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승주의 책놀이책 Q&A 칼럼] (11) 독서록 쓰기 힘들어 하는 아이

#. 에피소드11

“ 민영아, 지금 읽고 있는 책 제목이 뭐야”
“ 『조커, 학교 가기 싫을 때 쓰는 카드』라는 책인데, 아주 재밌어.”
민영이가 책을 나에게 넘겼다. 이 책은 예전에 나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 우와, 이 책 엄마도 재밌게 읽었는데. 우리 민영이가 책을 얼마나 잘 읽었는지 탐정 놀이해 볼까?”
민영이는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질문을 기다렸다.
“ 첫 번째 질문, 책에 나오는 조커는 모두 몇 장일까요?”
“ 엄마, 그건 반칙이야. 그걸 세면서 읽는 사람이 어딨어?”
민영이는 분하다는 듯이 책을 다시 펼쳤다. 이 문제는 제외하겠다는 다짐을 받아 내고 나서야 분이 풀린 것 같았다. 손가락을 동원해 하나씩 세어 보더니 마침내 대답했다.
“ 46장!”
“ 맞아, 그럼 조커 중에서 가장 이름이 긴 것은 뭘까”
“ 엄마, 그것도 반칙이야!”
말은 그렇게 하면서 어느새 책을 뒤적이고 있는 민영이었다.
“ 아무 때나 목이 터져라 노래 부르고 싶을 때 쓰는 조커! 21자!”
“ 땡! 정말 길기는 한데, 정답은 아니야.”
“ 정말? 이것보다 긴 조커가 있었다고”
“ 그다지 조심스럽지 못한 질문을 하고 싶을 때 쓰는 조커, 22자야.”
몇 개의 질문을 추가로 던지자 민영이의 눈동자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만약 청진기가 있어서 민영이의 머리를 짚어 보았다면, ‘핑핑’ 생각이 굴러가는 소리가 나지 않았을까.

▲ 그림 김라연(blog.naver.com/gomgomHUG).

아이들이 독서록 쓰기를 힘들어 하는 까닭

‘독서록’은 독서교육의 대명사다. 학교에서 독서교육을 할 때는 독서록이 중심이 되고, 도서관에서는 독서 통장 제도 등 책 읽기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마련한 제도로서 자리 잡았다. 하지만 그 실정을 보면 충격적이다. 아이들은 독서록 쓰기를 무서워하고 힘들어 한다. 부모님들에게 아이들의 상황을 알려주기 위해서 ‘독서록 상황극’을 진행하기도 하는데, 책놀이 강연에 참석한 부모님들에게 눈을 감고 책상 앞에 독서록을 떠올려보라고 주문한다.

그러고 나서 부모님이 아이가 되어 보는 것이다. 상황극에 참여한 부모님들은 실제 아이들과 비슷한 반응을 보인다. “막막해요”, “칸이 너무 많아요”, “무슨 말을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 상황극은 부모라면 누구나 가정에서 쉽게 할 수 있다. 만약 아이가 쓰는 독서록이 있다면 더욱 좋다. 독서록의 빈칸을 책상 앞에 펼쳐 보고 아이가 한 번 되어 보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어떤 느낌이 드는지 생각해보고, 종이에 그 느낌을 기록해 보면 아이의 마음과 닿을 수 있다. 책을 읽고 나서 “좋았어.” “재밌었어”, “재미없어” 같은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아이도 ‘독서록 공포증’에 걸린 아이와 비슷한 경우다. 한마디로 “받기 싫은 질문을 받은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적절한 질문이나, 흥미로운 질문,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면 아이의 반응은 달라진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고민이 생긴다.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질문)을 달 것인가?

