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근대건축 산책] (15) 제주4·3 관련유적과 그 의미 下

#. 전략적으로 축조된 성(城)의 특징

앞서 4·3사건과 관련된 주요유적의 분포와 특징을 살펴보았다. 성(城)은 다랑쉬 오름의 은신처와 같이 4·3사건의 비참함을 잘 보여주는 근대 유적지다.

발발 당시 산사람들에 의하여 습격 받는 일이 잦아지게 되어 마을을 요새화하거나 이들을 토벌하기 위한 목적으로 중산간 마을에 1949년 2월 소개령을 내려 해변마을로 이주하게 하는 등 주거생활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 당시의 주거 형태를 몇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기존마을에 10尺내외의 축성을 하고 성문입구에 초소막을 세워 감시하는 형태의 마을에 거주
② 동굴에 임시 거처를 마련하여 거주하는 형태
③ 소개된 마을 주민을 집단적으로 거주하게 하여 관리하고 방어적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한 전략촌을 건설하여 거주하는 형태

이와 관련한 구체적인 자료는 남아 있지 않으나, 성(城)에 대해서는 몇 가지 관련문헌이 나  흔적지가 남아있어 당시의 생활상을 짐작할 수 있다.

산사람들에 대한 토벌이 끝나갈 무렵인 1949년 봄에 들어서 해변마을에 소개하여 있던 주민들에 대한 복구지가 정해져 이주하게 되었는데, 그 복구지가 성(城)이었다. 성의 축조는 소개민(疏開民)을 수용하여 통제하기 용이하고, 또한 무장대와의 연계차단 혹은 동조세력의 색출을 목적으로 주민들을 강제로 동원하여 건설된 마을이었는데 4․3성 혹은 전략촌, 건설부락 혹은 재건부락으로도 불리었다.

성(城)의 규모는 노형동 정존마을에 축조된 성(城)의 경우 220m×210m이며 선흘리 낙성동의 경우는 140m×110m로서 거의 정방형의 형태를 유지하면서 크기는 일정하지 않았던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 제주시 노형동에 축조된 성(城)의 배치도.

▲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에 축조된 성(城)의 배치도와 복원 정비된 모습(위성사진, 오른쪽).

 
축성작업은 반장의 책임아래 반별로 구역을 할당하여 진행되었는데 불탄 집터의 울담이나 밭담을 맨손 혹은 지게와 짚으로 만든 등테 등을 이용하여 등짐으로 지어 날라 방호벽을 구축했다. 방호벽 밑에 습격을 막기 위하여 약 폭 1.0m, 깊이 1.5m정도의 도랑을 파고 가시나문, 실거리 나무 등으로 둘러쳤다.

성의 내부공간배치 형태는 일률적으로 조성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선흘리를 보면 정문과 후문으로 이루어져 있고 내부에는 지서, 집단적인 형태의 임시주택, 가축방목지, 공동화장실, 초소 등이 있었다고 한다. 초소 하부에는 순번제로 대기하는 공간이 있었고, 상부에는 원두막형식으로 집을 짓고 때에 맞춰 보초를 섰다고 한다.

▲ 마을 사람을 동원하여 축성을 하는 모습과 초소의 모습(위 왼쪽). <출처=제주학연구소(1999), 제주학, 제3호 여름>
▲ 북제주군 선흘리에 축조된 성(城)의 전경(왼쪽)과 무너진 방호벽(오른쪽).
▲ 북제주군 선흘리 성(城)의 방호벽 단면(왼쪽)과 관측 및 사격을 위한 개구부 모습(오른쪽).

특힌 눈길을 끄는 건 임시주택이다. 임시주택은 집단주거형식으로 1동당 4세대 형식의 평면구조를 취하고 있다. 말 그대로 임시거처였기 때문에 내부공간은 바닥에 고사리 등을 깔아 눕히고 다른 구석에서 밥을 해먹으면서 살았다고 한다.

외벽은 돌로 쌓고 내부 칸막이는 억새로 막고 지붕은 근처의 나무를 베어다가 간략히 틀을 짠 뒤 억새로 덮었다. 당시의 어려웠던 생활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전략촌 임시주택의 평면.

#. 맺으며
현재 일부 4․3사건관련 유적의 일부는 보전 관리되고 있으나 역사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4․3사건 관련유적의 문화재적 가치를 평가하여 보존하는 방안이나 그리고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의 자원활용 등 다양한 활용방안에 대한 검토도 필요하다.

특히 관광의 비중이 높은 제주의 경우 문화, 생태. 녹색, 체험, 해양 등 형용사가 붙은 관광의 다양성이 강조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다크투어리즘(Dark Tourism)은 종전과 같은 밝고 활기찬 관광과는 대비되는 또 다른 의미의 관광의 현상으로서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제주도가 평화의 섬으로 강조되는 점도 제주 근현대사의 아픔과 교훈을 통해 평화의 가치와 중요성을 인식하기 때문에 4․3사건 관련 근대유적은 이념적 갈등을 넘어 평화교육과 평화상징으로 보존하고 활용할 필요성이 높다.

참고문헌
1. 김태일(2005), 제주건축의 맥, 제주대학교출판부
2.제주도․제주4․3연구소(2005), <4․3사건 유적Ⅰ․Ⅱ> 보고서
3.제주도/제주4․3연구소(2005), 제주4․3유적종합정비및 유해발굴 기본계획
4.(사)제주민예총4․3사업단(1999), 다랑쉬굴의 슬픈노래, 도서출판 각
5.제주특별자치도(2009), 사진으로 보는 제주역사1.도서출판 각
6.제주학연구소(1999), 제주학, 제3호 여름 /김태일 제주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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