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넷 해녀 할망, 먼저 보낸 하르방 생각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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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멍 보멍 들으멍] (40) 할망의 씩씩한 러브스토리

▲ 여든넷의 나이에도 할망은 바다로 나간다. 한 평생을 묵묵히 함께한 바다는 늙은 할망들에게는 일터라기 보다는 놀이터일 것이다. 사진=정신지. ⓒ제주의소리

할망의 입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들은 것은 처음이다. 마른 무더위가 극성을 떨던 어느 오후, 해안가 마을을 걷다가 만난 할망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할망의 러브스토리를 듣는다. 자식 이야기, 4.3사건과 전쟁, 배고팠던 시절의 이야기,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살아오신 할망들이지만 이번처럼 내게 하르방 이야기를 연속해서 들려주신 분은 없었다.

무슨 말을 꺼내도 이야기의 종착지는 하르방을 향한 추억이고 그리움이다. 너무 많이 그립고, 너무 많이 사랑하셨던 걸까. “이제랑 사랑허멍 호끔 살주(이제는 사랑하면서 좀 살아보자), 허난 떠나가분 거라(하니까 떠나가버린 거야), 우리 하르방…” , 하시던 할망의 말씀이 맘 한 구석에 휭하니 구멍을 뚫는다.

할망은 여든넷 평생을 한 남자와 여덟 남매를 위해 아낌없이 주기만 하며 살아왔다. 물론 다 자란 자식들은 오래전에 곁을 떠났고, 하르방은 작년 이맘때 즈음 오랜 투병생활 끝에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갔다. 그 흔한 강아지 한 마리 없는 집에서 할망은 바다를 벗 삼고 바람을 손님 삼아 혼자 지낸다.

워낙 튼튼한 몸으로 태어난지라 이제껏 병치레 하나 없었다는 할망은 올해도 여김 없이 물질을 한다. 첨벙거리며 작업을 하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단 하나의 이유로 그이는 바다에 나간다. 그날도 할망은 바위틈에 붙어사는 군번(표준어로 ‘군부’라 불리는 바다 생물)을 한 움큼 따와서 그것을 손질하고 계셨다. 식당을 하는 며느리에게 가져다 줄 것이라면서, “이런 거 처음 보지?” 하시고는 내게 군번의 손질 방법을 자세히 알려주신다.

▲ 빨래하듯 힘껏 문질러 껍질을 벗기고, 손톱으로 하나하나 정성껏 그것들을 정리한다. 여간 손이 많이 가는 일이 아니다. 사진=정신지. ⓒ제주의소리

물에 한 번 삶은 군번을 망사 주머니에 넣고 빨래하듯 그것을 땅바닥에 문지른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껍질이 잘게 부서져서 알맹이만 남는다. 그것을 하나하나 손톱으로 벗겨 내고 다시 흐르는 물에 씻는데, 보아하니 보통 일이 아니다. 곱게 자란 우리들의 눈에는 언제나 다 된 밥상만 보이고 과정은 생략되어 있는 거다. 그러니 뭐든 감사하며 먹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손질하신 군번 중에 가장 통통하고 커다란 것을 골라서 내 입에 넣어주신다. 고소하고 쫄깃한 것이 아무런 양념 없이 먹어도 맛이 일품이다.

▲ 가장 커다랗고 토실토실한 군번을 하나 건네 받는다. 고소하고 쫄깃한 것이 아무런 양념 없이 먹어도 맛이 일품이다. 사진=정신지. ⓒ제주의소리

“아이고, 게난(그래서) 니는(너는) 어떵 행(어찌하여) 이런 할망신디(에게) 와져샤(온 거야)?”

할망의 이야기에 푹 빠져 있는 나를 보며 한 말씀 하신다. 오늘 하루도 어제처럼 조용히 흘러가려니 했거늘, 뜬금없이 내가 나타나서 할망의 이야기보따리에 구멍을 뚫어버린 것 같다. 하고 싶은 말이 많으셨는지, 할망은 나긋한 말투로 미안하리만큼 많은 이야기를 끊임없이 뿜어내신다. 이처럼 듣는다는 것은 고마우면서도 미안한 행위이다. 할망이 정성스레 손질한 군번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입에 꿀꺽 삼켜버린 것처럼, 고맙고 미안한 마음으로 할망의 보물 같은 이야기들을 꼭꼭 씹어 삼키며 듣는다.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란 할망에게는 너무나 ‘잘난’ 남편이 있었다. 젊은 시절 마을에서 가장 잘생기고 많이 배웠다는 그와 중매로 결혼한 할망은, 열아홉에 그와 약혼하고 꽃 같은 스무 살에 시집을 왔다. 하지만 이내 4.3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할망의 스무 살은 잊고 싶은 일투성이다.

