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 칼럼>행정시장 직선제의 허와 실
                         
  덥다. 비가 오지 않아서 덥고, 행정체제 개편을 둘러싼 논쟁으로 더 뜨겁다. 돌이켜 보면 행정체제 개편을 둘러싼 논쟁은, 자치 시군의 폐지로 상징되는 현행 체체를 당분간은 그대로 유지해 나가자는 입장(A 입장), 법인격을 갖는 기초자치단체의 부활을 통해 행정의 도민대응성을 충분히 확보해 나가자는 입장(B-1 입장), 그리고 특별자치의 입법 취지를 십분 살리면서 행정시의 문제점을 부분적으로 수정보완해 나가는 입장(B-2 입장)으로 나뉜다.

  여기서 행정체제 개편 안이 3개가 아니라 A와 B 두 개로 대별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2013년 8월의 시점에서 2014년도 지방선거를 현행 행정체제의 틀 속에서 치를 것이냐 아니면 변화된 행정체제에서 치를 것이냐에 따른 것임을 우선 밝혀야 하겠다.

그리고 이 글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서 필자는 2011년과 2012년에는 행정제체 개편에서 주민투표를 통한 최대주의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 있는 B-1 입장이었지만, 2013년에는 최소주의적 접근이 보다 유용하다는 생각에서 B-2 입장으로 바뀌었음도 미리 밝히고자 한다.

여기에는 2013년 8월의 시점에서 최대주의만 고집하다가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A로 끝나나서는 안 된다는 위기감과 함께 우선 2013년 말까지 앞으로 5개월 간 최선이 아니면 차선을 취해 나고자 하는 실용주의적 접근의 유용성과 함께 이후(2014-8년 기간에 걸쳐)에 다시 도민들의 총의를 면밀히 검토하여 최적의 제주특별자치도형 행정체제를 모색해 나가면 안 되겠느냐는 현실 타협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우선 2006년 주민투표를 통해 어렵사리 제주특별자치도로 재출범한 제주도 행정체제를 10년도 안 해 보고 이렇게 저렇게 바꾸는 게 능사인가의 이의제기는 일리가 있다. 여기에는 제주특별자치도 행정체제의 안정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와 함께 뭐 제도가 바뀐다고 세상이 달라질까라는 정치적 냉소도 한 몫 하고 있다. 제주국제자유도시를 보다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취해서는 시군의 중복기능을 없애는 데서 시작하자는 현행의 행정시 체제와 관련하여 무언가 중앙정부로부터의 적극적 지원책을 강구해 나가는 데 한계를 보이는 리더십의 부재가 더 문제가 아니냐는 항의까지 다양하다. 아마도 제주도민의 대략 25% 정도는 이런 입장(A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볼 것이다.

  그럼 나머지 75%는 어떤 생각일까? 여기서 무관심 내지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방임 혹은 읍면동 기능 강화 등 다른 방식의 행정체제 개편을 촉구하는 등의 대략 25% 도민을 제외하면 나머지 50%는 일단 현행의 행정시 체제에 불만을 갖고 있어 당장 2013-4년에 어떤 형태로든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B  입장)을 보이고 있다.

여러 가지 요인들(현명관 후보의 금품살포 등)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의 하나로 4년전 우근민 후보가 상대적으로 더 많은 도민들이 B 입장에서 현행의 행정체제에 대해 불만을 갖고 있음을 재빨리 파악하여 공약화함으로써 당선을 이끌어냈다고 본다면, 내년도 동시지방선거를 앞두고 행정시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를 것이라는 건 불 보듯 뻔하다.

  그래서일까 얼마전 세대교체를 내걸면서 내년도 지사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한 새누리당의 김방훈은 당선되면 자치 시군폐지 이후 10년이 되는 시점인 2015년에 주민투표를 통해 행정체제 개편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언명한 바 있다.

넓게 보면 A 입장인 것으로 보이지만, 어떻든 김방훈은 앞으로 4년 정도 더 현행 행정시 체제로 가기로 하고 그 과정에서 이에 대한 도민들의 의견을 보다 더 면밀히 검토하여 2015년 주민투표 그리고 2018년 새로운 행정체제의 출범이라는 일정까지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진일보 한 것이기도 하다. 어떻든 새누리당의 유력 후보 중 한 사람이 행정시 문제에 대해 이렇게 세세하게 입장을 표했다는 것은, 그만큼 행정시 문제가 내년도 지방선거에서 또 한 번 쟁점이 될 것임을 예고해 주고 있다.

  여기서 행정체제 개편과 관련하여 주목할 것은 2012년 12월 제주도의회가 제시한 이른바 ‘행정시장 권한·기능 강화 후 행정체제 개편 추진’이 갖는 의미이다. 제주도의회의 안은 A 입장과 B 입장의 절충이기에 나름 도의회에서 다양한 입장의 도의원들 사이에서 합의가 그만큼 용이한 것이었다.

