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혁의 중국횡단기] (30) 보름 남짓한 중국횡단기를 마치면서

골목을 걸어 나와서 모퉁이에 작은 커피점이 있어서 들어갔다. 아담하고 예쁘게 꾸며진 실내가 편안하게 한다. 그리고 카펜터스의 낯익은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라떼 커피를 한 잔 시켰는데 하얀 크림으로 나뭇잎을 띄워놓아 더욱 흡족한 기분이 되었다.

▲ 커피점 겉모습. ⓒ양기혁
▲ 내가 주문한 라떼 커피. ⓒ양기혁

When I was young, I’d listened to the radio,
Waiting for my favorite songs.
When they played I’d sing along. It made me smile.
Those were such happy times. And not so long ago.
How I wondered where they’d gone. But they’re back again.
Just like a long lost friend. All the songs I loved so well.
Every Sha-la-la-la Every wo-wo-wo still shines.
Every shing-a-ling-a-ling that they’re starting to sings so fine.
When they get to the part where he’s breakin’her heart.
It can really make me cry just like before.
It’s yesterday once more.

내가 어렸을 적에 라디오를 들으며
제일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기를 기다리곤 했었어
노래가 나오면 난 따라 불렀고, 미소를 지었지
그땐 참 행복한 시절이었지, 오래전 일도 아닌데
그 시절이 어디로 가버렸는지 궁금해
하지만 마치 오랫동안 연락없이 지냈던 친구처럼
그 기억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 같아
그 노래들을 나는 너무 좋아했어
노래 중에 샬랄라라- 워우워우 하는 부분은 아직도 귀에 생생하고시작하는 부분 싱어링어링-은 너무 마음에 들어
노래가사에 남자가 여자를 가슴 아프게 하는 부분이 나오면
마치 예전으로 돌아간 듯 눈물이 나올 것 같아
다시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 손님이 떠나고 난 뒤 빈찻잔이 놓여 있는 자리. ⓒ양기혁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을 회상하게 하는 노래는 마음을 좀 서글프게 했다. ‘Yesterday once more’에 이어서 ‘Top of the world’, ‘Rainy daysand Mondays’…. 카펜터스의 노래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난 잠시 생각을 잊고 부드럽고 감미로운 음악 속에 빠져들어 갔다. 창가에 앉아 있던 여자 손님 둘이 나가고 나자 빈 카페를 홀로 지키고 앉아서 카펜터스의 CD가 끝까지 돌아가서 다시‘Yesterday once more’가 한 번 더 나오고 나서야 일어서서 나왔다.

▲ 왠지 쓸쓸해보이는 커피점 겉모습. ⓒ양기혁

라오서 옛집의 담벽에는 ‘캉요우웨이’를 비롯해서 칭다오와 인연을 맺은 문화예술인과 사상가들의 옛집들이 그 주변에 흩어져 있음을 알려주는 표지판이 붙어 있었으나 이제 여행을 끝내기로 했다. 마침 택시 한 대가 바로 앞에 멈추더니 손님이 내렸다. 기사에게 다가가서 물었다.

“워야오취칭다오깡 워줘추안취한궈.(칭다오 항에 가려고 한다. 배 타고 한국 간다.)”
“밍바이러 샹처.(알겠다. 타라.)”

택시기사는 정확히 인천 가는 페리호를 타는 여객터미널 앞에 나를 내려줬다. 대합실에서 오후의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5시가 넘어서 배에 탈 수 있었다. 침대를 찾아가서 짐을 내려놓고, 점심을 안 먹어 시장하던 차에 곧바로 선내의 한국 편의점에서 그동안 중국에서 먹지 못했던 막걸리 한 병과 포장김치, 골뱅이 통조림을 사가지고 와서 걸신들린 것처럼 먹어치웠다.

한숨 돌리고 나서 캔맥주 하나를 들고 갑판으로 나가서 앉아 있는데, 여객터미널 대합실에서 인사를 나누었던 스티브 리를 다시 만났다. 본래 인천이 집인 그는 오랫동안 외국을 떠돌며 생활했다고 한다. 지금은 중국에서 조그만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으며 물건을 공급해 줄 테니 제주도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사업을 해보라고 권하기도 했다.

그는 같이 술을 한잔하자고 하면서 편의점에 갔다 오더니 플라스틱 병에 든 맥주와 과자를 사와서 테이블에 늘어놓았다. 몇 잔을 마시고 나서 스티브는 옆 테이블의 서양인 커플을 불러서 우리 테이블에 같이 앉기를 권했다. 합석을 하여 인사를 나누었는데, 그들은 멀리 북유럽의 핀란드에서 여행을 왔다.

▲ 여객터미널 대합실에서 만난 카이우스(Kaius)와 안나(Anna). ⓒ양기혁

남자의 이름은 카이우스(Kaius), 여자는 안나(Anna). 33세와 30세인 그들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친구 사이인데, 이번 여행으로 더 가까워지고 서로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다고 말했다. 카이우스는 ‘sailor(선원)’이고 안나는 ‘geographical teacher(지리교사)’라고 했는데, 지리교사인 안나에게 나는 더 특별한 반가움을 느꼈다. 그들은 이미 베이징에서 일주일간 여행을 하고 서울로 가는 중이었다. 서울에서 다시 일주일을 머무른 다음 상하이로 가서 일주일을 보내고 핀란드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했다.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한 도시에서 일주일 간을 머무는 방식의 여행도 특이해 보였다.

얼마간 시간이 지나자 어두워지고, 갑판에 비가 들이치기 시작하여 우리는 자리를 옮겨야 했는데 나는 그들을 배의 후미에 있는 카페 글로리아로 초대했다. 처음에 다소 부담스러워 하던 그들도 소박하고 편안한 분위기에 만족해했다. 내가 생맥주를 한 잔씩 돌리자, 스티브와 카이우스도 차례로 생맥주를 사들고 왔다.

빗살이 내리치는 창밖에는 어둠이 가득하고, 페리호는 조금씩 흔들리며 캄캄한 황해바다를 헤쳐 나가고 있었다. 우리는 생맥주와 땅콩, 과자 부스러기로 즐겁고 흥겨운 시간을 가졌다. 인천에서 배를 타고 중국으로 가던 첫날 밤 이 카페에서 혼자 맥주를 마시며 여행의 설렘과기대를 달랬었는데, 여행의 마지막 밤은 낯선 여행객들과 어울려 그렇게 저물어갔다. /양기혁  

이것으로 [초짜여행가 양기혁의 중국횡단기] 연재를 마칩니다. 성원해주신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