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주출신 고양원더스 선수로 2014 프로야구 2차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하는 오두철, 황목치승 선수. <고양원더스 제공>
고양원더스 ‘황목치승-오두철’...부상 이겨내고 신인 드래프트 참가

프로 스포츠 중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는 야구. 제주출신 선수로 강민호(롯데.포수)와 고원준(롯데.포수)이 가장 먼저 떠오르지만 이들 만큼 장래가 촉망받던 숨은 인재들이 있다.

국내 최초 독립야구단인 고양원더스의 동갑내기 황목치승(28.내야수)과 오두철(포수) 선수다. 해외파 출신인 두 선수가 부상 등 악조건을 이겨내고 꿈의 무대인 프로야구 진출에 도전한다.

올해 고양원더스에 입단한 황목치승은 초등학교 5학년이던 12살 제주남초등학교에서 처음으로 야구를 시작했다. 당시 야구부에는 친구인 오두철이 먼저 선수로 뛰고 있었다.

야구에 푹 빠진 두 선수는 야구를 이어가기 위해 육지부 중학교 진학까지 준비했다. 도내 중학교에 야구부가 없었기 때문이다. 졸업을 앞둔 1998년 기적같이 제주제일중에 야구부가 만들어졌다.

제주일중 야구부는 창단 2년간 단 1승도 거두지 못했다. 이듬해 동대문야구장에서 열린 전국대회서 제주일중은 포철중을 상대로 첫승을 올렸다. 기세를 몰아 대회 우승까지 따냈다.

황목치승은 실력을 인정 받아 청소년 국가대표로 아시아 대회까지 참가했다. 고교 스카우트도 있었다.

▲ 무릎 부상을 이겨내고 고양원더스에서 제2의 야구 인생을 시작한 제주출신 황목치승 선수. <고양원더스 제공>
경기를 지켜본 당시 일본 교토한국고등학교(현 국토국제고) 야구부 김건박 감독이 두 선수에게 영입을 제안했다. 도내 고교에 야구부가 없자 두 선수는 과감히 일본행을 선택했다.

창단 3년차인 국토국제고는 우수 선수들을 영입하며 승수를 채웠다. 두 선수가 2학년때 70여개 팀이 참가하는 일본 교토지역 대회에서 16강에 진출했다. 이듬해에는 8강까지 올랐다.

일본 프로야구 진출을 꿈꾸던 두 선수는 대학에서 갈라졌다. 황목치승은 일본 야구 명문인 아세아대학에 스카우트 됐고 오두철은 오사카 판남대학교에서 선수생활을 이어갔다.

오두철은 2학년 때 중퇴한 후 2~3년간 방황하다 현역으로 군대를 다녀왔다. 2011년 야구생활을 이어가려 일본 독립리그 팀에 머물다 그해 9월 귀국 후 고양원더스에 입단했다.

명문 아세아대학에 진학한 황목치승은 1학년때 전지훈련에 참가했다. 90여명의 선수 중 절반만 훈련에 참가할 정도로 문턱이 높았던 시절이다. 그러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훈련 중 유격수로 출전한 황목치승은 땅볼을 받아내 2루 베이스로 향하다 상대 주자의 스파이크에 무릎을 치였다. 인대 2개가 끊어지는 큰 부상이었다. 2번의 수술과 재활이 이어졌다.

▲ 제주출신 고양원더스 선수로 2014 프로야구 2차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하는 오두철, 황목치승 선수. <고양원더스 제공>
2년간의 재활 끝에 3학년에 복귀했지만 수술 후유증으로 기량을 뽐내지 못했다. 일본 프로야구 선수의 꿈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결국 졸업후 사회인야구팀인 ‘세가사미’에 입단했다.

군 입대를 위해 2011년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무릎 부상으로 군 면제 판정이 내려졌다. 이듬해 제주도 사회야구인팀인 ‘삼다수’에서 몸을 만들다 고양원더스의 입단을 결심했다.

황목치승 선수는 “부상을 경험하고 야구를 다시 시작할 때 끝을 보자는 생각을 했다”며 “이제 프로리그에 갈 수 있는 상황까지 왔다. 실력을 쌓아서 프로 1군에서 활약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이어 “(오)두철이 때문에 야구를 시작했는데 일본서 고등학교 졸업 후 헤어지고 다시 고국인 고양원더스에서 만난 줄을 몰랐다. 인연은 인연인 것 같다”고 말했다.

제주에서 첫 야구를 시작한 두 선수는 20년 가까이 품었던 프로야구 선수의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2014 프로야구 2차 신인드래프트에 참가한다.

두 청년의 아름다운 도전의 결과는 26일 오후 2시에 알 수 있다.<제주의소리>

<김정호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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