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주의 책놀이책 Q&A 칼럼] (8) 아이가 요새 고민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 그림 김라연(blog.naver.com/gomgomHUG).

# 에피소드8.

학원을 마친 아름이를 데리고 집까지 걸어가고 있었다. 그날따라 학교에서 힘든 일이 많아서 나도 모르게 피곤한 기색이 비쳤나 보다. 아름이가 금방 눈치를 채고 조심조심 눈치를 살핀다.
“엄마가 오늘 힘든 일이 많아서 기운이 없어.”
아름이는 내 말을 듣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키득키득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엄마는 수학을 잘하잖아.”
상황에 맞지 않는 뜬금없는 말이었지만 얼마 전 아름이와 함께 100점 놀이를 할 때 <수학 귀신의 집>을 골랐던 것이 기억이 났다.
“아름이는 똑똑하잖아. 엄마가 수학을 잘하는 건 엄마가 너보다 수학을 더 오래 공부해서 그런 것뿐이야.”
아름이가 100점짜리 책으로 <수학 귀신의 집>을 골랐을 때 엄마가 수학 선생님이니까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겨 짚었다. 하지만 수학을 대하는 아름이의 감정은 내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100점 놀이를 하면서 아름이가 <수학 귀신의 집>을 골랐던 이유를 물었더니 아름이는 이렇게 답했다.
“서점에서 내가 직접 고르기도 했고, 이 책을 읽으면 수학을 더 잘할 수 있다고 쓰여 있어. 나눗셈은 아직 잘 모르지만 자꾸 읽다 보니까 이제 할 수 있을 것 같아.
엄마, 나는 수학을 정말 더 잘하고 싶어.”

속과 겉이 같은 아이들의 선택을 주목하라

속 다르고 겉 다른 어른들이 많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마음속에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겉과 속이 거의 같다. 그래서 어른들에 비해서 비교적 마음속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파악하는 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아이들의 마음속에 무슨 생각이 있는지 잘 모르고, 때로는 알려는 생각을 잘 안 하기도 한다. 만약 아이가 평소에 고민이 있거나 무척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제를 부모님과 공유할 수 있다면 어떨까? 부모님과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나눌 친구로 생각할 것이다.

아름이는 수학 선생님인 엄마를 사랑해 수학을 잘 하고 싶다. 그런데 엄마는 아름이가 수학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걸 확인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100점 놀이는 아이가 가장 좋은 점수를 주는 책을 순서대로 모아보는 놀이다. 할 때마다 점수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부모님들은 아이가 100점을 주거나 높은 점수를 준 책들을 통해서 평소 아이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주제나 고민들을 알 수 있다. 다른 한 가족은 아이가 음식에 관한 책을 네 권이나 올려놓았었는데, 알고 보니 엄마 아빠가 바빠서 집에서 음식을 만들어먹는 일이 별로 없는 가족이었다. 아이는 그런 아쉬운 마음을 100점 놀이로 표현한 것이다.

# 솔루션8.

책 놀이 선생님이 엄마에 대한 아름이의 동경이 수학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나는 것 같다는 말을 했을 때 나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아버지께서도 초등학교 수학 교사로 재직하셨기 때문이다. 나 역시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서 수학 공부를 열심히 했던 것이 생각났다. 하지만 노력에 비해 점수는 늘
만족스럽지 못했다. 시험지를 들고 몰래 울기도 했는데 그때 아버지가 ‘수학일기’를 써 보라면서 일기장을 하나 선물로 주셨다. 어려운 문제가 있으면 수학일기에 써서 보여 달라고 하셨고,
주말이면 틈틈이 일기장을 보시고 풀이법을 정리해 주셨다. 이렇게 소중한 기억을 까맣게 잊고 살았다니! 어린 시절 내가 아버지에게 느꼈던 감정을 아름이가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아버지가 그러셨던 것처럼 나도 아름이에게 수학일기를 선물해야겠다.

[편지]
수학을 사랑하는 아름아, 안녕?
수학 공부를 하고 싶은데 뜻대로 잘되지 않아 속상하지?
엄마도 어릴 적에 수학을 못해서 울기도 했고, 벌을 받기도 했어.
엄마가 속상해하면 할아버지가 괜찮다고 위로해 주셨어.
할아버지는 엄마한테 수학일기를 선물해 주셨단다.
할아버지는 ‘수학은 숫자로 말하는 친구고, 마음도 따뜻해.’라고 말씀을 해 주셨지.
수학을 어렵게 생각하기보다는 친해지고 싶은 친구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엄마도 아름이에게 수학일기를 선물할게.
아름이가 엄마를 많이 사랑해 줘서 고마워.
사랑해!

아이가 진지하게 생각하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아름이가 수학을 사랑하는 마음을 확인한 엄마는 이 고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수학선생님인 엄마에 대한 애착이 수학이라는 과목으로 표현된 이 모습은 부모님의 직업이나 선호하는 운동, 물건 등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 아름이의 사례에 국한해서 말한다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어떤 분은 아이가 수학 공부만큼은 그래도 잘 하게 될 테니 좋은 것 아닌가 하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아이가 받을 스트레스를 생각해 봐야 한다.

실제로 아름이 엄마도 수학 선생님인 아름이 할아버지를 사랑해서 수학에 집착했지만, 마음처럼 수학이 잘 풀리지 않아서 많이 괴로웠다고 말했다. 세상의 어떤 일도 ‘빛과 그림자’ 양면성이 있기 마련인데, 사람은 그 중에서 ‘빛’ 같은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는 편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를 발견하더라도 제대로 대응을 못하기 일쑤다. 아름이 엄마가 편지를 통해서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해준 것은 아름이를 안심시키는 좋은 방법이다. 엄마가 아름이의 고민을 잘 알고 있다는 사실이 아름이에게 전달되어 공감효과가 일어나고, 비슷한 경험을 했을 때의 고통과 외할아버지의 지혜로운 선물을 아름이에게 전해준 부분에서는 만족감을 줄 수 있다. 앞으로 자신이 겪게 될 감정에 대해서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기 때문에 막막함이 덜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부모님이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무척 진지하게 접근하고 있다는 모습에서 감동한 아이는 부모에 대한 애착이 무르익어 갈 것이다. <책 놀이 책>을 쓰고 강연을 하면서 많은 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눠 보지만, 어른들이 아이들에 대해서 의외로 진지하지 않다는 사실을 보게 보게 된다. 만약 아이들의 진지함의 반 정도만 부모들이 진지할 수 있다면 부모와 아이의 소통은 더 좋아질 것이다. 

   

/오승주 독서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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