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대학과 지역기업이 ‘동반성장’이라는 목표를 향해 산·학 협력체제를 한층 강화하고 있다. 산업체는 대학으로부터 우수한 글로벌 인재를 제공받고, 대학은 산업체가 요구하는 맞춤형 우수 인재를 취업시키는 상생모델로서 지역대학과 지역기업 간의 네트워크인 ‘가족회사’ 제도가 주목받는 이유다. <제주의소리>가 지난해 ‘산학협력선도전문대학 육성사업’ 전문대학으로 선정된 제주한라대학교와 업무제휴를 맺고 대학 가족회사들을 집중 소개함으로서 지역기업들의 경쟁력 제고는 물론 산학협력 선순환 환경 조성에 힘을 보태고자 한다. <편집자 주>

[제주한라대, 힘내라 가족회사](3) (주)종합건축사사무소 그룹케이 김시범 대표

악수를 나누는 그의 손마디에서 평범하지 않은 묵직함이 전해져 왔다. 현장에서 차곡차곡 굳어진 건축가의 고집스러움, 그리고 단단한 무게감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러나 이야기가 시작되자 연신 묻어 나오는 엷은 미소와 이야기에 점점 속도가 붙을수록 광채를 뿜는 그의 눈동자는 흡사 ‘물 만난 어린아이’의 그것과 같았다. 그건 아마도 이야기의 주제가 ‘건축’이었기 때문이었을 테다.

 

▲ (주)종합건축사사무소 그룹케이의 김시범 대표이사(50). 제주 조천 선흘리 출신인 김 대표의 건축화두는 '자연'이다.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건축사 김시범(50). (주)종합건축사사무소 그룹케이(GPOUPK) 대표이사가 그의 명함에 써진 공식 직함이다.

“건축(建築), 세울 ‘건’ 쌓을 ‘축’. 직역하면 세우고 쌓는 것이 건축인데 집은 세우는 것이 아니라 짓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기자가 먼저 어쭙잖게 주워들은 풍월을 읊었다.

“저도 문지방에 기대어 앉아 마당을 바라볼 수 있는 그런 집을 짓고 싶습니다. 좋은 건축물은 딴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집에 살고 있는 사람이 좋은 집으로 느낀다면 그게 좋은 건축이고, 좋은 집을 지은 겁니다” 밥을 짓고, 농사를 짓고, 시를 짓듯 집도 짓는 것이란다. 

  문지방에 기대 마당 바라볼 수 있는 집 짓고파
 
그가 대학원에서 고건축을 전공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의 건축 철학이 더욱 궁금해졌다. 김 대표가 생각하는 건축의 가치는 무어냐고 물었다. 그의 대답은 “자연 그대로, 자연에 순응”이다.

“한·중·일 삼국 건축은 그 의미와 형태가 다 다릅니다. 중국의 건축은 거대합니다. 인간이 왜소하게 느껴질 만큼 위압감을 주죠. 일본은 자연을 가공해서 집 안으로 오밀조밀하게 끌어들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자연을 자연 그대로 활용하고,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 중국·일본의 건축과 다릅니다”

자연 그대로 활용하고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 우리나라 건축의 핵심이란 말에 문득 전남 해남 대흥사 대웅전에서 봤던 구불구불한 소나무 기둥들이 떠올랐다. 반듯반듯 켜진 배흘림 민흘림 기둥보다도 더 살가운 삐뚤빼뚤한 기둥들에서 김 대표가 말한 자연에 순응하는 우리의 건축을 본적이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제주시 조천읍 선흘리 출신이다. 선흘 곶자왈과 동백동산에서 뛰어놀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때 부산으로 일찌감치 유학을 떠나 경상국립대에서 건축공학을 공부했다. 경상국립대학원 졸업논문 주제가 ‘고건축’이었다. 그의 건축에서 ‘제주다움’과 ‘자연 그대로’가 묻어날 수 있는 건 아마도 그가 아름다운 제주 출신이고, 그의 유년 시절 무대가 선흘 곶자왈과 동백동산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향을 떠나있던 그가 제주도 돌아오는 데는 사반세기가 넘은 26년이 걸렸다. 그때가 2006년이었다. 대학과 대학원을 마치고 서울에서 (주)종합건축사무소 동일건축, (주)희림종합건축사사무소, (주)공간종합건축사사무소 등 이름 난 회사에서 현장과 이론을 더욱 탄탄히 하고 마치 귀소본능처럼 제주로 돌아왔다. 

▲ 김시범 대표가  그룹케이에서 설계했던 프로젝트 작품의 모형을 들고 건축 모티브와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서울 근무 당시, 국립중앙박물관 현상설계에도 참여했고, 그 떠들썩했던 은평뉴타운의 아파트 신축공사의 설계용역에도 참여하는 등 종횡무진 일 속에 파묻혀 살았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엔 이유 없는 허전함이 늘 자리하고 있었다. 그건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었다.