#. 솔루션11

나는 독서를 할 때 주인공과 주변 인물의 행동과 감정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주인공의 좋은 면을 닮고 싶어 하고, 따라 해 보면서 학창시절 대부분을 보냈다. 이런 경험이 나를 성장시켰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민영이가 책을 볼 때는 주인공에게 몰입하기를 바랐다. 그래서 탐정 놀이를 준비할 때 주인공을 중심으로 질문을 만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민영이는 주인공보다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사건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아이였다. 나는 내가 듣고 싶은 정답을 정해 놓고 질문을 던졌던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고 나자 질문을 달리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민영아, 선생님이 맨 마지막에 학교에서 나와서 식당으로 갔잖아, 왜 그랬는지 기억나”
“화가 엄청 많이 났을 때 맛있는 걸 먹으면 풀리니까, 선생님이 식당으로 간 게 아닐까”
“재미있는 생각이지만 책에 나오는 내용은 아닌데? 엄마가 힌트를 줄게. 선생님은 그 전에도 식당에 한 번 갔던 적이 있었어.”
“아, 맞다. 생각났어. ‘스스로에게 맛있는 식사를 대접하기로’ 했었는데, 교장 선생님을 만나는 바람에 그러질 못했잖아. 그래서 그때 못했던 식사 대접을 하려고 식당에 갔던 거야.”

주인공의 감정이 아니라 행동을 분석할 수 있는 질문을 던지자 민영이는 훌륭하게 정답을 찾아냈다. 탐정 놀이를 하기 위해서 전전긍긍하는 내 모습을 보자 남편이 거들었다. 내가 만든 질문지를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 주인공이 가장 슬퍼한 순간은 언제인가’ 이게 질문이야?”
“ 응, 왜 이상해?”
“ 사람에 따라 슬픈 건 다 다르잖아. 이런 문제는 정답이 있는 게 더 이상하지.”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였다. 남편의 지적을 받고 나서 질문을 보니 대다수가 감정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런 질문에 정답을 찾아야 했던 민영이의 고충이 새삼 느껴졌다. 남편의 도움이 없었다면 결국 탐정 놀이는 포기했을 것 같다.

아이에게 좋은 질문을 선물하는 방법

좋은 질문은 아이에게는 계단의 역할을 한다. 책이 높은 산이라면 아이는 질문의 계단을 밟고 정상에 올라갈 수 있다. 정상에 올라가면 계단은 어느새 ‘활주로’가 되어 있다. 아이는 비행기처럼 창공을 날아다닐 수 있다. ‘좋은 질문’은 이런 힘이 있다. 뿐만 아니라 좋은 질문은 그 자체가 ‘좋은 요약’이 된다.

질문에 답하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책의 내용과 느낌들이 재구성이 되면서 책의 내용이 아이에게 진하게 남아 있게 된다. 질문의 미덕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질문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역할도 한다. 예컨대 ‘창의력’에 관한 ‘좋은 질문’을 하나 소개한다. 우리들은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창의력을 키울 수 있을까?” 하고 질문한다.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A.매슬로는 질문을 바꾸라고 제안한다. “부모인 내가 혹시 아이들의 창의력을 혹시 깎아버리고 있지는 않을까?”라고 질문을 던지는 순간 아이들은 ‘왕성한 창의력을 타고난 존재’로 바뀌어 버린다. 어딘가에서 창의력을 얻어오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는 창의력을 없어버리지 않고 잘 키우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는 의미가 이 질문 안에 포함돼 있다. 물론 좋은 질문을 던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책에 관한 질문은 부모가 아이가 읽는 책을 면밀히 살펴보면서 아이가 밟고 올라갈 질문을 개발해야 한다. 이 때 엄마와 아빠가 서로 검증을 해주면서 질문의 질을 높이면 더욱 좋다. 또는 아이에게 질문을 던져 보고 표정을 보면서 좋은 질문을 다듬어 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좋은 질문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필요는 없다. 좋은 질문의 가장 기본이 되는 조건인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이가 읽은 책을 부모도 읽고 책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이의 도움을 받아서 좋은 질문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고 친구들과 잡담을 나누듯 떠오르는 생각들을 하면서 아이와 수다를 떨다 보면 아주 자연스럽게 좋은 질문을 떠올릴 뿐만 아니라 책에 관한 좋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이 효과를 어려운 말로 ‘무목적의 목적성’이라고 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의 독서력과 사고력은 자연스럽게 길러진다. 

   

 

 

 

 

 

 

 

/오승주 독서지도사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