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승주 칼럼> 지하수 증산 객관적 기준 마련해야

 최근 월동채소의 원활한 운송을 위해 한진그룹에 지하수 증산을 허용하고, 그 반대급부로 대형 항공기 투입 약속을 받아내는 소위 ‘빅딜(big deal)’안을 제주자치도가 의도를 갖고 만지작거리자 지역 시민단체들과 정치권이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며 당장 폐기 조치할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더 나아가 이들은 한진그룹의 그간의 행태를 비판하고 자신의 잇속만 챙긴 한진그룹이 제주도민을 위해 기여한 바가 뭐냐는 본질적 질문을 던지면서 한진그룹에 지하수 취수량의 증산을 허용하는 것은 도민의 정서에 크게 반하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나섰다. 

사실 한진그룹에 지하수 취수량 증산을 허용하는 문제와 관련한 논란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잊을만하면 터져 나오고 있다. 그렇다고 제주자치도나 도의회가 도민 대다수의 심사를 편안하게 할 수 있는 뾰족한 대안을 제시하여 한진그룹의 지하수 취수량 증산분란을 진정시키는 기능적 모범을 도민에게 정중히 보여준 적도 없다.

제주자치도와 도의회의 이 사안을 보는 속 다른 모양새도 가감 없이 드러나고 했다. 말하자면 사태가 심각해질 때마다 옥신각신 하며 지역 언론의 논조를 달구는 메뉴가 되었다가 사라질 뿐이다.

특히 최근에는 제주개발공사가 삼다수 판로 확장 등의 명분을 내세워 증산허용을 요구하고 이에 제주도정이 제주개발공사의 입장을 존중하여 무제한적으로 허용되는 소위 특혜적으로 증산이 허용되는 듯한 상황이 드러나면서 한진그룹 지하수 취수량 증산에 대한 논란 또한 그 도를 더하고 있다.

그럼에도 제주자치도나 도의회는 한진그룹에 대한 민원을 처리함에 있어 누구에게나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사전에 만들어진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기준’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 기준을 적용하여 증산여부에 대한 단안을 내려야 하는 상황에서도 법제도를 벗어난 지역정서를 넌지시 제시하며 증산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식의 속수무책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이런 제주자치도의 행정행태나 도의회의 정치적ㆍ입법적 행태는 제주행정의 속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는 외지인이나 출향하여 경향각지에서 기거해 왔던 출향도민으로 하여금 제주자치도정이 과연 정상적인지를 우려케 하고 있다. 특히 행정의 경우 특정 민원을 수리하거나 반려할 경우 그 적법ㆍ유효요건이 무엇인지를 민원인에게 확실히 주지시키는 투명 행정ㆍ열린 행정의 본분을 망각하는 듯한 인상을 심어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한진그룹의 지하수 취수량 증산에 대한 민원을 처리할 경우 그것을 적법 유효하게 하는 요건은 무엇인가?

아마도 제주지하수의 유지관리 보전을 위하여 만들어졌고 이에 대한 권한 행사를 정하고 있는 규범에 따라 도의회의 동의를 얻어 권한 있는 자가 일반적인 기준에 따라 취수량의 증산허용하거나 허용하지 않는 결정한 후에 이를 민원인에게 일정기간 내에 알려주었다면 그 민원처리의 적법 유효요건은 충족된다고 할 것이다.

예컨대 호텔건축 허가를 신청한 민원인에게 행정을 대신하여 건축지 인근 공원에 미화사업을 잘 마무리해주면 호텔건축 허가를 내주겠다고 하는 것과 같이, 행정이 어떤 민원을 처리하고자 하는 경우 상대방에게 그 민원처리와 관련이 없는 반대급부 또는 부담의 제공을 조건으로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은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말하자면 어떤 행정처분을 특정인에게 내려야 하는 경우 이른바 ‘부당 결부 금지 원칙’이 항상 고려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런 점에서 제주도지사가 한진그룹에 지하수 취수량 증산여부를 결정하는 경우에도 지하수 취수량 증산과 관련이 없는 반대급부, 즉 ‘제주농민의 월동 채소류의 육지부 등으로의 신속한 반출을 위한 항공편 편이보장’을 조건부 제시하는 것은 자제되어야 함이 백번 옳다. 설령 한진그룹에서 그런 의사를 표시할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를 덥석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려는 행정 행태는 투명행정 열린 행정의 차원에서 문제 있는 것이라 할 것이다.

그래서 반대급부 제공이 지하수 취수량 증산 이익을 얻게 되는 한진그룹의 자발적인 조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상식 있는 제주자치도정이라면 법치행정의 도를 벗어나 도민정서에 기대어서 반대급부에 의한 증산논의를 공론화 하려는 처사는 어느 모로 보나 옳은 행정의 모범은 아니다.

차라리 우근민 도지사가 공공재인 제주지하수의 취수량 증산허용 여부를 결정하는 경우 유용하게 인용할 수 있는 객관적이고 합리적 기준을 마련하는 소위 T/F팀을 구성하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드리고 싶다.

물론 지하수 취수량 증산을 허용하고, 월동채소 수송을 원활히 하겠다는 제주도정의 충정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음이 있다. 문제는 특히 이런 잘못된 행정 행태가 제주도정의 일그러진 행정관행이 될 우려가 크고, 한진그룹이나 제주개발공사의 지하수 취수량 증산논란은 앞으로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애월ㆍ한경ㆍ대정 지역 등의 3천여 농가에서 겨울철 성수기에 출하되는 64만톤에 이르는 쪽파, 브로콜린, 취나물, 풋나물 등의 수송대책은 어떠하여야 하는가?

3천여 농가의 생업소득과 직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대책수립 또한 전혀 간단한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과 같은 임시방편적으로 제주자치도가 항공사와 빅딜하는 수준의 안이한 미봉책을 제시하여 농민들로부터 환심을 사고자 것을 대책이라고 강변하는 것 또한 문제가 있다.

 

▲ 백승주 c&c 국토개발행정연구소장ㆍ고려대 지방자치연구회회장

 늦었지만 되풀이되는 사태를 막을 수 있는 장기대책을 수립하여 농민들에게 제시함으로써 이들이 도정을 믿고 경쟁력 있는 영농에 매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 본질적 대안이다.

차제에 상대적으로 경쟁력 있는 청정 제주의 1차 산물들의 수송체계를 전략적으로 구축해 나갔으면 한다. 더 나아가 서울지역 등 육지부는 물론 배후시장인 중국이나 일본에 적기에 수출될 수 있는 항공운송로 개척에도 최선을 다했으면 한다. /백승주 c&c 국토개발행정연구소장ㆍ고려대 지방자치연구회회장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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