나이 마흔을 훌쩍 넘겨 ‘귀향’을 결정하고 돌아온 그날은 고향 제주가 ‘특별자치도’로 출범한 2006년 7월1일이었다. 

그 스스로 ‘잘 내려왔다. 고향에 나도 뭔가 기여할 수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며 2008년 연말까지 약 2년 반 동안 제주의 모 엔지니어링 회사 건축사사무소의 대표이사로 더부살이를 하다 2009년 1월부터 (주)종합건축사사무소 그룹케이의 대표이사를 맡아 본격적인 홀로서기를 해오고 있다.

 대학과 지역기업 ‘산학협력’ 공동체

도내 업계에선 그룹케이가 최소한 ‘탑 5위’ 안에 드는 회사로 평가 받는다. 회사의 연륜에 비해 짧은 기간 내 괄목 성장한 셈이다. 비결을 묻자 김 대표는 천진난만한 웃음과 함께 “제주 한라대의 도움이 컸다”고 단언한다.

기술개발은 대학과 산업체가 지속적인 산학협력을 꾀할 때 가장 큰 성과를 낸다는 것이 김 대표의 시각이다. 

“저희 회사의 주력분야는 건축설계와 건축감리, 그리고 산업디자인입니다. 회사 설립 후 약 5년간 의미 있는 발전을 거듭해왔다고 자부합니다. 특히 인력투자에 공을 많이 들였죠. 도내 건축사무소들은 워낙 영세한 회사들이 많지 않습니까? 저희는 현재 24명의 직원들이 함께 일을 하고 있습니다다. 많은 성장이 있었고, 그 과정에는 제주 한라대학과의 산학협력 도움이 큰 힘이 됐죠”

▲ (주)종합건축사사무소 그룹케이의 김시범 대표이사(50). 김 대표가 현재 24명의 직원 중 제주 한라대학과의 산학협력과 가족회사 네트워크를 통해 4명의 한라대 출신을 채용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제주의소리 김봉현 기자

김 대표가 이끌고 있는 그룹케이는 그동안 여러 차례 건축현상공모에서 당선작을 배출해왔다. 모바일·방송통신센터 현상설계 당선(2009.12), 예술과 공간사옥 제주도 건축문화대상 수상(2010.11), 제주경마장 환경개선공사 현상설계 당선(2010.12) 등 여럿이다. 그 비결을 그는 대학과의 산학협력에서 찾고 있었다. 대학과 산업체, 산업체와 대학의 지식공유, 전문인력 창출 등의 면에서 경쟁업체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것이 김 대표의 생각이다.

(주)종합건축사사무소 그룹케이의 전 직원 24명 중에는 4명이 제주 한라대 출신이다. 지난해 대학과 가족회사 네트워크를 맺으면서 그 해 7월 1명을 채용했고, 올해 2월 다시 2명을 채용했다. 그리고 한라대 가족회사가 되기 전에 이미 채용된 1명까지 모두 4명의 한라대 출신들이 그룹케이에서 건축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제주 한라대 출신들을 계속 채용하는 것은 회사 발전에 기여하기 때문입니다. 한라대 가족회사가 되기 전에 이미 1명이 있었고, 가족회사가 된 이후에도 3명이 더 식구가 됐습니다. 학교에서도 최선을 다해 가르치고 배웠겠지만 사회현장에서 얻는 배움도 큽니다. 특히 건축설계는 학교에서 배우는 것이 전부일 수 없습니다. 현장에서 최소한 1~2년 이상은 선배들에게 배우고 경험을 쌓아야 본격적인 생산성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김 대표는 내내 대학과의 산학협력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대학과의 인적교류와 기술연구를 통해 새로운 특허기술을 만들어내고 일자리도 만들어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역대학과 지역기업의 동행을 강조했다. 더 많은 산업체들이 대학과 가족회사가 돼야 한다는 그의 강권이다.

▲ 김시범 대표의 그룹케이가 현상설계용역한 '물산업 연구센터'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제주의소리

  선택과 집중으로 제주 난개발 막아야

김 대표는 후배 건축가들에게 ‘선택과 집중’도 조언했다. 집을 설계하고 지어야 하는 건축가들에게 개발은 불가피한 숙명과 같다. 그렇다면 곳곳을 헤집는 난개발이 되지 않도록 보존과 개발지역을 확실하게 선택하고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녹지에 빌라들이 우후죽순 들어서고, 해안도로마다 카페와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들어서고 있습니다. 오름 능선 옆으로 들어서는 골프텔, 리조트들도 걱정입니다. 개발은 도심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지키고 보호해야 할 땅은 보호해야 합니다. 건축에도 선택과 집중이 필요합니다”
 
건축분야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분야를 다 아우르는 것이 ‘그룹케이’의 꿈이자 김 대표의 꿈이다. 설계, 시공, 감리뿐만 아니라 시공에 이르기까지 건축과 관련한 모든 분야에 그룹케이의 이름을 남기는 날을 기다리고 있다. 김시범 대표의 꿈이 현실이 되는 날. 그리 멀어 보이지 않는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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