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제주도 장기기증의 날...기증자들 “힘들었냐구요? 오히려 마음 편해”

 

▲ 9일 제1회 제주도 장기기증의 날 기념식을 찾은 기증자들. 왼쪽부터 김전순(55.여), 정숙렬(55.여)·김동철(58) 부부, 최영일(69)씨. ⓒ제주의소리

제주도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기념일이 있다. 9월 9일 ‘장기기증의 날’이다.

지난해 1월. 제주도의회에서 전국 최초로 ‘장기 등 기증장려 및 지원에 관한 조례’가 만들어졌다. 도지사가 장기기증등록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시책을 개발하고 관련 지원사업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 조례를 통해 제주도에 전국 최초로 9월 9일 장기기증의 날이 탄생했다. 

첫 번째 장기기증의 날을 맞아 9일 제주웰컴센터에서 ‘제1회 장기기증의 날 기념식’이 열렸다. 2011년 12월 조례를 발의한 윤두호 의원과 박진탁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본부장을 비롯해 평소 장기기증 운동에 앞장서 온 이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이 날 무엇보다 참석자들을 흐믓하게 한 것은 자신의 장기를 남에게 내 준 기증자들의 사연이었다. 편안하고 덤덤한 표정의 이들은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새 생명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줘서 고맙다고 입을 모았다.

“수술 무서웠냐구요? 오히려 마음 편하던데요”

 

▲ 올해 1월 자신의 신장을 다른 사람에게 떼어 준 김영송(52)씨. ⓒ제주의소리

“2013년 1월 30일은 제 생일입니다. 마음속으로 이 날을 제 생일로 정해놓고 누군가를 만나면 ‘제 생일은 1월 30일’이라고 말해요”

서귀포시 표선면에 사는 김영송(52)씨는 지난 1월 30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자신의 신장을 다른 이들에게 기증했다. 어려운 결정이었을텐데도 그는 웃으며 ‘마음이 편했다’고 말한다.

남을 위해 무언가를 나누는 일에는 앞장섰던 그는 평소 헌혈을 위해 혈액원을 자주 찾았다. 그러다 ‘현혈 말고 내가 뭔가 더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고민하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의 이야기를 듣고는 바로 신장 이식을 결정했다. 상대방은 신장 투석을 받고 있는 광주의 한 50대 남성.

이식을 결심하게 된 계기도 순수하고 신기했지만 수술 전까지 그의 마음이 평온했다도 놀라웠다. 그에게 “두렵거나 걱정되진 않았냐”고 묻자 그는 “이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며 살짝 미소를 띠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식을 결심하고 수술실에 들어가기까지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했다고 한다. 수술 직전 의사가 그에게 물었다. 무섭거나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면 지금이라도 수술을 취소해도 된다고. 정말 괜찮겠냐고. 그러자 그는 재빨리 답했다.

“지금 건강한 상태로 나와서 수술을 할 수 있게 판정돼서 얼마나 다행인데...빨리 수술에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수술 후 8개월. 그는 오히려 이식자에게 고맙다고 말한다. 그는 수술 이후 이식자를 만나지 못했다. 일부러 보지 않는다고 했다. 최근에 건강하다는 소식을 들어 그걸로 만족한다고 했다.

그는 이식자를 보고 싶지 않냐는 물음에 “지금 만나보게 되면 서로에게 부담이 되고, 서로 미안할 것 같다. 웬지 가슴이 아플 것도 같다. 그저 10년, 20년 후 나이들어 백발이 돼서, 그 때까지 건강하게 지내다가 그 때 만났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사실 그는 퇴원하면서 아주 잠깐 이식자를 스쳐 지나갔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별 얘기없이 ‘건강하고 잘 사세요’하고는 바로 병원을 나왔고 그게 마지막이었다.

지난 달 그는 건강검진을 받았다. 그리고 검사 수치는 이상 없이 ‘정상’으로 나왔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누구랑 운동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요즘 체력이 좋네요”

출소 후 우연히 본 신문기사, 그의 삶을 통째로 바꾸다

 

▲ 자신의 신장을 내주고 최근까지도 신장환우를 위해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최영일(69)씨. ⓒ제주의소리

서귀포시에 사는 최영일(69)씨는 11범 전과자로 청송보호감호소까지 갔던 과거가 있다.

