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조로의 끝자락, 눈 덮힌 수망리 마을

일주일이 넘게 눈이 내려 맑은 날씨를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주에서 이렇게 추운 날씨를 장기간 경험하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닙니다. 미처 수확을 마치지 못해 나무에 남아 있는 귤들이 걱정되어서 17일 토요일 남는 시간을 이용해 농원으로 가보기로 했습니다.

도로가 정상적인 상황이라면 제가 살고 있는 제주시에서 위미의 농원까지는 차를 운전해서 40분 정도 소요됩니다. 하지만 도로에 눈이 많이 내려 소형차량 소통이 통제되고 있었습니다. 오늘은 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조로 버스를 타고 갔습니다. 남조로는 남원읍과 조천읍을 연결하는 도로입니다.

아침에 버스를 타고 가다 보니 차도에 눈이 많이 쌓여 있고, 길이 얼어 붙어 있는데 소형차량 운전자들이 체인도 없이 그냥 다니다가 차도에 차를 세워 놓고 오도 가도 못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남조로 검문소 입구에는 체인을 설치하라는 경찰관들의 지시에 따라 한꺼번에 많은 운전자들이 길가에 차를 세우는 바람에 차도가 꽉 막혀 버렸습니다.

▲ 체인을 장착하기 위해 한꺼번에 많은 차들이 도로에 차를 세우는 바람에 나조로 입구에 차량 소통이 잠시 마비됐습니다.
남조로 길은 수망리에서 끝납니다. 남원읍의 대표적인 중산간 마을인 수망리에는 눈이 내려서 조용하고 아늑한 경관을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위미에 도착하기 전에 수망리에 다다르자 잠시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수망리(水望里)라는 지명은 예로부터 물이 귀하여 물을 바란다는 뜻에서 지어졌다고 합니다. 검은 돌담 위에 눈이 쌓여서 흑백의 대비를 연출하고 있었습니다.

▲ 현무암으로 된 검은색 돌담 위에 눈이 하얗게 쌓였습니다.
제주에서는 길가에서 마당까지 들어오는 통로를 '올래'라고 합니다. 지금은 큰 도로에 접하는 집을 가치 있게 쳐 주지만 과거에는 '올래'의 길이가 그 집의 가세를 상징했습니다. 이 집의 긴 올래에 눈이 소복이 쌓였습니다. 우리 어릴 적에는 눈 내린 아침에 사람이 걸어 보지 않은 올래의 눈으로 눈사람을 만드는 것이 여간 즐거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 올래 위에도 눈이 소복이 쌓였습니다.
제주에서는 텃밭을 '우영'이라고 합니다. 남원읍에는 대부분의 집집마다 우영에 귤나무가 심어져 있습니다. 이 집 주인이 미처 수확하지 못한 사이 우영의 귤들이 눈을 맞고 있었습니다.

▲ 남원읍의 대부분 농가에는 이렇게 우영텃밭이 있는데, 거기에 주로 귤 나무를 심습니다.
아직도 미처 수확을 마치지 못한 과수원들이 여러 곳에서 볼수 있었습니다. 이 과수원의 주인은 아마 이런 매서운 추위에 눈을 맞고 있는 귤들을 바라보며 날씨보다 더 시린 가슴앓이를 하고 계실 겁니다.

▲ 미처 수확을 마치지 못한 과수원에는 귤들이 눈을 맞고 있습니다.

눈이 가져다주는 평화로운 느낌은 충분히 경험했으니 올해는 더 이상 눈이 내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장태욱 시민기자는 제주시내에서 '장선생수학과학교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오마이 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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