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호 칼럼] 행정체제개편을 지켜보면서

필자는 정당의 대변인 노릇을 약 6년간 했었다. 필자의 직함은 ‘XXX당 제주도지부 대변인’이었다. 그런데 그 직함은 약 3년 후 ‘XXX당 제주도당 대변인’으로 바뀐다. 지역정당의 명칭이 ‘도지부’에서 ‘도당’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 명칭변경에 필자는 상당히 고무되었었다. 지역정당 대변인으로써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때가 도래되었다는 반가움에서였다.

‘도지부’라고 불리는 지역정당은 역할과 기능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중앙당의 연락사무소, 잘해야 지역여론의 수집처 그 이상의 기능을 발휘한다는 것은 무리인 것이다.

따라서 도당으로의 명칭변경은 결코 간과해서는 아니 될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독립된 정당으로써의 역할과 기능의 부여’가 그 의미이기 때문이다.

지역정당의 관계자들이 그러한 의미를 간과하거나 혹은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면, 그들의 정당인식, 나아가 정치의식을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할 것이다.    

‘도당’은 독립된 정당으로써 중앙당의 정강 및 정책에 반(反)하지 않는 범위에서 지역실정에 맞는 정책을 수립해야하고, 지역주민의 정서에 부합하는 정강을 채택하여야 한다. 그리고 지역주민의 의사를 지방정치에 녹여들게 해야 한다.

그럼에도 ‘도당’이 ‘도지부’시절처럼 중앙당의 연락사무소 역할을 하거나 ‘제주지역 여론동향 보고서’ 같은 문건을 올리기만 하고 태평스럽게 앉아 있다면, 그 도당은 선거철에만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선거정당’ 혹은 리모컨에 작동하는 ‘로봇정당’ 이라는 오명(汚名)을 뒤집어써도 억울할 게 조금도 없다. ‘프랜차이즈정당’ 이라는 명칭조차도 그 당에는 과분하다.

그렇다면, 제주지역의 도당들은 어떤가? 특히 국회에서도 도의회에서도 제1당 제2당을 다투는 두 거대 정당의 도당은 어떤가? 이 물음에 필자가 답한다면, “프랜차이즈정당이라는 평가도 아깝다.”는 것이다. 프랜차이즈 가맹점은 최소한 영업권과 이윤추구권이라는 독립권을 지니고 있는데 비하여 제주지역의 두 도당은 임시직 여직원의 채용권한 이외에 독립적으로 휘두를 권한이 없기 때문이며, 도당 관계자들이 임시직 여직원 인사권 이외의 권한을 가지려고 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현안으로 떠오르는 ‘행정체제개편’에 대한 두 도당의 대응을 그들 도당의 현주소를 가늠하는 예(例)로 들어보자.

‘제주도행정체제개편’ 문제가 현안이 되어버린 이유는 지금의 행정체재에 지속성이 담보되어 있지 못한 탓일 것이다. 그 탓이야 어떻든 현안이 된 이상 어떤 형태로든 다루어야 할 문제인 것만큼은 틀림없다. 

‘제주도행정체제개편’은 초등학교 반장선거에서 나올법한 ‘부반장을 여러 명 두고 역할을 맞기겠습니다.’ 하는 공약처럼 그런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제주도민의 삶의 질과 직결되어 있는 중대한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두 도당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제주도행정체제에 있어 두 가지 안이 현재 논의 되고 있는 중이다. 그 한 가지는 ‘시장만 시민투표로 뽑아 현재의 행정시장 역할을 맡기자’는 것이며, 나머지 한 가지는 ‘시장은 물론 시의원도 뽑아 시의회를 구성하여 시를 법인격으로 하자’는 것이다. 둘 다 합리성과 명분을 갖추고 있으며, 또한 결함도 가지고 있다. 그런 만큼 논의에 논의를 거치고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이상적인 안을 도출해야 한다.

그런데 두 도당은 이 논의의 장(場) 밖에 위치해 있다. 두 도당은 이 문제에 있어서 방관자이자 이방인인 것이다. 왜 그럴까? 답은 간단하다. 정책이 없기 때문이다.

몇 년 전 개편한 행정체재에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역행’ ‘도민의 투표권 박탈’ 등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두 도당은 그 즈음에 제주도행정체제에 대한 확고한 정책을 수립했어야 했다. 그럼으로써 작금의 논의에 명쾌한 목소리를 발(發)해야 하는 것이다.

이 글을 읽은 도당 관계자는 볼멘소리를 할 것이다. ‘무슨 소리하는 거야. 도지사의 졸속 추진을 비판했는데’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 볼멘소리는 논의의 주체가 하는 말이 아니다. 노름판 개평꾼들이나 하는 소리다. 이 문제의 논의 주체는 정책을 가지고 말해야 한다.

▲ 정경호 전 제주도의원. ⓒ제주의소리

또한, 도당 관계자는 이런 해명을 할 것이다. ‘우리 도의원들 견해가 각기 달라서 당론을 정할 수 없다’라고. 그러나 혹자가 ‘당론도 모으지 못하는 정당, 그것도 정당이야!’라고 힐책을 한다면, 그들은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정경호 전 제주도의원

<제주의소리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저작권자 © 제주의소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