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의 위기를 걱정한다.

MBC '피디수첩'과 황우석 박사 사이에 지루하게 이어졌던 논란이 승자도 없이 패자만 남은 채 무의미 하게 종료되고 있다. 애초에 피디수첩이 제기했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있어서의 생명윤리문제와 진실논쟁은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고, ‘상처받은 황우석교수’와 ‘종영의 위기를 맞이한 피디수첩’이라는 상흔만 남게 되었다. 그간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논란의 쟁점들 중 피디수첩이 미처 제기하지 않거나, 제기하지 못한 문제들은 무엇인가?

1. 생명의 출발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

생명공학은 그 자체가 세포내에 존재하는 핵과 그 속에 감춰진 유전자를 다루는 학문으로서, 공학이라는 용어 자체가 암시하듯 핵과 그 안에 들어있는 유전자를 자르고 붙이는 과정을 필연적으로 거치게 된다. 그간 동물을 중심으로 핵치환을 통해서 복제동물을 생산해내면서 그 경이로움을 과시했던 생명공학은 황우석이라는 한국의 과학자를 만나면서 모체와 똑같은 유전자를 지닌 복제된 수정란을 생산한 후 모든 세포로 분화 가능한 만능의 인간 배아줄기세포를 만드는 쾌거를 이루어 내었다. 그런데 배아줄기세포는 성체로 발생 가능한 인간의 수정란을 다룬다는데 점에서 윤리적 논쟁거리가 될 수 밖에 없었다.

그간 학계에서는 동물의 경우 그 생명의 시발점을 정핵과 난핵사이에 수정이 일어난 직후라고 공감하고 있었다. 그런데 새로운 생명체로 발전할 가능성을 지니고 있는 수정난을 인위적으로 조작해서 특정한 기능을 갖는 세포로 분화 유도하는 행위가 사회적 저항 없이 진행될 수 있는 단순한 사항은 물론 아니었다.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사회가 황우석 교수에게 화살을 돌릴 입장은 아니었고 황우석교수의 연구가 알려지기 이전에 이미 명쾌한 답을 찾고 있어야 했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는 사후피임약이라고 불리는 응급 피임약이 의사의 처방에 의해 버젓이 합법적으로 통용되고 있었다. 그 사후 피임약이 수정란을 강제로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살생무기임을 감안해 보면 , 우리 사회의 윤리적 잣대라는 것이 얼마나 일관성이 없는 것인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종교계, 시민단체. 민노당의  선의에 찬 의도에도 불구하고, 황우석 교수의 배아줄기세포에 대한 그들의 원초적 문제제기는 기형적인 논란거리가 될 운명을 타고난 것이었다. 황우석 박사에 대한 논란 이전에 사후피임약이 시판될 때, 더 적극적인 문제제기가 있었고 그래서 그 윤리논쟁이 사회적으로 마무리 되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개인적 아쉬움이 남는다. 

2. 황우석 박사의 연구에 대한 정부의 지원은 정당한 것인가?

최근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정부는 청와대 박기영 정보과학기술보자관을 통해 황우석 박사를 지원하기 위한 프로젝트를 만들었다고 한다. 박 보자관을 통해서 한국의 노벨상이라고 일컬어지는 ''최고과학자상''을 신설해서 황우석 박사에게 수여하고 내년부터 황교수 개인에게 연간 정부 지원금으로 200억 이상 지원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청소년들이 이공계를 기피하는 불행한 상황에서 황우석 박사를 통해 이공계 지망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불어넣으려 하는 정부의 의지야 이해 못하는 거 아니다. 과학 후진국에서 과학 분야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선진 과학국으로 도약시키고 싶은 마음이야 당연한 것이고 배아줄기세포 허부를 통해 돈이 되는 산업이 만들어진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배아줄기세포는 연구만 제대로 되면 곧바로 산업과 연계될 수 있는 ''돈이 되는 분야''라는 점에서 정부의 ‘황우석 퍼주기’는 문제가 있다.  이런 돈이 되는 분야라면 좀 시간이 걸리더라도 스폰서 기업을 찾았어야했다. 그래서 기업이 투자하고 그 투자한 기업이 연구의 결실을 찾도록 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정부는 기업이 투자를 꺼리는 순수기초과학에 투자하는 것이 학문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막을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황우석 지원은 박기영 보좌관을 통해 이루어 졌는데, 박기영 보좌관은 황교수의 사이언스 논문에 공동연구자로 이름이 올라가 있었다고 한다. 공적 영역에서의 역할이 사적 이익으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게다가 박 보좌관의 역할이 황교수에 대한 생명윤리 자문역을 하면서 황교수의 연구에 아무런 윤리적 문제가 없다고 장담했지만, 황우석 교수가 불법으로 획득된 난자를 실험용으로 사용했다는 윤리적 오점이 밝혀졌다. 결국 언론과 시민단체, 민노당이 황교수를 공격하면 정부는 돈대주고 뺨까지 덤으로 맞은 셈이 되고 말았는데 이는 정부의 과학과 기술 분야에 대한 지원이 빈곤한 철학적 기반 위에 이루어 졌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3. 풀리지 않은 문제들

