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도 출신의 강병삼 변호사는 10년간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해 제주 첫 로스쿨 변호사가 됐다. 최근 제주지방법원 인근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본격적인 법조인의 삶을 시작했다.ⓒ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강병삼 변호사의 영화같은 이야기 "수임료 없어도 사전분쟁 해결이 최선"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출신 최초로 제주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연 주인공이 탄생했다. 10년간의 직장생활을 뒤로하고 법조계에 뛰어든 강병삼(39) 변호사를 22일 만났다.

제주시 애월읍 고성2리 출신인 강씨는 1993년 대기고를 졸업(7회)하고 한양대 회계학과에 진학했다. 93학번이다.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다녀오자 학과는 경영학부로 바뀌어 있었다.

어려운 형편에 당장 생활비가 걱정이었다. 틈틈이 수박장사와 백화점 이벤트, 옷가게 점원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졸업반이 되자 아르바이트를 하던 이벤트 회사에 정식 취업했다.

2000년 당시 회사의 월급은 50만원. 밥을 먹고 교통비를 지출하면 주머니에 남는 돈이 없었다. 생각을 바꿔 국내 굴지의 보험회사 직원 공개채용 시험에 응시했다. 합격이었다.

영업사원이 실적에 따라 성과급을 챙기는 것과 달리 강씨는 높은 실적에도 불구하고 정해진 월급만 받았다. 영업사원이 아닌 공채직원이었기 때문이다. 자신감이 생기자 대리점을 냈다.

보험사 생활 2년간 노하우를 쏟아 서울 남대문에 사무실을 차렸다. 보기 좋게 망했다. 사회생활 첫 실패였다. 그때가 2002년. 첫 아이까지 태어나자 무기력한 자신에 나쁜 마음도 먹었다.

가정을 지켜려 이번엔 보험사이트 텔레마케터에 도전했다. 전공을 살려 실적이 오르자 6개월만에 마케팅 팀장에 올랐다. 직원들이 늘고 회사는 보험업계 유명 벤처회사로 급성장했다.

새벽 1시에 퇴근하고 5시30분에 출근하며 회사를 키웠다. 둘째가 임신하고 가정을 뒤돌아 보니 ‘아차’ 싶었다. 무엇보다 서울에서 애들을 키우고 싶지 않았다. 고향도 그리웠다.

2005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가족들과 제주땅을 밟았다. 미리 구상한 온라인 여행사 사업도 준비도 시작했다. 경험을 위해 무작정 도내 여행사에 들어갔다. 3개월 후 선배가 창업을 말렸다.

제주에서 기반을 먼저 잡으라는 충고였다. 공개채용 정보도 줬다. 제주테크노파크의 전신인 제주지식산업진흥원 RIS사업, 즉 지역개발사업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이 바로 그 선배 덕이었다.

사업이 끝나자 국내 대형 손해보험 업체에서 연락이 왔다. 제주지역 영업소장을 맡아달라는 스카우트 제의였다. 업무를 맡자 다시 일중독이 시작됐다. 

▲ 제주도 출신의 강병삼 변호사는 10년간의 직장생활을 정리하고 제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에 진학해 제주 첫 로스쿨 변호사가 됐다. 최근 제주지방법원 인근에 사무실을 마련하고 본격적인 법조인의 삶을 시작했다.ⓒ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남편을 본 부인이 고개를 숙였다. “100만원 벌어도 우리 밥먹으면서 살 수 있다. 이럴려고 제주도까지 내려온 것 아니다” 뒤돌아보니 스스로 서울 생활을 반복하고 있었다.

2008년 고심 끝에 제주대 로스쿨에 눈에 돌렸다. 훌륭한 법조인이 되겠다는 사명감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관심이었다. 일단 로스쿨 입학에 필요한 법학적성시험을 봤다. 합격이었다.

그의 나이 만 36세. 3년간의 캠퍼스 생활이 시작됐다. 대학졸업 10년만이다. 직장생활 보험 약관에 통달한 그의 눈에 법조문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이해도 빨랐다. 판례도 재밌었다.

대학원 생활 한국환경법학회가 주최하는 제2회 대학원생 환경법 우수논문 공모대회에서 ‘환경보호지구의 해제처분과 원고적격’ 논문으로 환경부장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2012년 졸업과 동시에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다. 그해 5월 제주지방변호사회를 방문해 변호사시험 합격자 자격등록을 마쳤다. 제주대 로스쿨 출신 1호 변호사다.

곧바로 법무법인 해오름(대표 변호사 고성효.강문원.진영진)에서 6개월간 실무연수를 받았다. 로펌 소속이 될 수 있었지만 과감히 나와 최근 제주지방법원 근처에 사무실을 차렸다.

강씨는 “법은 사람 사는 이야기와 같다. 판례는 한편의 영화를 보는 듯 했다”며 “10년간의 치열한 직장생활을 뒤돌아보면 로스쿨 3년은 휴가 같은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법은 학문이 아니라 기술이라고 생각한다. 누구든지 자신의 기술에 법을 접목할 수 있다. 그 길을 로스쿨이 열어준 것 같다”고 말했다.

향후 관심사에 대해 강씨는 ‘소정외 사건’을 언급했다. 이는 법정서 다투지 않고 사전에 분쟁을 해결하는 사건을 뜻한다. 변호사로선 수임료를 챙기지 못하는 방식이다.

이런 답변이 돌아왔다.

“소송의 상당수는 법정 밖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무조건 법대로 하자는 생각은 바꿀 필요가 있다. 돈이 안 된다고...나는 그게 돈 버는 일이라고 생각한다”<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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