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욱의 '野'한이야기] (6) 오심, 비난보다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

▲ 야구 심판은 복잡하고 모호한 규칙, 찌는 듯난 무더위와 장시간 싸워야하는 어려운 일입니다.
10여 년 전에 제주도야구협회에서 주최하는 초등부 야구대회에 심판으로 경기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경기 장면이 있습니다.

S초등학교와 N초등학교 간 벌어진 시합이었는데요, 경기 도중 S초 6학년 황모군이 장타를 날렸습니다. 당시, 도내에 초등학생 전용 구장이 없어서 홈플레이트에서 70미터 되는 지점을 선으로 표시하여 그 선을 넘어가면 홈런이 되고, 바운드로 넘어가면 2루타가 되도록 규정을 정했습니다.

황군이 친 공은 홈런 선에 조금 미치지 못한 곳에서 땅에 떨어진 후 선을 넘어 굴러갔고, 2루심이었던 저는 2루타를 선언했습니다. 그날 경기는 N초등학교의 승리로 끝이 났는데, 사단은 경기 후에 벌어졌습니다. 관중석에서 손자의 경기를 지켜보던 황군의 할아버지가 심판실로 찾아와 "내 손자 가슴에 못을 박은 놈"이라는 욕설을 날리며, 제 멱살을 잡는 겁니다. 라인선상에 아슬아슬하게 미치지 못한 공을 할아버니는 홈런이라 판단하신 거고, 그게 만약 홈런으로 판정이 났다면 손자가 속한 팀이 이겼을 것이라고 보신 겁니다.

야구 심판은 이렇듯 아슬아슬한 상황에 대해 판단을 내려야 하기 때문에, 경기에 참가하는 팀은 늘 심판의 판정에 불만과 의구심을 품게 마련입니다.

지난 한 주, 프로야구는 지난 15일 잠실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넥센 히어로즈 간 경기 도중 일어난 `오심`소동으로 몸살을 앓았습니다. 0-0으로 팽팽한 투수전이 이어지던 도중, 5회 말 2사 만루 상황에서 LG 박용택이 친 땅볼을 3루수 김민성이 잡고 안전하게 2루수 서건창에게 던져 3아웃으로 공수가 바뀌는 상황. 그런데 박근영 2루심이 1루 주자 오지환에게 세이프 판정을 내리는 오심이 일어났습니다. 이에, 염경엽 감독을 포함해 넥센 측 코칭스태프가 뛰어나와 항의를 했고, 심판진이 모여 판정에 대해 논의를 했지만 판정은 번복되지 않았습니다.

'오심' 소동, 야구팬들의 분노를 사다

이날 오심 하나로 넥센 선발투수 브랜든 나이트는 흔들리기 시작했고, 결국 만루홈런을 얻어맞은 것을 포함해 넥센은 5회에만도 8점을 내주고 말았습니다. 이날 경기는 0-9 LG의 압승으로 끝났습니다. 정규리그 2‧3위 팀끼리 맞붙은 대결이라 야구팬들은 두 팀이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펼칠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오심 하나로 승부의 균형이 허무하게 허물어지자, 팬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한국야구위원회(KBO) 게시판은 성난 팬들의 항의글로 도배가 되었죠.

팬들의 분노를 의식이나 한 듯, 오심 사건이 일어난 바로 다음 날에 KBO 심판위원회는 박근영 심판을 2군으로 내려 보내는 자체 징계를 내렸습니다. 그리고 조종규 심판위원장은 넥센 염경엽 감독을 찾아가 이 문제에 대해 공식으로 사과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 오심 소동의 발단이 된 장면.(KBS 화면 갈무리)
심판의 판정이 야구팬들 전체를 분노하게 만들고, 베테랑 심판이 2군 심판으로 강등되는 모습을 보면서, 프로야구심판이 만만치 않은 직업이란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프로야구는 구조적으로 심판의 오심과 관련한 문제가 늘 잠재되어 있다고 봐야할 겁니다.

우선, 야구는 규칙이 너무도 복잡하고 모호합니다. 한 가지 예로, 수비하는 내야수와 달리는 주자가 서로 부딪쳤는데, 수비수의 방해가 선언되는 경우가 있고, 공격수에게 반칙이 선언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다른 예로, 타자가 방망이를 휘두르다가 도중에 멈췄을 경우 스윙으로 인정할지를 결정하는 기준은 명확히 명시되지도 않았습니다.

두 번째, 야구는 여름에 하는 운동인데다 경기 시간이 매우 깁니다. 프로야구의 경우 경기가 빠르게 진행되면 3시간, 연장까지 가면 5시간 까지도 이어집니다. 무더운 여름날, 태양이 이글거리는 운동장 서 있는 건 그 자체로 고역입니다. 그런데 주심은 그 와중에 마스크와 보호대까지 착용하고 있습니다. 선수들은 공격시간에 덕아웃에서 휴식도 취하고 물도 마시고 화장실도 다녀올 수 있는데, 심판에게는 그런 '호사'가 허용되지 않습니다.

프로야구 심판, 정말 만만치 않은 직업

그런데, 복잡하고 모호한 규칙, 찌는 듯한 무더위보다 프로야구 심판을 더 괴롭히는 게 있습니다. 그건 날로 정교해지는 영상기술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모든 야구경기는 실시간 TV와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됩니다. 최첨단 영상기술로 선수와 심판의 모든 움직임을 다양한 각도에서 포착합니다. 가끔 선수들이 혼잣말로 욕을 하는 것조차도 카메라는 놓치지 않고 잡아내어 선수를 징계에 이르게 하고, 심판이 아웃이라고 선언한 상황을 느린 화면은 여러 차례 리플레이 되면서 근소한 차이로 세이프라고 암시합니다.

최근에는 전자시스템으로 투수가 던진 공이 타자를 지날 때의 위치를 찾아내어, 심판이 선언도 하기 전에 시청자들이 스트라이크와 볼을 구별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시스템이 홈플레이트에서 한 참 바깥쪽으로 나갔다고 알린 공을 주심이 용감하게 "스트라이크"라고 선언하면, 이때 시청자들은 심판을 신뢰할까요, 아니면 전자시스템을 신뢰할까요?

오심을 비난하기 보다 보완책 마련이 바람직

이번 박근영 심판의 오심과 관련하여 심판위원회가 나서서 재빨리 징계에 나선 것은 성난 야구팬들의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한 특단의 조치로 보입니다만, 개인적으로는 징계가 지나쳤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국민유격수 손시현도 평범한 땅볼을 놓칠 때가 있고, 국민타자 이승엽 선수도 4타석 연속 삼진을 당하는 날이 있듯이, 심판도 오심을 할 수 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일부 언론에서는 '오심인가 작심인가'하면서 고의적인 편파판정이라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나섰는데, 이는 언론이 나서서 프로야구의 불신을 더 조장하는 것으로 봐야할 겁니다. 심판 개인에게 도적적인 비난을 보낼 것이 아니라, 오심이 일어났을 때 이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비디오판독과 같은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 훨씬 현명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장태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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