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숙의 제주신화 이야기] (67) 저승사자 강림신화-강림의 큰부인-

이번 회부터는 저승사자 신화다. 차사본풀이, 차사 신화라고 부를 수 있다. 강림, 강림의 큰부인, 과양생이 처 등의 신이 등장한다. 강림은 집안에도 아홉, 집밖에도 아홉, 열여덟 호첩을 거느리고 산다. 강림의 큰부인은 그의 첫 번째 부인, 큰부인이다.

▲ 많은 인기를 얻었던 주호민의 웹툰 <신과 함께>. 제주신화 중에서 저승사자 이야기인 강림 신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대별왕, 소별왕의 이야기인 천지창조 신화도 보인다. 일본에도 진출했으며 영화 및 드라마로 제작 중이거나 이미 진행 중이다.


옛날 동경국에 버무왕이 살았는데 슬하에 아들 아홉 형제를 두었다. 위로 삼형제 아래로 삼형제가 어느 날, 같은 시각에 죽어버리고 가운데 삼형제만 남았다. 그러자 버무왕은 동문밖에 훌륭한 선생님을 정해 놓고 글공부도 다니게 하면서 어떻게 하면 명이 길어질까, 복이 많아질까 애지중지 지극정성으로 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삼형제는 공부를 마치고 돌아오다가 나무 아래에 책보를 내려놓고 쉬고 있었다.

한편 동개남은중절에서 팔십 정명이었던 대사 스님이 죽으면서 소사 스님에게, 동경국을 내려가면 버무왕의 아들들이 있는데 열다섯 십오 세로 정명이 끝이니, 그 아이들 삼형제를 우리 절에 데려다 법당공양을 시켜 열다섯 십오 세의 명과 복을 이어주고, 너는 대사가 되고 삼형제는 소사로 삼아서 절을 번성시키라고 당부했다.

이에 소사 스님이 동경국을 향해 내려와 걸어가다 마침 삼형제가 쉬고 있는 모양을 보고는  ‘너희들, 생기기는 참 잘 생겼다마는 열다섯 살이 정명이로구나’ 하고 아쉬운 듯 말을 흘리는 척 지나갔다. 삼형제가 집에 돌아와 스님의 말을 아버지에게 전했다.

▲ 주호민의 책 <신과 함께>. 네이버에 연재했던 웹툰을 책으로 엮어 냈다.

“아버님, 어머님. 어찌 우리 삼형제, 명과 복을 짧게 태어나게 하셨습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
“우리 삼형제 나무 아래서 놀고 있더니, 어느 절 대사인지 소사인지, 스님이 지나가다가 우리들 삼형제 얼굴 관상을 보더니 열다섯 십오 세에 정명이 끝이라 일러두고 동북방으로 가 버립디다.”

그 말은 들은 버무왕은 버선발로 달려 나가 스님을 붙잡았다. 

“우리 집 아들 형제들 사주팔자나 봐 주십시오.”
“그럼 그렇게 하십시오.”
“단수육갑 오행팔괘로 점쳐 보니 이 아들들은 사주가 나빠 열다섯 십오 세에 정명이 끝날듯합니다. 인간 세상에서 세 번 죽어 환생을 하여야만 정수를 누릴 운명입니다.”
“스님. 제발 부탁입니다. 남의 설운 자식 명과 복이 떨어질 수를 알고 있으니, 명과 복을 이을 수도 알고 있지 않겠습니까?”
“예. 삼형제가 절로 올라와서 삼년 동안 정성 공양을 하고 있으면 명과 복이 이어질듯 합니다.”


버무왕은 칼로 삼형제 머리를 박박 깎고 중의 차림새로 차려놓고 수화주 세 필, 명주 세 필, 백비단 세 필, 삼삼은 구, 아홉 필을 내어 주고, 은그릇 놋그릇을 내어놓고 정성껏 공양을 마련하였다. 

“아버님아, 계십시오. 어머님아, 잘 살고 계십시오.”

부모 자식 간 눈물로 이별하고 삼형제는 동개남은중절로 올라갔다.


가는 날부터 부처님께 인사드리고 불공을 드리는 것이 달이 지나고 해가 지나고, 삼년이 지났다. 삼년 째 되는 날 법당 밖에 나와 단풍놀이를 하는데, 난데없이 아버님 어머님 생각이 간절해져 대성통곡하며 울다가, 큰 형님이 말을 했다. 

“불쌍한 동생들아, 이렇게 앉아 울어본들 무슨 도리가 있겠느냐. 법당에 들어가 대사님께 말씀드려 아버지 어머니를 찾아뵙고 오는 것이 어쩌겠느냐?”
“그건 그렇게 하십시오.”


법당에 들어가 대사님께 말씀드리니, 대사님은 삼형제가 갖고 왔던 수화주, 명주, 백비단, 은그릇, 놋그릇 값비싼 공양물들을 도로 모두 싸주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이 물건으로 밥은 먹을 수 있을 것이야. 가기는 가라마는, 특히 과양땅을 지날 땐 조심하여 지나가거라. 조심하지 않고 가다가는 우리 법당에 와 삼년 동안 법당 공양한 것이 무공허사가 될 것이야.”


삼형제는 동경국으로 내려갔다. 과양땅을 들어서니 난데없이 시장기가 한없이 몰려와서, 앞으로 한 발자국 가면 뒤로 두 발자국 물러나버리곤 하면서, 도저히 더 앞으로 갈 수가 없었다. 삼형제 나란히 마을 한 쪽 연못에 앉아 물로 주린 배를 채우며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마침 과양생이 처가 물을 길러 왔다.
삼형제는 사람의 인기척을 듣고 물건들을 팔아 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에 소리를 질러댔다.

