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호 칼럼> (1) 새인물이 없다고? '패배주의' 끝낼 지도자 도민들이 찾아야  

 

▲ 우근민 지사와 신구범 김태환 전 지사. 이들은 번갈아 가며 23년간 아홉 차례나 제주도정을 이끌었다. 제주사회는 이들을 '제주판 3김'이라 부른다.

제주특별자치도가 출범한지 올해로 7개의 성상을 보내고 있다. 우리 미래상을 우리 스스로 그려내고 이를 완성시켜야 할 나이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창 성장 에너지를 분출하며 번영의 틀을 만들고 꿈을 일궈나가야 할 나이인데도 제왕적 권력으로 비대화한 지도자 폭력의 트라우마로 점철된 굴레에 갇혀 꼼짝달싹 못하고 있다.

역사는 뿌린 대로 거둔다. 제주 역시 지도자들이 뿌린 대로 그대로 가고 있다. 지도자의 성추행과 기만과 배신, 경제성장을 위한 큰 기획과 구상 실종, 가장 가난한 지자체로 추락, 정책 역량 퇴행, 각종 편법과 반칙으로 인한 공정경쟁 기회 박탈, 동종교배 인사 심화, 계층간·세대간 갈등 심화, 인구구조의 급격한 노령화로 인한 경제 활력 저하, 도민 삶의 질 추락, 대학 졸업자 취업률 및 취업성공률 최하위, 광역시도 단체장 평가 꼴찌, 청렴도 전국 최하위, 강정 윈윈 해법 증발 등 믿고 싶지 않은 소식이 계속 이어지면서 도민의 패배의식 팽배와 자존감에 크게 상처를 주고 있다.

심지어 제왕적 권력을 악용, 제주 사회를 사유화하면서 도민이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공동체를 위해(危害)하고 훼손시키는 경우도 비일비재하게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결과로 언제부턴가 제주 도민들은 지역사회 지도자와 관련한 트라우마를 호소하며 지역 원로들의 독점적․패권적 역할에 회의적 시각을 보이고 있다.

제주 사회가 정체의 늪에서 돌파구를 찾지 못해 헤매고 있음은 당연한 귀결이다. 진정한 자아 성찰과 회개가 없으면 이들은 제주 사회의 공적(公敵)으로 규정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러한 ‘지도자 논란 트라우마’의 중심에는 올해 72세가 되는 42년생 동갑내기인 전․현직 지사 세 사람이 있다. 논란의 핵심부에는 가장 긴 11년의 권좌를 누리면서 불출마 약속을 어기고 재출마 움직임을 보이는 현직 지사가 자리잡고 있다.

‘제주판 3김’으로 불리우는 이들 3명은 우리 곁을 맴돌면서 번갈아 가며 23년 동안 제주 도정을 아홉 차례나 이끌어 왔다. 이들이 제왕적 권한을 누리며 장기간 제주 사회를 쥐락펴락해오는 동안 발전은 고사하고 편가르기식 갈등과 분열로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는 지적이 중론이다.

하지만 이들이 물러나기는 커넝 3김 간 ‘리턴 매치’설이 다시 나오면서 끼리끼리의 패거리 짓기와 줄서기 횡행 등 도민 사회가 또 다시 술렁거리며 곳곳에서 파열음이 울리고 있다.

# 정치 원로들, 이젠 주역이 아닌 자문과 조언 역할 머물러야

이들은 이제 칠순이 넘은 나이다. 새로운 제주를 주도하는 것은 이들이 감당해낼 몫이 아니다.

자신의 경륜을 더 발휘할 수 있다고 항변할 수 있을지 모르나 시대 흐름과 배치되는 것이 더 많을 것이다. 이들의 노련함 만으론 혁신과 변화가 절실한 제주 사회의 경장(更張)이 어렵다. 게다가 갈등의 확산 등 갈수록 복잡다난해지는 도정을 이끌기에는 생물학적 나이의 한계도 고려 안할 수가 없다.

제주 사회가 이들 원로들을 대접하고 활용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이들을 시대의 주역으로 더 이상 내세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말이다. 또한 이들의 지배가 지속되면 제주 사회의 중심이 돼야 할 젊은 세대엔 꿈이 사라지게 된다.