“하르방은 일본서 컹(커서) 그디서(거기서) 중학교 까정(까지) 나온디(나왔으니), 원체 머리가 좋으난(좋아서) 뭐를 혀도(해도) 왜놈들 신디(에게) 쭈그리지 말아야헌댄(기죽지 말아야 한다고) 열심히 살아서. 겐디 4.3사건에 사름(사람)들이 몬딱 얼 먹었주게(모두 겁을 먹은 거지). 군인덜(군인들) 오랑에(와서는) 총 탕탕 쐉(쏴서) 몬딱(모두) 죽고, 하르방은 그전부터 제주시 경찰서에 운전사로 다녀나신디(다녔었는데), 그때 나가 약혼한 때난(때니까), 우리 아버지가 빨리 똘(딸)을 시에 데려가랜 해서(데려가라고 했어). 우리가 죽거들랑 꽝만 촐령 놔두랜 행(뼈만 챙겨 놔 두라고 하시면서) 나를 시집 보내분 거라. 이디(여기)는 마을이 다 불타부난(불타버려서), ‘니넨 그디 가민 산다(너네는 거기 가면 산다).’ 행(하셔서)... 겐디 무신(그런데 웬걸), 제주시로 왕 보난(와 보니) 이디나 그디나(여기나 거기나) 마찬가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어서.”

딸을 살리려 자식을 시집보내고 부모는 불바다가 된 마을과 함께 떠나갔다. 굴속에 가서 숨고, 밭 트멍(구멍)에 가서 숨고, 죽기 아니면 살기로 용을 써도, 사람이 죽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피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할망은 말했다.

“하르방은 막 어리고 두릴(멋 모를) 적에 경찰이 되어서. 일본놈들 이실(있을) 적에 어떵허당(어쩌다가) 운전을 배와가지고. 그땐 운전하는 사람이 어실 때난 게(없을 때니까 말이야). 시국(4.3사건) 때도 ‘아기 순경’ 소리 들으멍 일 했주만(했지만), 그때는 일 허여도(해도) 돈으로 안 주고 쏠(쌀)을 줘나서(줬었어). 많이도 아니라, 호끄만치(조금만). 그걸로 어떵(어찌) 겨우 먹으멍(먹으며) 살긴 했주만…”

4.3의 폭풍이 지나가고, 할망은 귀향하여 다시 물질을 시작하고 밭을 일구었다. 한편 하르방은 돈을 벌어오겠다며 유랑생활을 시작했다. 서울에 가기도 하고, 그러다 돌아오면 곧 일본으로 떠나고, 여덟 번의 출산을 하면서도 단 한 번 곁에 있어 주지 않았던 하르방이다. 혼자 아기를 낳고 기르며, 그 많은 제사 명절을 도맡아 해 온 할망에게 하르방은 한 번도 고생했다는 말조차 건네지 않았었다.

“하르방, 오죽 돌아댕겨샤(돌아다녔느냐). 게난(그러니까) 이 할망 혼자 조만조만(묵묵히) 아장(앉아서) 싯게 명질(제사 명절), 물질이영(이랑), 혼자서 다 했주. 벌초도 나가(내가) 다 하고…”

하지만 할망은 결코 하르방을 원망하는 법이 없다. 잠시 말씀을 놓으시고는 또다시 하르방에 관한 추억을 더듬으신다.

“게도(그래도), 하르방이 날 너무 고생시켜부니까, 나이 들고 회심을 먹어가지고는 나를 너무 사랑해주었어. 어디 댕기당(나갔다) 와도 속솜허지(가만히 있지) 않고, 나신디(에게) ‘고생했쪄이(고생했어)’, 영 고라도 주고(이렇게 말도 해 주고). 맛난 것도 상 왕(사와서) 나신디 먼저 먹으랜(먹으라고) 주고, 나가 먹지 아니하민 당신도 안 먹캔 때쓰곡(안 먹겠다고 때를 쓰고). 아기들이 먹을 거 사와도 당신은 먼저 먹지 안혔주게(않았거든). 나가(내가) 먼저 먹어야 당신도 먹캔 해(먹는다고 해). 살당(살다가) 보니까 이추룩(이렇게) 사랑도 해주는구나, 해신디(했는디) 막 아팡이네(아파서) 그추룩 죽어분 거라(죽어버린 거야). 작년 딱 이맘 때 즈음에....”