“은그릇 삽서! 놋그릇 삽서! 비단, 공단 삽서!”

과양생이 처는 삼형제의 좋은 물건들이 욕심이 났다.
“이 동네에는, 먹을 것도 팔고 술도 팔고 쉬다가 가는 주막 같은 건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 집에 가면 술도 있고 쉴 방도 있습니다. 안사랑방도 좋으니 아픈 다리 쉬었다가 내일랑 가십시오.”


먹을 것도 있고 쉴 수도 있다는 말에 과양땅을 조심하라는 대사님의 말씀을 잊어버리고 과양생이 처의 꾐에 넘어갔다. 과양생이 처의 집에 도착한 삼형제는 몸도 피곤하고, 아픈 다리나 쉬게 하려고 사랑방에 들어가 앉았다. 과양생이 처가 통영칠반에 귀한 약주, 저육 안주를 차려 들어왔다.

“도령들, 장사하면서 다니려면 얼마나 고단하겠습니까? 이 술이나 한 잔 들고 푹 주무세요. 이 술 한 잔이면 천 년을 살고, 술 두 잔이면 만 년을 살고, 석 잔을 먹으면 구만 년을 산다고 합니다.”

명과 복이 이어진다고 하는 바람에 삼형제는 석 잔씩 아홉 잔을 나누어 먹었다. 공복에 마신 술이라 담뿍 취하여 삼형제는 동쪽으로도 휘청 서쪽으로도 휘청, 머리 간 데 발 가고, 발 간 데 머리 가고, 동서쪽으로 자빠져 곯아 떨어졌다.


과양생이 처가 한걸음에 고팡(방 뒤에 여러 가지를 보관하는 창고)으로 달려들어 삼년 묵은 참기름을 가져다가 청동화로 숯불에 오송오송 졸여서, 왼 귀로부터 오른 귀로 그것을 소로록 부어가니 삼형제는 구름 산에 얼음 녹듯 어머니 아버지, 말도 못하고 죽어갔다.

과양생이 처는 궤문을 열어놓고 수화주, 명주, 백비단, 은그릇, 놋그릇을 철커덩 들여놓고서는 이 밤 저 밤 사이 개 고양이 잠잘 때, 버무왕 아들 삼형제의 시체를 주천강 연화못에 수중영장시켜 버렸다.


하루 이틀 칠일이 지났다.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해 진 과양생이 처는 주변 거동이나 살피려고 대바구니에 빨래를 담고 주천강 연화못에 빨래하러 가 보았다. 그런데 시체는 보이지 않고 난데없는 삼색꽃이 두둥실 떠 있었다. 앞에 오는 꽃은 벙실벙실 웃는 꽃, 가운데 오는 꽃은 슬프게 우는 꽃, 맨 끝에 오는 꽃은 팥죽 같은 화를 내는 꽃이라고 느껴졌다.


그 모양이 너무 예뻐서, 과양생이의 처는 저 예쁜 꽃을 가지고 싶었다.

“이 꽃아, 저 꽃아, 내가 타고난 꽃이면 내 앞으로 어서 오너라.”

빨래방망이로 물을 앞으로 하올하올 저으니 삼색 꽃이 과양생이 처 앞으로 밀려 왔다. 빨래 바구니에 오독독 꺾어 담고 집으로 가지고 왔다. 그 모양이 하도 예뻐, 앞문에 하나 걸고 뒷문에 하나 걸고 상주기둥 밑에 하나 걸어서, 오가며 보려 하였다.

그런데, 앞문에 건 꽃은 과양생이 처가 마당으로 나올 때마다 앞머리를 박박 매고 뒷머리도 박박 매고, 뒷문에 건 꽃은 과양생이 처가 장독대에 나가고 들어올 때마다 앞머리 뒷머리를 박박 매고, 상주기둥 밑에 건 꽃은 과양생이 처가 밥상을 받을 때마다 앞머리 뒷머리를 박박 매었다.

“이 꽃 저 꽃이 곱기는 곱다마는, 행실이 참으로 괘씸한 꽃이여.”

부화가 치민 과양생이 처는 꽃송이들을 휙 뽑아 화로 불에 던져버렸다.
조금 있다가 뒷집의 청태국 마구할망이 불을 빌러 왔다.

“불이 있는지 없는지 저기 사랑방 청동화로를 헤쳐나 보십시오.”
“과양생이 처야, 불은 없고 예쁜 삼색 구슬만 오골오골 있구나.”
“아이고, 그건 원래 내 구슬입니다.”
“주운 사람이 임자다.”
“그럼 구슬 하나에 쌀 석 되씩 드릴 테니 구슬은 주고 불씨만 가지고 가십시오.” 

청태국 마구할망이 집으로 돌아가자, 과양생이 처는 구슬을 장판에 놓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입에 물고 이리 도골 저리 도골 놀리다가 보니 삼색 구슬이 구름 산에 얼음 녹듯 목 아래로 꼴깍 내려가 버렸다.
하루 이틀 지내는 것이 석 달이 되어가니 과양생이 처에게 태기가 생겼다.


한 날 한 시에 삼형제가 태어나는데 이 삼형제가 범상치 않았다. 기어 다니는 것도 문장이고  걷는 것도 그림이고 우는 것도 글이었다. 일곱 살 나던 해에 삼천서당에 보내니, 선생님이 ‘하늘 천’ 하면 삼형제는 ‘따 지’ 하면서 차차 명장이 되었다. /김정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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