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근대건축 산책] (13) 제주의 공장시설 下

다케나카 통조림 공장 근무자로 마을에 남은 유일한 생존자인 김태겸 할아버지(83세.한림읍 옹포리 488번지)는 해방 후 1950년에 공장에 들어갔다.

당시 옹포에는 다케나카 통조림 공장 외에도 감태공장, 전분공장, 얼음공장 등이 들어서 있어 조용할 날이 없었다. 옹포 뿐만 아니라 한림, 협재 등에서도 일하러 다녔다. 김씨가 기억하기론 월급은 그리 많지 않았으나 인기가 있었다. 특히 미혼 여성들이 많이 일했고, 공장 직원이나 일본인 등 소위 말하는 ‘빽’이 있어야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김씨도 알고 지내던 선배의 권유로 트럭 운전수 조수 자리를 얻게 됐다. 시쳇말로 ‘시다바리’로 2년 가까이 공장을 다녔어도 삯을 받은 적은 없다. 어깨너머로나마 기술을 배워보려고 군말없이 따라다녔다. 기술이라고 해봤자 조미품을 채운 통조림에 뚜껑 닫는 일이었지만 그때는 그 일마저도 근사해보였다.

▲ 1950년도에 다케나카 통조림 공장에서 근무했던 김태겸(83) 할아버지. ⓒ제주의소리

김씨는 제주시·서귀포시 할 것 없이 분주히 배달을 다녔고, 고등어나 다른 원료들을 싣고 오기도 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한림항에서부터 옹포리 통조림공장으로 이어지는 철로가 따로 있었다. 1km 가량 길이로  인력으로 미는 '토라쿠(truck)'에 완성된 통조림이나 얼음 따위를 싣고 포구까지 몰고 가곤 했다. 

4·3사건 때 소개령으로 명월·금악·상명 등 중산간 마을에서 온 주민들이 이곳에서 지내기도 했다. 한국 전쟁 때는 모슬포 육군 제1훈련소 군인들을 먹일 김치를 담그기도 하고, 빵을 만들어 보내기도 했다. 그 후 군대에 다녀오니 식품회사로 바뀌어있었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 2월 이 공장은 적산으로 불하돼 대동식품공업사(대표 김영규)로 바뀌었다. 그러다 제주공장이 분리되면서 1950년 2월 26일 고종석 공장장이 취임해 회사명을 대동식품공업사로 고쳤다.

1957년 4월 대동식품 공업(주)으로 다시 문을 열었으나 1970년도에 폐업됐고, 한때는 제주축협의 축산물공판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982년 서귀포에서 자동차공업사를 운영하던 허대훈씨가 1억8600만원으로 5400평 중 1500평을 사서 대원자동차공업사를 차렸다.

▲ 허철훈(74) 대원자동차공업사 대표가 1982년도 당시의 옛 다케나카 공장 자리를 찍은 사진을 설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허대훈 대표는 “지금 검사장 자리가 보일러실이었다. 기차 화통만큼 커다란 보일러였는데 당시 고물상이 사가겠다고 와서는 철거 작업에 사흘을 매달렸다. ‘워낙 크기가 커서 도저히 안 되겠다’는 말에 그냥 가져가시라고 했더니 열나흘에 걸쳐서 보일러를 뜯어갔다”고 설명했다.

보일러실을 철거하면서 뜯은 목재를 보고 시공업자가 ‘요즘 나오는 웬만한 재료보다 훨씬 좋다’고 해서 수리작업장을 짓는 데 다시 썼다. 당시에도 50년은 족히 됐을 목재인데 3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끄떡없다.

허 대표는 “한 20년 전쯤 다케나카 후손이라고 일본인 교수가 나를 찾아온 적이 있다. 그 교수에게 물으니 일본에서밖에 나지 않는 나무라는 대답을 들었다. 제주에서도 귀한 재료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 현재 대원자동차공업사로 바뀐 옛 다케나카 통조림 공장. 당시 사무실로 쓰던 목조 건물로 유일한 그때의 흔적이다. ⓒ제주의소리

사무실로 쓰였던 건물은 전형적인 일본 건축양식이 겉으로 드러난다. 벽과 기둥, 바닥이 모두 나무로 지어졌고 양철로 된 지붕은 45도 경사로 비가 자주 내리는 제주 기후에 알맞게 설계됐다.

허 대표는 “인수하던 당시 겉모양이 멀쩡해서 따로 수리하지 않고 자재 창고로 써왔는데 이제는 유일하게 남은 옛 건물이 됐다”고 말했다.  

현재 폐차장으로 쓰고 있는 자리는 정원 자리였단다. 담 건너편 영어조합법인 건물이 들어선 곳은 고관들이 오면 접대하거나 사원들이 지내던 관사가 있었다.

허 대표는 “둘레에 수로가 나 있고 가운데에는 제주도 지형을 본 뜬 커다란 돌이 있었는데 그 모습이 기가 막히게 좋았다. 제주에서 그런 돌 구하려면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때 베지 않고 남긴 은행나무는 여태까지 터를 지기고 있다. 가을에는 옛 사무실 건물과 어우러져 제법 운치를 낸다고 한다. 이곳에 회사를 막 차릴 때만 해도 별 관심이 없었고 얼른 공장 차릴 생각에 묻어버렸지만 이제와 생각해보니 아쉬움이 크다.

높이 29m짜리 굴뚝도 아직 그대로 지켜서있다. 당시 제주에 드문 철근 콘크리트로 지어올렸다. 굴뚝 아래쪽에는 축조회사를 알리는 ‘교토(京都) 콘크리트공업소’라는 철판 부조가 붙어 있다. 1985년 허 대표가 사업장을 차리려고 견적을 내보니 철거 비용만 1000만원에 달해 그대로 뒀다. 80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수리한 적이 없을 정도로 멀쩡하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굴뚝 보고 한 마디씩 건넨단다. 지난해에 페인트를 다시 칠해서 옛 모습은 그대로는 아니지만 균열 난적 없이 깨끗하다. 

80년 전 도내 ‘최고’의 위용을 자랑하던 통조림 공장의 모습은 자취를 찾아보기 어렵지만 30년이나 자리를 지켜온 자동차공업사로 또 다른 역사를 만들어내고 있다. 올해로 74세인 허 대표는 15년째 자동차조합이사장 자리를 맡아오고 있을 정도로 업계에선 최고참 격이다. 

허 대표는 “이곳은 일제의 흔적이라고 흘겨만 볼 것이 아니라 역사의 단면을 볼 수 있는 유적이기도 하다. 30년 전 조금만 더 신경 썼더라면 지금쯤 역사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됐을 텐데 아쉬운 생각이 든다. 나무로 지은 건물이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도 걱정”이라고 말했다. <제주의소리>

<김태연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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