말씀을 멈춘 할망의 눈시울이 촉촉해져 있다. 너무 가슴이 아파서 나 역시 뭐라고 할 말이 없다. 등이 따갑도록 햇살은 내리쬐는데, 이토록 슬픈 것이 이상할 정도다.

“니는 나영만 아장 이추룩 시간 보내잰 와샤(너는 나랑만 앉아서 이렇게 시간 보내려고 온 거냐)?’

“예, 오늘은 하늘이 할머니를 만나랜(만나라고) 나를 이디(여기) 보낸 거 아니꽈(아니겠어요)? 하하하. 이추룩 허잰 와수다(이렇게 하려고 왔지요).”

“이건 무슨 인연사신지(인연인지) 원. 아맹해도 좋다게(뭐라도 좋다). 허허허… 게난, 우리 하르방도 누구든지 사람이 오민(오면) 조근조근(자근자근) 말을 잘 허여나서(했었어). 예수 믿으랜(믿으라고) 오는 사람덜도 딴 집 가민 쫓겨나는디(다른 집에 가면 쫓겨나는데), 하르방은 누구나 들어오랜 해나서(들어오라고 했었어). 안마해주켄 하민(해주겠다고 하면) 허랜 허곡(하라고 하고), 말 고르민(말하면) 다 들어주곡. 거 몇 마디 말 곧잰(하려고) 들어온 것을 ‘가라가라!’ 행(하면서)…, 요즘은 촌에 사람들도 바빵(바빠서) 말 할 시간 어땐 고라(없다고 말해). 무사 그추룩 바쁘게 살암신지(뭘 그렇게 바쁘게 사는 건지). 바쁜 것도 어시멍(없으면서), 이(그렇지)?”

하르방이 쓰러지고 나서 할망은 8년이나 하르방을 간호했다. 할망은 그것을 ‘종질’이라고 표현하셨다. 몸에 좋다는 것은 팔도강산에서 다 구해와 먹이고, 화장실에 갈 적에도 서울의 병원에 수술을 받으러 갈 적에도 그들은 언제나 함께였다. 어떻게 해서든 남편을 살려야겠다고 노력한 결과, 그래도 하르방은 쓰러지고 나서 8년을 버텨 여든셋까지 사셨다. 유랑하던 젊은 시절에도 이장님으로 일하던 노후의 시절에도, 하르방은 늘 누군가의 앞에 서서 삶을 개척하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건강을 잃고 걷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 뒤늦게 할망의 품으로 돌아온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마땅히 사랑해야 할 아내이자, 존경받아야 할 어머니, 그리고 그 힘든 시절을 다 이겨내며 병 하나 없이 살아온 강인한 인간이었던 할망의 품에서 하르방은 생을 마감했다. 그 역시 많이 아프고 슬펐겠지만, 그나마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슬프고 힘들었던 기억은 죄다 묻어 둔 채, 할망은 오늘도 하르방에게 받았던 커다란 사랑만 고이 간직하고 있기에.

그래서 그런 것일까? 할망은 이야기하는 내내 행복은 ‘지금’이라 누차 말씀하신다. 옛날엔 먹을 것은 없었지만, 공기도 좋고 인심도 좋아 행복하지 않았냐고 물어도 할망은 ‘지금’이 좋다 하시고, 집 앞 바다에 생겨난 커다란 풍력 발전기가 물질하는 해녀들의 잠수를 방해하고 있지만, 그래도 연거푸 ‘지금’이 좋다 하셨다. 세월에 많은 것을 잃어 너무나 불행하고 박복하다 여겼던 자신의 지난 시절은 이미 흘러간 것이라며, 할망은 여전히 ‘지금’을 강조하신다. 지금보다 맑고 투명했던 바다를 그리워하지도, 육지로 물질을 하러 나가던 젊은 해녀 시절의 자신을 그리워하지도 않는 할망. 오로지 그리운 것은 하르방 뿐이다.

 “이보다 얼마나 더 행복해지크냐(지겠냐)? 너가 지금 행복하댄 곧지 않으민(말하지 않으면), 그건 욕심이 너무 많은 거라. 쇠똥 몰똥 주어당(소똥 말똥 주어다가) 겨울 나고, 검질 비어당(잡초 베어와서) 밥 행(해) 먹고, 병원이 어시난(없으니까) 당에 강(가서) 하나님신디(에게) 살려돌랜 허고(살려달라고 하고)... 이제사 병원도 싯고(있고), 먹을 것도 어성 못 먹느냐 게(없어서 못 먹느냐), 고치 먹을 입이 어성 못 먹주(같이 먹을 입이 없어서 못 먹지).”