한겨레를 제외한 종이신문들은 연일 MBC 피디수첩이 취재윤리를 위반했다고 비난했지만 그런 다른 언론들은 취재윤리를 그리도 잘 지키는지 되묻고 싶다. 물론 이번 사안은 과학자와 과학자의 연구과정에 불거진 ''윤리문제''를 다루었기 때문에 피디수첩도 윤리적인 약점을 보이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 하다라도 애초에 피디수첩이 제기한 황우석 박사와 그의 연구를 향해 제기되는 윤리와 진실문제에 대한 명쾌한 해명이 얻어진 것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2, 제3의 피디수첩을 계속해서 출현할 가능성이 남아있다.

현재 국민 대다수가 황우석 박사에게 윤리문제를 제기하는 피디수첩과 민노당을 향해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다. 그 바탕에는 세계 인류에 대해 목말라 하는 ''애국주의''와 우리도 경쟁력 있는 산업을 선도할 수 있다는 ''경제주의''가 깔려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피디수첩이 여론의 화살을 맞고 종영의 위기에 놓인 이유가 그들이 취재윤리를 위반해서 저널리즘을 손상시켰기 때문이 아니라, 국민 절대다수가 추앙하는 인물에 도전했기 때문이라면 이는 우리 사회에서 건강한 의사소통이 여전히 방해받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며, 황우석 박사가 절대 권력의 지위에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4. 잘못된 포지션

배아줄기세포 논란을 되집어 보면 결국 우리사회 주체들의 어설픈 포지션 설정을 실감할 수 있다. 우선 정부는 기업이 투자할 분야에 투자했지만 그의 연구에 대한 최고 투자자로서의 감시기능을 포기했기 때문에 황교수와 노성일 원장, 박기영 보좌관간에 있어왔던 석연치 않은 뒷거래들이 구설수에 올랐다. 황박사는 정부의 투자를 바탕으로 연구를 했으므로 그의 연구는 성과주의의 과잉으로, 그의 행동은 국민들의 ‘애국주의’에 호소하는 정치의 과잉으로 내비쳐졌다. 하지만 진실에 도달하기 위한 정부와 황교수의 노력은 여전히 보이지 않고 국비가 투자된 사업의 수익이 노성일이라는 개인의 지분과, 박기영 보좌관의 개인적 명예로 이어지고 있었다.

정당 중에 민노당이 유일하게 나서서 배아줄기세포 연구에 대해 전반적으로 문제제기를 한 것은 우리 사회의 건강성 회복을 위해 천만 다행한 일이지만 민노당이 장애인등 사회적 약자의 이익을 대변하고, 무상의료가 실현되는 사회를 지향하는 정당이란 점에서  오히려 황우석 박사를 보위하는 포지션을 맡았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하지만 기회주의적 보수정당들이 제대로 된 보수적 가치들을 주장하는 역할을 포기했기 때문에 민노당이 어쩔 수 없이 진보의 가치보다는 진실의 가치를 내세우게 된 것이라는 점에서 기회주의가 판을 치는 보수 정치판에서 진보세력이 자신의 포지션을 결정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보여주고 있다.

황우석 교수에 대한 국민들의 폭발적 지지로 인해 기성정치권과 수구언론이 한 목소리로 대동단결을 외치는 사이, 대한민국 주류사회에서는 지성과 저널리즘은 존재하지도 않았다. ‘도덕성’을 주장하는 요구는 매국이 되었고, 어떻게 결말이 날지도 모르는 ‘진실’에 관한 논쟁들이 ‘국익’의 이념 앞에 무참히 무시되었다. 한국의 저널리즘이 국가권력이나 자본의 위협으로 인해 위기에 처한 것이 아니라, 그간 언론개혁과 주류교체의 원동력이 되었던 네티즌들에 의해 위협을 받게 되었다는 점에서 대한민국의 언론 앞에 놓인 더 큰 위기가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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