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병의 제주, 신화] (22) 무조신화 초공본풀이 4

<초공본풀이>의 불도땅 이야기는 자주명왕아기씨가 무조 삼형제를 낳고 기른 이야기다. 불도땅은 삼싱할망이 아기가 어머니의 태에서 나와 15세가 될 때까지 키워주는 곳이다. 그러므로 어린아이를 ‘할망이 지키는 아이’라 한다.

출생부터 어머니의 자궁에서 태어나지 못하고, 어머니의 겨드랑이를 찢고 가슴을 헤치고 세상에 나온 젯부기삼형제는 출생부터 이상하게 태어났으니 불도땅에서 별 탈 없이 자랄 수 있었을까? 보통 아이가 아닌 특별한 아이, '신의 아이'들은 어떻게 자라났을까. 그들은 평범한 민중의 아이도 양반 삼천선비도 아니었다. 젯부기삼형제는 양반집에서 태어났으나 중의 자식이었기 때문에 차별을 받았고, 보통 아이처럼 어머니의 자궁을 해복하여 태어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성장 과정도 신이한 출생 못지않게 ‘팔자 그르친 심방의 길’을 걸어야 했다.

불도땅은 아이들에게는 복잡한 이승과 저승, 성속(聖俗)의 경계점에 있다. 그리고 이곳은 현실세계(俗界)에서 쫓겨난 자주명왕아기씨가 앞으로 태어날 젯부기삼형제를 15세가 될 때까지 훌륭한 심방으로 키워내야 할 곳이다. 무조(巫祖) 초공(初公), 신의 아이 삼형제가 고통과 시련을 겪고 한을 쌓으며, 심신을 단련하는 고행의 도량이다. 이상하게 태어났고, 어렵게 살 팔자를 타고난 아이가 초공 콤플렉스를 극복하여 좋은 심방으로 성장해야 할 곳이다.

불도땅은 아버지가 사는 ‘불(佛)·성(聖)의 세계-저승’에 같이 살 수 없는 어머니가 아이를 ‘무(巫)·속(俗)의 세계-이승’으로 데려가기 위하여, 깊은 산골에 사는 ‘저승의 중’이 아니라 마을에 사는 ‘이승의 심방’으로 아이를 양육하는 교육의 도량이었다.

<초공본풀이>에 의하면, 쫓겨난 자주명왕아기씨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온갖 고난을 견디며 간신히 황금산 도단땅에 이르렀다. 절 문 앞에 이르자 귀 없는 고깔과 자락 없는 장삼이 걸려 있었다. 황금산 도단땅 절을 지키는 대사 주접선생은 아기씨를 보자 인연을 맺은 증거물을 내놓으라고 하였다. 고깔과 장삼 자락을 내놓았다. 다음에는 문제를 내었다. 벼 두 동이를 손톱으로 다 까서 올리라는 것이었다.

자주명왕아기씨는 벼를 손톱으로 까다 지쳐 울다 잠이 들었다. 참새들이 벼를 다 까놓았다. 주접선생은 그때야 아기씨를 인정해 주었다. 그렇지만 중은 부부 살림을 할 수 없으니 불도땅을 찾아가 그곳에서 아이를 낳아야 한다고 말했다. 아기씨는 황금산을 떠나 불도땅을 찾아갔다. 그곳에서 초공 젯부기삼형제를 낳았다.

 

