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근대건축 산책] (17) 전란기의 제주와 주거 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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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삼안식(三安式)주택

공공기관에 의한 주택공급 이외에 개인에 의한 주택이 건축되기도 하였다. 그 중 하나가 당시 제주에서 선교활동을 하였던 J.P 맥그린치 신부(이시돌 성당)이 지은 삼안식(三安式)주택이다.

▲ 이시돌 농업기술연구원 및 차량종합지원 정비공장 낙성식의 장면이다. 사진의 왼쪽 뒤편에 공장으로 추측되는 삼안식 건축물이 보인다. (사진 왼쪽에서 네 번째가 J.P 맥그린치 신부다.)

삼안식(三安式)주택은 이시도레식 주택이라고도 불려졌다. 건설된 주택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던 것 같으며, 현재 이시돌 목장에 몇 호 남아있으나 거의 폐허형태로 남아 있어 적절한 관리가 절실히 필요한 상태이다.

1970년 10월 15일 이시돌 목장에서 거행된 이시돌 농업기술연구원 및 차량종합지원 정비공장 낙성식을 보면, 사진의 왼쪽 뒤편에 공장으로 추측되는 삼안식 건축물이 보인다. 그 당시 새로운 건축물로 적극적으로 도입 활용되었음을 짐작하게 하며 이외에도 양돈장등으로도 건축되어 사용되었다.

▲ 이시돌 목장에 돼지 사육을 위해 조성된 양돈장 전경. 중앙부분에 삼안식 건축물이 보인다. (출처=제주특별자치도(2009) 사진으로 보는 제주역사1, 도서출판각)

그러나 이시돌 목장 이외에도 금능공소가 삼안식 주택과 같고 제1횡단도로 건설현장 사진 삼안식 주택 형식을 볼 수 있어 다양하게 사용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삼안식 주택의 구조는 물결모양의 아치(arch)가 연속된 형태의 쉘 지붕이다. 내부에 기둥이 없어 넓은 평면을 구성할 수 있어서 주택뿐 만 아니라 군용 막사나 교회 등에도 사용되었다.

▲ 제1횡단도로 건설현장모습. 우측에 삼안식 주택과 같은 건조물이 보인다. 사무실 혹은숙소 등으로 이용했을것으로 추측된다. (출처=제주특별자치도(2009) 사진으로 보는 제주역사1, 도서출판각)

대한주택공사가 1962년에 저렴한 주택의 대량건설을 위하여 건축자재의 규격화 방안과 조립식주택에 대한 연구를 하였다. 그 중의 하나가 삼안식 주택(B형 주택으로 명칭)이었다. 삼안식 주택은 각재 및 평철을 기본구조로 하였으며, 합판대신 삼베나 가마니 등으로 거푸집을 만들어 구조체를 제작하기 때문에 공법이 간단하고 특수기능공이 필요 없고 목재가 절약되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균열이 발생하기 쉽고, 단열이 되지 않으며 곡면으로 인하여 창문위치가 제한되어 채광과 환기면적이 적은 것이 단점으로 지적되어 도입 개발되지 못하였다.

▲ 삼안식 구조물의 시공 장면. (출처=The Institution of Civil Engineers, 1953)
▲ 주택공사가 검토하였던 삼안식 주택. (출처=대한주택공사(1979), 대한주택공사20년사)

현재 이시돌에 남아 있는 남아 있는 삼안식 주택의 평면구조를 보면, 1세대용 주택과 2세대용 주택, 2종류가 건축된 것으로 보인다. 대한주택공사가 검토하였던 삼안식 주택(B형주택)은 건축물의 측면 즉 단변 방향으로 출입하게 되어 있다. 현재 이시돌 목장에 남아 있는 텍스트하우스의 외관과 평면을 보면 건축물의 장변 방향으로 출입하게 돼 있어 여건에 맞게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1세대용 주택은 방 3개와 부엌이 있고 현관을 중심으로 각 방에 직접 진입하도록 되어 있다. 2세대용 주택은 방 1개와 부엌, 그리고 거실 겸 방으로 사용할 수 있는 평면구조로 되어 있다.

▲ 1세대용 삼안식주택 외관. (이시돌 소재) ⓒ김태일
▲ 1세대용 삼안식 주택의 평면 및 내부모습. ⓒ김태일
▲ 2세대용 삼안식 주택 평면.

해방 이후의 1950년대와 1960대 제주 사회의 모습과 주택에 대한 기록이나 연구는 거의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미약하나마 50년대와 60년대의 사회변화 과정 속에서 발생한 주택들은, 근대 주택에 대한 기초적인 연구자료의 가치가 있다고 할 것이다.

보다 깊이 있는 제주지역 근대주택의 연구를 위해, 혼란기의 시대적 변화 속에 등장하였던 이들 근대 주택에 대한 다양한 자료수집과 연구가 지속적으로 필요하다.

특히 검토되지 않았던 당시의 관보 등 다양한 행정자료를 중심으로 한 검토가 추가된다면  잊힌 시기라고 할 수 있는 전란기 이후의 1950년대와 1960년대의 근대건축사연구가 보다 폭넓게 다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 주택들이 역사적 연구대상의 가치뿐만 아니라 과거와 현재로 이어지는 삶의 한 부분이자 또한 문화적 계승의 요소로서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역사의 한 부분이다.

무형적이든 유형적이든 ‘제주적’인 유전자들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작은 파편들이 모였을 때 제주역사의 다양성과 정체성을 논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가 구축된다. 그렇기 때문에 옛것, 오래된 것, 때 묻은 것, 많이 남아있지 않은 것들에 대한 가치를 재평가하고 소중하게 다루고 보전하는 것이다. 역사적 산물이라고 할 수 있는 이들 주택에 대한 문화재적 가치를 평가하여 보존과 활용하는 방안도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김태일 제주대 건축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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