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절에 가시고, 우린 새로워져야 했다
어머니는 절에 가시고, 우린 새로워져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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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충민의 사람사는 세상] 강충민이 읽은 책,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2

▲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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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니는 절에 들어가시고...

 어머니는 혼자 절에 들어가셨습니다. 어머니의 육촌 동생이 주지스님으로 있던 절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육촌동생이니 저에게는 외삼촌이 되는 분이셨지요. 그 절에는 스님의 부인과 아이들도 있던 것으로 보아 결혼을 허락하는 종파라고 생각이 듭니다. 말하자면 대처승이셨던 게지요. 요양명목으로 가신다고 했지만 친척 어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로는 그 절에서 병을 고친 사람이 여럿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어머니는 절에 들어가셨습니다. 우리나라 최고의 종합병원에서 가망 없다고 했지만, 실낱같은 기대를 품고 말이지요.

 우리는 그렇게 남겨졌습니다. 어머니가 앞이 보이지 않기 시작할 때부터 부엌살림은 조금씩 우리가 하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의 부재는 이제부터 집안일은 우리가 전적으로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했습니다. 누나 둘과 저, 이렇게 남은 넷은 어머니가 절에 들어가신 날부터 새로워져야 했습니다.
 
 차라리 밥하기와 설거지는 나았습니다. 그것도 몇 번 하다 보니 요령이 생기더군요. 저녁에 미리 쌀을 씻어 놓고, 새벽에 눈을 뜨자마자 취사버튼을 눌러 밥을 하고, 없는 반찬이나마 미리 썰어 두고 준비를 하면 훨씬 수월하더군요. 이렇게 남은 우리 넷은 각자의 하루 몫을 충실히 하며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가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리고 교복 자율화였던 그때 엄마 없는 티를 전혀 내지 않으려 옷도 매일같이 빨아 입고, 항상 밝고 명랑하게 보이려 애썼습니다.

#. 새벽마다 이어지던 아버지의 넋두리

 아버지는 처음엔 변화가 거의 없었습니다. 어머니를 절에 보내고 올 때도, 우리가 차려내는 밥상을 받으면서도 예전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외출했다 집에 돌아오는 시간이 늦어지면 우리들은 긴장해야 했습니다. 언제부터인지 아버지는 늦게 술을 마시고 들어오는 날이면, 시간에 상관없이 우리를 깨우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새벽 한 시여도, 세시여도 말이지요.

 아버지의 귀가가 늦어질 때면 ‘아 오늘은 제발 아무 일 없이 넘어갔으면...’ 하고 마음속으로 빌곤 했습니다. 네, 차라리 밥하기와 설거지가 백번 나았습니다.

 그런 바람을 안고 깜빡 잠이 들었을 무렵, 술 마시고 들어온 아버지는 우리들을 서둘러 깨웠습니다. 우리는 졸린 눈을 비비며 방을 마루에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끝도 없이 이어지는 아버지의 넋두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러다 아버지는 눈물, 콧물 범벅에 꺽꺽 울기도 했고 그럴 때면 우리들은 마치 죄인마냥 무릎을 꿇어앉았습니다. 할머니가 열 살 때 돌아가신 이야기, 쇠똥을 줍기 위해 한라산까지 오른 이야기를 들어야 했고 큰 아버지와 셋 아버지가 멀리서 보이면 달려가서 인사해야 한다는 예절강의도 늘 이어지던 것이었습니다. 대체 무슨 연관이 있다고 말이지요.

 한 번은 꼭 아들인 저에게 화살이 향했고, 발은 저려와 몰래 몰래 코에 침을 발랐고 시간이 빨리 가도록 브룩 쉴즈, 피비게이츠, 소피마르소를 생각했습니다. 그래도 시간은 더디 갔습니다. 

 아버지는 낮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품었다가 밤에 다 할 작정인 듯 했습니다. 그렇게 끝없이 이어지다 아버지가 비로소 연이은 하품을 하면 슬그머니 끝이 났습니다. 그러면 비로소 우리는 한 두 시간  채 남지 않은 남은 잠을 마저 잤습니다.