평생 물질을 해 온 할망은, 지금도 아침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바람을 살피는 일이다. 바람이 어디서 불어와 어디로 가는지를 알아야 그 날 해야 하는 일이 떠오른다 하셨다. 할망을 만난 날 제주에 분 바람은 ‘마파람’이었다. 산에서 불어와 바다로 향하는 이 바람은, 제주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바람이다.

“이 보름(바람)이 불며는 사름이 막 요무지다가도(야무지다가도) 피곤해져. 이 보름이 불며는, 사람이 덥고 고단해지고 자구정만 허여(자려고만 해).”

그래서 할망은 오늘 아침 일찍 오토바이를 타고 바다로 향했다. 바람을 맞으며 천천히 달리는 사륜 오토바이는 사실 하르방의 유산이다. 돌아가시기 전에 할망에게 오토바이 타는 법을 가르쳐 주신 하르방 덕분에, 할망에게는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마파람이 불어와 기운이 앗아가더라도, 비가 오지 않아 몸과 마음이 건조해지더라도, 늘상 행복은 ‘지금 이순간’이라 여기며 살고 계신 할망은, 바다에서 따온 한 움큼의 군번도 정성껏 손질을 해서 그것을 남에게 준다. 그렇게 하르방 없는 첫 여름이 흘러가고 있다.

“하르방신디 호끔 배워줍쎈 행(좀 가르쳐달라고 해서) 배와노니까(배워두니까),  저거 탕이네(타서) 어디라도 가져(갈 수 있어). 빨리 달리지도 안혀고(않고), 저건 나신디 딱 알맞아. 해안도로 이리저리 댕겨도, 데쓰가부(일본어로 ‘철모’라는 뜻)를 쓰지 안혀도(않아도), 경찰이 ‘할망, 세웁써(세워요)!’ 곧는 법이 어서(말하는 법이 없어). ‘데쓰가부’랜(라고) 하민 (하면) 알아져(알아)? 쇠모자, 군인덜이 쓰는 거 있지 안혀냐게(있잖아). 거, 요즘 말로는 데쓰가부앵 안 혀나(데쓰가부라고 안 하나)? 하하하.”

▲ 떠나가는 나그네에게 손을 흔드시는 할망. 배우고, 또 배우고 떠나는 나다. 올 여름은 할망 만큼만 씩씩해졌으면 좋겠다. 사진=정신지. ⓒ제주의소리

그렇게 할망은 하르방이 가르쳐 준 대로 거북이 보다 느린 속도로 동네 골목 골목을 달린다. 혼자 있어도 행복하고, 누가 찾아오면 찾아오는 대로 언제나 ‘지금’이 행복한 할망. 그러고 보니 할망의 러브스토리는 비극이 아니다. 뒤늦게 찾아온 사랑의 추억이 오늘도 데쓰가부를 쓰고 할망을 바다로 향하게 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올여름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할망 만큼만 씩씩했으면 소원이 없겠다. 마파람이 불어와 몸과 마음이 지치고, 혹 사랑하는 사람이 갑자기 곁을 떠나게 되는 슬픈 일이 생기더라도 말이다. ‘지금’과, 지금을 있게 한 ‘과거’를 행복하게 여길 수 있는 아름다운 씩씩함을 할망에게 배운다.<제주의소리>

<정신지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정신지는 ?

   

이 여자, 택시 기사들과 대화 나누길 즐기는 ‘수다쟁이’다. ‘역마살’도 단단히 타고났다. 거기에다 ‘촌스러움’까지 좋아하는 독특하고 야무진 여자다. 그녀의 이름은 정신지(32). 파주·부산 출신의 부모님 아래 서울서 태어나 여섯 살에 제주로 이민(?) 왔지만 스무살에 다시 서울로 나갔다가 일본의 대학과 대학원에서 ‘지역연구학’이라는 인문학을 전공했다. 그동안 세계 17개국의 섬·지방·대도시를 떠돌며 사람과 집단, 그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혀왔다. 지난 봄, 일본의 국립 홋카이도대학(北海道大學)에서 문학박사 과정도 수료했다. 이제 12년간의 지구촌 유목 생활을 마치고, 태어난 곳은 아니되, 자신을 성숙하게 키워준 ‘진짜 고향’ 제주로 지난 봄 돌아와 부모님이 살고 있는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 <제주의소리> '걸으멍 보멍 들으멍'이란 코너를 통해 제주와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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