또한 도의회 안은 내년 지방선거 이전에 우근민 도정에 대해 행정시에 대한 불만(대표적으로 행정시장의 예산편성권 및 인사권 부족)을 조금이라도 개선해 나가도록 촉구했다는 점에서 실용성도 큰 것이었다. 실제로 이에 발맞춰 행정시장의 권·기능을 강화하려는 우 도정의 개선 노력도 대표적으로 기존의 5급 이하에서 4급 이하에 대한 승진·임용·전보 등의 인사권을 행정시장에 부여하는 등 부분적으로 진척되어 나갔다.

  다만 도의회가 제시한 또 하나의 절충안은 어떻든 행정시 개편 등을 포함하여 제주도 행정체제를 어떻게든 변화시켜야 한다는 B 입장의 광범한 도민사회의 요구를 충족시키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도 제주도의회의 안을 따라가게 되면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기존의 제왕적 도지사를 그대로 존치시키면서 부분적으로 보완된 행정시장 체제를 그대로 답습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제주도의회가 2012년 12월에 제언했던 ‘행정시장 권한 강화 이후 행정체제 개편’이라는 단계적 접근을 넘어서서 2013년 8월의 시점에서는 ‘행정시장 권한 강화와 행정시장 직선의 동시적 추진’으로 한 발작 더 나아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대략 50%에 달하는 B 입장의 도민들이 한 가지 생각만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도의회 입지 선택이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니다. 앞에서 제시한 것처럼 B 입장은 크게 기초자치단체 부활이라는 B-1과 행정시장 직선이라는 B-2로 나뉘기 때문이다.

당연히 B-1과 관련하여 중앙정부가 7년 전 제주특별자치도를 만들면서 제주에 이양했던 다양한 특례--그러나 제주도민들에게는 다양한 특별자치 특례가 무엇인지 여전히 피부로 와 닿지 않다는 데에 특별자치의 가장 큰 문제가 존재한다--등 제주특별법의 입법 취지를 그대로 존중해 주면서 법인격을 갖는 기초자치단체 회복을 허용해 준다면 도민들로서는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 박근혜 정부가 순순하게 B-1을 허용해 줄 것인지가 의문이거니와 또 이러한 최대주의적 접근에 대해 무소속의 도지사가 중앙정부 누구의 협조를 얻어 이를 적극 추진할 것인지는 지난 3년에 걸쳐 별 의사가 없음을 보여준 바 있다.

그렇다고 다양한 입장의 도의원들을 추수리면서 B-1을 적극 추진해 나갈 박희수 도의장의 의지도 얼마나 될 지 의문시 된다. 더욱이 시간이 없다. 우근민 도정이 질질 시간을 끌다보니 최대주의적 접근이 어려워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우 도정을 비판하면서 최소주의적 접근을 포기하는 것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우근민 지사가 B-1이라는 최대주의적 접근과 관련해서는 2010년 5월 도민토론회에서 ‘특별법 정신에 기초한 기초자치단체 부활을’을 공약으로 내건 바 있지만, 그 골자는 ‘단체장은 직선으로 뽑고...기초의회는 두지 않는’는 데 있었다.

즉 기초자치단체 부활을 공약으로 언명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특별법 정신에 기초할 것으로 전제를 달았기 때문에 사실상 B-2인 ‘기초의회를 두지 않는 행정시장 직선제’를 공약한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우근민 지사가 자신의 공약인 행정시장 직선만 추진하는 것에 대해 아쉬움이 크지만, 그렇다고 자신의 공약에 충실하는 것에 대해 크게 나무랄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필자는 2018년 8월의 시점에서 연말까지 우근민 지사가 행정시장 직선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서 일단 2014년 지방선거에서는 4년 임기 하에 안정된 시정을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두 행정시장 직선제를 도입하도록 하면 어떤가 하는 입장이다.

이어 2014년 6월 지방선거에서는 지사후보들이 기초의회까지 부활하는 문제를 놓고 의견을 개진하도록 하는 동시에 2014년 6월 이후에는 도민이 직접 선출한 행정시장들이 자치시장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주어진 권한 내에서 임명제 행정시장과는 다른 책임감을 갖고 도민밀착 행정을 펴나갈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해 주는 것은 어떤가.

 

▲ 양길현 제주대 교수/ 제주내일포럼 공동대표

  아쉽기는 하지만 도민이 뽑은 4년 임기의 행정시장을 통해 그리고 4년 임기보장이라는 제도의 정치적 효과를 통해 제주특별자치도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된 행정체제로 거듭나길 바라는 마음이다.

그 다음의 여러 쟁점들(예를 들면 행정시 구역을 몇 개로 할지 등)은 그 다음의 백화쟁명 논의에 맡기기로 하고, 쉬운 것부터 최소주의적으로 하나하나 차근차근 접근해 해 보면 어떤지 하는 생각이다. / 양길현(제주대 교수·제주내일포럼 공동대표)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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