#. 제제를 만나다

 학교는 잘 다녔습니다. 지각 한 번, 결석 한 번 없이 말이지요. 1983년 교복이 없어진 터라 옷을 잘 빨아 갈아입고 다녔고 교련복 체육복도 잘 챙겨서 다녔습니다. 적어도 남들은 제가 겪는 이런 일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뭐 일부러 티낼 일은 아니라 생각했으니까요.

 그렇게 고등학교 1학년이 겨울로 접어들 무렵 제제를 만났습니다. 동네 마을회관의 문고에서 우연히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가 눈에 띄었습니다. 지구 반대편 브라질의 다섯 살의 어린 소년 제제는 시-공간을 뛰어넘어 순식간에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습니다. 제제의 가난에, 천진난만함에 눈물이 흘렀습니다. 아버지를 기쁘게 해 드리려고 거리에서 배운 노래를 하다 아버지에게 혁대로 맞는 부분에서는 한동안은 아예 책을 덮고야 말았습니다. 마음이 아파 잠시 쉬었다 읽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제제를 만났습니다.

 그리고 비로소 찬찬히 제 주위를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끝도 보이지 않는 슬프고 외로운 터널도 지나가리라 막연한 기대도 들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도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도 참 외로울 거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정말 어른이 된다는 것은 밤에만 술기운을 빌어 울어야 하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햇빛 찬란하게 쏟아지는 낮에는 차마 하지 못한 말을 아버지였기 때문에, 어른이었기 때문에, 남자였기 때문에 술의 힘을 빌어서 사라질 어둠의 시간을 이용해 당신도 ‘외롭다, 나도 힘들다’ 하고 있었습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도 똑같이 외로움과 슬픔을 겪는 다는 것, 그리고 그것을 만난다는 것은 굉장한 위안이고 치유였습니다. 나이, 시간, 장소, 나라를 뛰어넘어서 말이지요. 다섯 살 소년 제제에게서 저를 발견했고 주위의 귤나무들은 밍기뉴가 되어 있었습니다.

 
#. 또 다른 제제인 아들...

 이제 저는 마흔 일곱 살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틈틈이 이 책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몇 번이나 다시 읽었습니다. 그때마다 변함없는 그 시절 친구 제제를 만났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저는 아들에게 어른의 잣대로 판단하여 힘들고, 외롭게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정말 그렇게 하냐고 제 자신 스스로 물음을 던지니, 갑자기 자신이 없어지네요.
“왜 아이들은 철이 들어야만 하나요?” 라고 물었던 제제처럼 아들도 철이 들어가며 슬픔과 외로움을 겪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지요. 전 그런 아들에게 뽀루뚜까가 되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들의 관심, 취미를 제제의 아버지처럼 제제가 부른 노래를 “거리에서 배운 외설적인 노래”라고 어른의 잣대로 잘라버리고 있는 지도요.

 저는 그럼 이제 완전히 철이 든 어른이 되어버리고 만 것일까요. /강충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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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글공 2013-09-23 15:25:25
아버님이 외로워서, 속을 터 놓을 데가 없어서, 고민을 토로 하는 것이라는 걸 17세 그 나이에 알 수 있었다면 좋을 텐데 ....
자식들은 시간이 한참 지나 그나이가 되어야 왜 그러셨는지 이해를 하게 되는군요.
다시 제제를 만나러 가야겠어요.
112.***.***.10

수월봉 2013-09-02 08:15:13
항상 느낀건데 이 분의 글 솜씨는 정말 누가 흉내내지 못하겠네요.
슬프고 힘든 시절인데도 마치 소설처럼 묘사하는 것을 보면
원래 글쓰기 재능이 타고나신 분 같습니다.
210.***.***.243

보이지 않는 행간 2013-09-01 16:58:31
명랑하기만 했던 제제가 자라서 지금은 그 어머님을 극진히 모시고 산다는,
감동스런 뒷이야기....
59.***.***.98

2013-08-31 11:27:52
네게 그런 날들이 있었구나,아무것도 몰랐었다. 토닥토닥
218.***.***.191

소피마르소 2013-08-30 13:44:27
브룩쉴즈 피비게이츠 우리가 좋아했던 이름들이네요.
책보다 강기자님에 이야기가 더 가슴아프네요. 잘 읽었습니다.
27.***.***.1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