시대마다 시대적 과제가 있고 중심 세대가 있으며 나이에 맞는 역할이 있는 것이다. 더 이상 과거 세대, 묵은 인물에게 붙들려 있어서는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수 없다. 이들과 작별해야만 하는 이유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어깃장을 놓아 역사적 순리를 외면하거나 거역하게 되면 말로는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 국민들로 부터 온갖 수모를 당하고 있는 전두환씨의 경우가 좋은 사례다.

지금까지 우리가 이들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았던지, 우리가 그들에게 붙들려 풀려나지 못했던지 간에 이제는 이들을 과거로 흘러가게 해드려야 한다.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그들의 주변 인사들이 도와야 한다.

이들의 자리는 '전면'이 아니라 '측면'에서 자문과 조언을 해주는 역할에 머물러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붙들렸던 우리 역시 함께 풀려나와 새로운 마음으로 각오를 다지며 제주의 미래를 향한 혁신과 도전의 길을 걸어야만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 주변에선 새로운 도약을 향한 도민적 열의와 헌신보다 정치 원로 중심의 패거리들의 이익 투쟁 모습이 보다 쉽게 목격된다.

명색이 지도자란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대척하며 제주의 경쟁력이 자랄 토양을 훼손시키고 있는 것이다. 도민들 역시 멀거니 보면서 지도자와 함께 추락의 씨앗을 파종하고 있다. 제주의 경쟁력이 하락 일로일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제주의 경쟁력이 추락하고 민심이 떠난 후에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패거리들은 오늘의 축배가 내일 우리 후손들에겐 독배로 돌아온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쯤에서 제주 사회는 우리 후손들의 미래를 좀먹는 씨앗들을 파종하는 현재의 정치 구도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도자 논란의 트라우마가 지속되는 한 사분오열된 제주의 막힌 통로를 뚫지 못할 것이며 ‘도민이 행복한 국제자유 도시의 완성’이란 슬로건은 허공 속 메아리로 그쳐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 도민은 이석기를 구속․수사해야 한다는 압도적 여론조사 결과에서 부자격자가 도정을 맡아선 안 된다는 것과 '관용의 한계'를 지키는 것이야말로 '관용의 시대'를 중단없이 열어나갈 수 있다는 교훈을 읽어 내야 한다.

# '지도자 논란 트라우마' 치유는 인적쇄신과 제도혁신에서

그러면 우리 제주 사회의 절체절명의 과제는 무엇인가? 다름아닌 ‘지도자 논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기 위한 인적 쇄신과 제도 혁신이다.

이를 위해 제주 사회는 ‘활화산의 용암을 토해내던 한라의 용맹정진을 우리의 마음에 각오를 다지면, 우리 제주는 변방의 시대를 끝내고 꿈과 번영이 흘러넘치는 대한민국 중심에 우뚝 설 수 있다’는 사자후를 토해낼 수 있는 패배주의 도민의식의 종결자를 속히 맞이할 수 있어야 한다.

권력을 갖고 뭘 하겠다는 비전은 없이 일단 권력만 잡고 보겠다는 사이비 지도자가 아니라, 급변하는 트렌드를 앞서 읽는 통찰력과 비전을 겸비한 지도자, 산을 옮기고 골짜기를 메워 제주사회를 뒤덮고 있는 암울한 그림자를 조금이나마 걷어내 도민이 편안하고 잘살도록 서민경제를 구현할 지도자, 사회적인 책임 의식을 가지고 도민의 삶에 혜택을 줄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낼 지도자, 동종교배로 번식해온 제주 정치생태계의 나쁜 습성과 과감히 결별할 수 있는 지도자, 지역사회의 갈등을 솔로몬 같은 지혜로 풀어낼 지도자, 열심히 하는 지도자보다 제대로 잘하는 지도자를 뽑아야 하는 것이 지금 도민들에게 부여된 시대적 소명이다.

▲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온 도민이 다시 한번 선진 제주 구현을 위한 공동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것을 향해 나아가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 내야 한다. 개혁은 스스로 자기 몸을 태우지 않고는 빛을 발할 수가 없고, 껍질을 깨고 허물을 벗는 아픔 없이는 성장을 할 수가 없다. 후손에게 물려줄 영광된 제주의 미래를 위해 제주의 고질인 ‘지도자 논란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는 혜안이 절실히 요구된다. /고운호 전 한국은행 제주본부장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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