1991년, 마음을 다잡고 모범수로 출소했지만 이후에도 세상은 다른 삶을 살도록 그를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러던 중 우연히 신문에서 박진탁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본부장의 이야기를 봤을 때 무언가 마음에서 끓어올랐다. 그리고는 바로 박 본부장을 찾아가 장기기증에 동참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리고 그 해 6월 3일 한양대병원에서 노모(44)씨에게 자신의 신장을 내주는 이식수술에 들어갔다. 그리고 그 때부터 삶이 바뀌었다.

“출소한 뒤에도 공장에서 일하면서도 마음을 못 잡았는데 기증하고 나니 ‘남에게 생명을 줬는데 나쁜 짓 하면 되겠냐’는 생각에 결코 나쁜 마음을 먹지 못하게 됐다”고 그는 말한다.

새 인생을 시작한 최씨는 지금도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활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고, 지금도 만성신부전환우를 위한 요양시설의 제주 라파의 집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완전히 삶이 바뀐 셈이다. 

부산에 사는 김전순(55)씨도 자신의 신체 일부를 남을 위해 바쳤다.

30년전. 당시 42살이던 숨을 거둘 때 쯤 시신기증을 했고, 1994년 당시 37살이던 남동생이 폐결핵을 세상을 뜰 당시에도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사용하라’며 각막을 기증했다.

그리고 2005년 9월. 그녀는 삼성서울병원에서 윤모(47)씨에게 신장을 기증했다. 김씨는 “기증은 사후에만 하는 줄 알았는데 박진탁 본부장님을 보니 살아서도, 건강해서도 할 수 있겠다는 걸 알았다”고 말했다.

그녀는 원래 이 날 이식자 윤씨와 상봉할 예정이었으나, 윤씨가 팔을 다쳐 아쉽게 행사장을 찾지 못했다. 잘 지내는지, 얼굴이라도 한 번 볼 겸 이곳을 찾았던 김씨는 다소 아쉬웠다.

“사고가 났다니 마음이 아프네요. 기도를 열심히 할테니 얼른 건강한 모습을 다시 찾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녀가 이식자에게 한마디를 건넸다.

새 생명 얻은 남편 보고 자신의 신장 내어 준 아내

 

▲ 정숙렬(55.왼쪽), 김동철(58)씨 부부. ⓒ제주의소리

제주시청 공무원인 김동철(58)씨는 2003년부터 신부전증을 앓아왔다. 이틀에 한 번 혈액투석을 하며 고통 속에 지내야 했다.

이를 지켜보던 아내 정숙렬(55)씨는 당장 자신의 신장이라도 내어주려 했지만 혈액형이 맞지 않아 발만 동동굴렀다. 그러던 중 천사의 마음씨를 지닌 김태순 목사(42)가 신장을 기증해 2006년 8월 17일 한 쪽 신장을 이식받는다.

당시 심정을 묻자 김씨는 “비교할 수 없이 이전과 천지차이였다. 삶이 달라졌다”며 “예전에 이틀에 한 번 투석하고 여행도 못가고 공무원인데 출장도 못가고 사무실에서만 근무했다”고 말했다.

너무 깊은 감사함을 느낀 고마움으로 감격하던 아내는 얼마 지나지 않은 큰 결심을 한다. 자신도 신장 하나를 내놓기로 한 것. 마침 간절히 신장을 찾아 나서던 이모(41)씨에게 2006년 9월 6일 서울아산병원에서 수술을 통해 신장을 기증했다.

정씨는 “남편이 건강하게 된 것에 너무 감사했다”고 당시 기증 이유를 밝혔다. 그게 전부였다. 정씨는 “사람들이 일하는데 지장이 없냐, 건강은 괜찮냐 모두 물어보지만 지금 일하고 생활하는 데 전혀 이상이 없이 건강하다”고 웃으며 답했다. <제주의소리>

<문준영 기자 / 저작권자ⓒ제주의소리. 무단전재_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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