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후 칼럼> ‘지속 가능한 여행’으로 '여행(Travel)'의 의미와 가치 되찾기

올 여름의 날씨는 표현할 말을 새로 찾아야 할 정도로 유난하다. 남부지방의 가뭄은 극심하다. 55일 동안 거의 비가 오지 않은 제주도는 중산간 마을에 격일제 급수를 실시 중이다.  농작물 피해는 너무 커서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달라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가을이 여름을 밀어내고 있지만 속도가 더디다. 새벽의 서늘한 기운과 익어가는 나무 열매에서 지긋지긋한 여름이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학생들의 여름 방학과 겹친 휴가철에 많은 사람들은 더위를 피해 국내외로 여행을 다녀왔다. 현대인에게 여행은 삶의 중요한 일부로써 누구나 여행을 꿈꾼다. 여행은 심신에 여유를 주고,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하고, 새로운 세상을 만나 지혜를 얻고, 행복한 감정을 얻는 기회다. 여행의 추억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잊혀지거나 오래도록 인생의 앞길을 밝혀주는 등대가 된다.

근대가 열리기 전에 유럽인들은 여행을 세계인이 되는 길로 여겼다. 사람들은 새로운 세상을 만나면 상상력을 발휘하여 역사를 변화시킬 아이디어를 발견하고 신시대를 열어나갔다. 르네상스, 새로운 항로의 개척, 신대륙 발견과 식민지 침탈, 계몽주의 시대의 개막 등 유럽의 근대화는 여행이 촉매 역할을 했다.

역사적 고전인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찰스 다윈의 <진화론>,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과 이븐 바투타의 <여행기>는 여행의 결과물이다. 러시아의 국부로 숭앙되고 있는 표트르 대제는 젊은 시절 유럽을 여행하고 선진 유럽을 지향하는 담대한 수도 이전과 근대화 계획을 세운바 있다.

현대의 여행은 세속화되고 소비문화의 중요한 축인 관광상품으로 변모했다. 여행(travel)은 원래 문제·일·고통을 뜻하였고, 관광(tour)은 즐긴다는 의미를 가진다. 관광은 굴뚝없는 산업으로 여행사, 호텔, 운송수단, 식문화, 국제회의, 이벤트, 리조트, 테마파크, 카지노, 체험활동이 주축을 이룬다.

여행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내는 탐구 정신은 사라지고 여가 시간을 즐기는 일로 성격이 바뀌었다. 관광의 인기가 커지면서 쾌락을 추구하는 경향도 강해졌다. 대중미디어와 SNS에는 선정적인 관광 콘텐츠가 넘쳐나고 시간을 즐겁게 보내는 비법이 난무한다. 여행기는 새로운 정보와 생각의 기록이 아니라 개인적 감상문이 대부분이다.

관광산업의 경제와 소비 측면만 강조되다 보니 여행의 의미와 가치를 논하는 마당은 찾기 힘들다. 레저산업이 경제성장, 생산유발, 고용창출 등 막대한 효과가 생길거라고 운운하며 믿을 수 없는 수치를 제시한다. 몇천만명 관광객 시대를 앞세우며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관광인프라의 개발에 국민의 세금을 쏟아붓고, 외국자본과 국제경기 유치에 목메달고 있다.휴가철마다 저급한 야외놀이문화 수준을 보여주는 일탈행위도 부각된다. 산·강변·바다의 소란과 쓰레기가 넘치는 데 치우는 사람은 적다거나 관광지에서 쾌락에 도취하여 저지르는 추태를 질타한다.

소비 상품으로 변한 여행은 스트레스에 찌든 사람들에게 단기간에 최대의 만족을 주어야 한다. 관광객은 구경하고 쇼핑하고 먹고 마시고 휴식하면서 즐거운 일만 생기기를 기대한다. 관광은 힐링이라는 상품으로 포장되어 사람들을 유혹한다. 새롭고 낮선 공간으로 이동했음에도 익숙한 소비문화와 편안한 분위기를 버리지 못한다. 여행의 본질인 도전적 모험과 경험, 호기심, 상상력은 오히려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일로 여긴다. 중독성이 강한 향락이 관광의 목표가 되고 있는 것이다.

거대한 공장에서 찍어내는 상품이 된 관광산업을 예전의 여행으로 되돌릴 수는 없지만 관광에 대한 문제의식은 필요하다. 최근 ‘지속 가능한 여행’, ‘착한 여행’, ‘공정 여행’이 확산되고 있다.

쾌락만을 추구하는 관광이 가져온 폐해에 대한 반성으로부터 나온 현상이다. 관광지 주민의 삶과 문화 존중, 관광지 개발에 따른 환경파괴에 대한 대응, 현지 생산제품과 서비스 이용, 과도한 소비 자제와 쓰레기 줄이기가 주요 내용이다. 우리나라도 걷기 열풍이 불면서 여행의 참된 의미를 되찾는 흐름이 생겨나고 있다.

중앙의 대자본이 투자된 호텔, 박물관, 테마파크, 쇼핑몰을 맴돌다 보면 대기업만 살찌운다.낙수효과 없이 지역경제에 피해를 줄 뿐이다. 관광객은 지역 원주민과 교류하고 그들의 문화를 경험할 수 없다. 다양한 지역문화는 상품화될수록 박제화될 가능성이 크다. 문화의 생명인 다양성과 차별화가 사라질 수 있다.

관광의 출발부터 귀가까지 대량으로 물, 전기, 화석연료를 소비하고 쓰레기를 배출하는 일이 다반사가 되었다. 한해 관광객 1천만명이 제주에서 소비하는 자원과 버리는 쓰레기는 상상 이상이다. 관광시설의 무분별한 건설은 골프장과 숙박시설, 테마파크를 짓기 위해 제주의 자연유산인 곶자왈을 마구잡이로 개발한 것처럼 자연환경을 파괴한다. 관광의 결과는 지구온난화를 유발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 권영후 소통기획자. ⓒ제주의소리

주체성을 실현하는 불편하고 위험한 여행을 선택한다면 관광의 허상을 지우고 여행의 진실과 대면할 수 있다. 오늘 즐기는 관광의 문제는 무엇이고  미래에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성찰하는 자세가 ‘지속 가능한 여행’의 출발점이다. ‘불편한 여행’이 정착되면 풀뿌리 경제를 살리고, 인간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촉발하는 기제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 권영후 소통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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