▲ 본명두(요령)·신명두(신칼)·삼명두(산판). ⓒ제주의소리

9월 초여드레 큰아들 ‘본명두’(무점구 요령(搖鈴)을 뜻함)가 태 밖으로 나오려는데, 어머니의 음문(陰門)으로 나오고 싶었으나, 아버지도 아니 보았던 길이라 어머니의 오른쪽 겨드랑이를 허위 뜯어 태어났다. 9월 열 여드레 둘째 아들 ‘신명두’(무점구 신칼(神刀)을 뜻하기도 함)는 차마 그 길로 나올 수 없어 왼쪽 겨드랑이로 태어났다. 9월 스무 여드레 태어난 셋째 아들 ‘살아살축 삼명두’(무점구 산판을 뜻함)는 어머님의 애달픈 가슴을 허위 뜯어 솟아났다. 무조 삼형제가 태어난 음력 9월은 팔자 그르친 심방의 탄신일로 ‘신구월’이라 하였다. 그리고 신구월에 태어난 젯부기삼형제를 무구(巫具)의 조상 ‘삼명두(三明刀)’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불도땅에서 본명두·신명두·삼명두가 태어나 여덟 살 되던 해, 삼형제는 가난하여 서당에 갈 형편이 못되었다. 어머니는 서당 선생님에 부탁하여 맏형은 벼룻물 떠놓는 일, 둘째는 재떨이 청소, 셋째는 방에 불 때는 일을 맡아 하는 대신 어깨 너머로 글공부를 할 수 있게 하였다. ‘부엌에서 제 심부름하는 아이’란 뜻에서 이 삼 형제를 ‘젯부기삼형제’라 불렀다.

삼형제의 공부는 양반 선비들처럼 서당의 정규과정을 통하여 책을 읽고 배운 공부가 아니라 괄시와 천대를 체험하며 어깨너머로 들어서 배운 구전(口傳)의 학식이었다. 체험을 통하여 배우는 심방의 학습은 민중의 고통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는 불교의 세속화, 인본주의 종교로서 대승불교의 맥을 잇는 의미도 있다. 아기씨의 임신은 고통 또는 한을 잉태한 것이라 했다.

▲ 아이를 별 탈 없이 키워달라 기원하는 <수룩춤>. ⓒ제주의소리

인연을 찾아 고해의 바다를 건너 성(聖)의 세계를 찾아온 아기씨를 남편인 주접선생은 중은 부부살림을 하지 않으니, 불도땅에 가서 아이를 낳으라고 했다. 자신이 뿌린 인연을 끊어버린 무정한 성(聖)의 세계는 주접선생으로 대표되는 불교, 소승적 교리를 좇으며, 지켜온 더 이상 세속화 될 수 없는, 민중과 단절된 불교, 깊은 산 속에 매몰되어 신격화되고 관념화 된 불교이다. 오히려 황금산 도단땅에 함께 살 수 없어 쫓겨난 어머니 자주명왕아기씨와 장차 태어날 아이 젯부기삼형제가 훌륭하게 성장해야 할 불도땅은 새로운 가능의 세계이며, 민중의 삶을 배우며 세속으로 가는 도량이었다.

한을 잉태한 어머니가 한을 푸는 곳이며, 어머니의 한 많은 가슴과 겨드랑이를 허위 뜯고 태어난 젯부기삼형제가 다시 한을 심고, 고통을 통하여 심신을 단련할 수 있는 고행의 도량이었다. 다시 말하면 불도땅은 심방이 세속의 세계로 나아가기 위하여 심방[巫] 수업을 하는 곳이며, 아이들이 불법을 수행하는 절을 버리고 나와 중생의 괴로움을 민중 속에 고행하는 세속화의 길이었다. 그러므로 불도땅은 ‘아버지=불교=씨앗(種子)’이 ‘어머니의 한=무속=태’에서 아비 없는 사생아로 태어나 양반들의 천시와 멸시 속에서 양반들처럼 서당에서 정규 수업을 받지는 못했지만, 서당에서 불을 때고 물을 긷는 동안, 귀동냥으로 글소리를 듣고 배워 훌륭한 아이로 성장시키는 교육장이었다.

 

▲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제주의소리

무조신화 <초공본풀이>가 함유하고 있는 상징은 중의 아들이며 심방의 시조 젯부기삼형제의 성장과정을 통하여 숭유억불(崇儒抑佛)하는 사회에서 무속이 불교교화의 또 다른 선택이었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불교의 무속화는 중으로서가 아니라 심방이 되어 속세에 나가 민중의 한을 풀어주는 새로운 교화의 방법이며, 양반사회에서 천대를 받으며 한을 심고, 한을 풀어온 민중의 해원(解寃) 신앙이었다. 그러므로 <초공본풀이>에서 불도땅은 심방이 ‘민중의 한을 푸는 저승법’을 공부하는 학습장이었다. /문무병 시인·민속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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