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월 1일 문예회관에서 있었던 제주 시립 교향악단의 62회 연주회는 특별히 음악적 의미가 있는 자리였다. 이날 제주 시향은 현대 한국 음악을 이끌어 갈 4명의 한국 작곡가의 곡을 연주했다. 물론 초연은 아니라지만 국내에서 두어 번째로 연주되는 자리였고 좋은 협연자와 친절한 해설까지 곁들여 진행된 음악회는 이날 객석이 반은 비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유료 음악회보다 연주자와 객석이 음악적 교감을 함께 나눌 수 있었던 좋은 음악회였다.

다만 안타까운 점은 얼마 전 있었던 정명훈 과 동경필하모니 연주회 때는 거금을 내고도 문예회관을 꽉 채웠던 관객이 이렇게 괜찮은 연주회에 나타나질 않고 어디로 갔느냐는 것이다. 이런 양태가 어쩌면 제주 문화 저변의 현주소를 말해주는 것 같아 조금은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바보상자도 가끔씩은 보탬이 되는 경우가 있다.
얼마 전 텔레비전을 보다가 쓸 만한 프로그램을 두 편이나 건졌다.

하나는 보육시설에서 학교를 다니는 어떤 고등학생에 대한 다큐였다.
어린 시절 도박에 중독된 어머니와 해체된 가정에서 받은 마음의 상처로 인해서 향방을 잃고 헤매던 아이가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접한 사물놀이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맛보게 되었고 이로 인해 가출을 거듭하던 문제아에서 장래 사물놀이의 일인자를 꿈꾸는 연주가로 거듭난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한때 도박 중독으로 가족들이 집을 못 나가게 하자 엄마가 자신의 손등을 칼로 긋고 그 치료를 핑계로 집을 나가 도박을 했다는 사실을 이 아이는 아직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일이 자신의 삶을 비트는 상처로 남아 있지 않은 것은 이제 인생에 목표가 생겼다는 점도 있겠지만 그간 음악이 이 아이의 상한 마음을 치료해 사람과 사회에 대해 맺었던 한을 풀어주고 그 관계를 회복 시켜 주었다는 것이다.

이런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또 다른 프로그램은 외국의 경우긴 하지만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예술 프로그램을 정부의 지원으로 시행하고 있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예술이 아이들의 정서 함양과 아이들과 그 아이들이 살아가야 갈 미래 사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철학을 가지고 미술 음악 영화 문학 사진 등과 관련된 프로 예술가들을 참여시켜 가장 경제적으로 어려운 지역의 학교를 골라 이런 문화를 접해 볼 기회가 없는 아이들에게 연주를 보여주기고 하고 원하는 아이들에는 악기를 가르쳐 주고 미술 작업에 참여시키기도 하고 자기의 생각을 글로 표현하게도 하며서 주눅 들어 있는 아이들의 내면에 숨어 있는 표현력과 창의력을 이끌어 내고 자신감을 갖게 하는 프로젝트가 정말 인상적이었다.

이런 작업을 통해 경제적으로 어려운 예술가들에게 일과 가르치는 보람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런 일은 자기 예술을 알리고 궁극적으로 예술 문화의 저변을 만들어 나가는 길임을 보여 주었고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쩌면 미래의 삶이 암울해만 보이는 할렘 가 아이들에게 생기와 미래에 대한 희망을 불어넣어 사회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기 십상인 이들에게 밝은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해 주었다는 점일 것이다.

이 프로를 보면서 우리 아이들 생각이 났다.

입시에 눌려 그나마 있는 공교육 과정의 예술 교육도 우선순위에서 저 뒤로 떠밀려 있고 예술 교육의 질은 고사하고 때로 정규 음악 미술 시간마저도 영어 수학으로 메꾸어지는 경우를 보면 과연 우리 공교육의 지향점이 어디인지 묻고 싶어진다.

이제라도 우리 사회에 미칠 문화와 예술의 중요성을 조금이라고 깨닫는다면 좀 비용이 들더라도 제주에서도 시골학교는 물론이고 초 중등학교의 예술을 접할 기회가 적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예술가들이 직접 찾아가 보여 주고 가르치는 예술 교육 프로젝트를 교육청과 지자체 그리고 제주의 각 분야 전문 예술인 들이 함께 도모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는 아무리 좋은 연주회와 미술 전람회가 있어도 관객을 채우기 힘든 피폐한 제주의 문화 토양을 일구는 일이 될 수 도 있고 문화 예술의 저변 인구를 확보하는 미래를 위한 투자가 될 수 있을 것이며 제주 사회의 문화적 감성 지수를 높이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일을 통해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예술가들의 생계에 조금이라도 보탬이 된다면 일석이조가 아니겠는가.

물론 비용이야 좀 들겠지만 먼저 제주 시향이나 시립 합창단이 주축이 되어 일회성의 연주회가 아니라 분교나 소외지역 학교를 대상으로 단원들을 파견하여 보여주고 가르치고 연주회에 초빙하는 과정들을 통하여 이들에게 음악을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면서 미래의 관객을 만들어 나간다면 연주회의 관객 부족 현상은 그리 오래가지 않을 것으로 보여 진다.

이제 예술이 호사가의 유희나 취미로 생각되는 시대는 지났다.
사람의 심성을 변화 시키는 데도 그리고 삶의 질을 결정하는데 있어서도 문화 예술이 중요한 부분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문화 예술적인 안목 없이는 이제 기능과 아름다움을 갖춘 품위 있는 도시 건축도 불가능할 것이고 아무리 많은 물건을 만들어도 디자인이 따라주지 않으면 팔리지 않는 세상이다.
그러므로 지역 사회와 국가 차원에서도 문화 예술을 전략적 산업의 하나로 접근하고 관련 인재를 키우고 이용해야 하는 것은 경제적인 관점에서도 필수적인 일이 되었다.

더더욱 질 높은 관광객을 유치해야하고 관광지로서 국제적인 경쟁력을 가져야하는 제주로서는 문화 예술에의 투자가 어느 분야보다 시급하고
미래 지향적인 있는 베팅으로 생각되어서 하는 말이다.


이 글은 오늘자 한라일보에도 같이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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