또 그런 사건이 난거라? 결국, 우리 제주도 놈들이 나빠. 우리가 무식해서 스스로가 우리 것을 도둑질한 꼴인데, 아맹(아무리) 나가 말해도 주변 사람들은 잘 몰라. 그러니까 젊은 시절 나에게는 적이 아주 많았어.”

‘나는 한낮 농사꾼이여’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그이지만, 그가 ‘농사꾼’이라 함에는 단순하지만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 자기의 땅을 자기 힘으로 일구어 당당히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은 모두가 ‘농사꾼’, 농사를 지으며 사는 이 땅의 이름이 다름 아닌 ‘조국’이라는 말이다. 그는 시골 농사꾼의 신분으로 농부다운 ‘정의’를 일구려 노력하며 살아오셨고, 군에 갔을 때도 농민운동이 일어났을 적에도 당신이 해야 할 일과 직면하며 부지런히 살아온 사람이었다. 나와 내 자식을 나은 땅을 지키려 애썼고, 가난하고 무지한 사람들에게 불합리한 일이 생기는 것을 막아 모두를 지키려 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간 그 시대는 하르방을 많이도 때리고 괴롭혔다.

하르방은 지금도 당당하다. 여전히 할 말도 많다. 하지만 나는 생각했다. 진작 우리의 사회는(그리고 나 자신은) 그의 기억을 정면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성숙했을까? 많은 것을 보고 배워온 우리는 정말 유식한 사람들일까? 알아야 하고 배워야 할 이야기를 한 보따리 가지고 계신 노인들이 시골 한구석에서 침묵과 잠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소통없는 사회는 과연 건강한 사회일까?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는 두루봉이 하르방은 요즘 들어 부쩍 마음이 아프다. 그는 며칠 전 서울에 있는 병원에 다녀왔다. 서울 사는 딸도 볼 겸 큰 병원에 가서 MRI를 찍고 왔는데, 검사 결과 의사가 한 말이 그에겐 잊히지 않는가보다. “의사가 고라라(말했어). 내 머리에는 상처가 많다고. 그것도 아주 오래 전에 받은 뇌의 깊은 상처. 그것을 그냥 두어서 치매가 심해진 거랜(거라고). ”

그가 잠시 침묵했다. 나도 따라 입을 다문다.
오래된 그의 상처는 농사꾼의 땅에 난 깊은 흙의 상처다. 조국의 상처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우리는 한평생 그가(그들이) 일구어 놓은 정의와 평화의 땅 위에서 별 탈 없이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순간, 정체 모를 두려움이 몰려와 닭살이 돋는다. 그러고 있는데 하르방이 한 잔 마시라며 당신이 잡수어야 할 녹즙을 냉장고에서 꺼내 오셨다. 직접 길러서 만든 것이라 하니, 흔쾌히 받아 마시고 길을 나섰다. 창밖으로 손을 흔들며, “나 죽을 때까지 이렇게 가끔 오라이(와라).” 하시는 사랑스런 두루봉이 하르방. 하지만 나의 발걸음은 여느 때처럼 가볍지 못하다. / 정신지 <제주의소리>

<정신지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정신지는 ?

   

이 여자, 택시 기사들과 대화 나누길 즐기는 ‘수다쟁이’다. ‘역마살’도 단단히 타고났다. 거기에다 ‘촌스러움’까지 좋아하는 독특하고 야무진 여자다. 그녀의 이름은 정신지(32). 파주·부산 출신의 부모님 아래 서울서 태어나 여섯 살에 제주로 이민(?) 왔지만 스무살에 다시 서울로 나갔다가 일본의 대학과 대학원에서 ‘지역연구학’이라는 인문학을 전공했다. 그동안 세계 17개국의 섬·지방·대도시를 떠돌며 사람과 집단, 그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혀왔다. 지난 봄, 일본의 국립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學)에서 문학박사 과정도 수료했다. 이제 12년간의 지구촌 유목 생활을 마치고, 태어난 곳은 아니되, 자신을 성숙하게 키워준 ‘진짜 고향’ 제주로 지난 봄 돌아와 부모님이 살고 있는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 <제주의소리> '걸으멍 보멍 들으멍'이란 코너를 통해 제주와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0 / 400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순 추천순 이 기사에 달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