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열의 을 다시 생각한다.

80년대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었을 때 작가 이문열은'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란 소설로 사회변혁운동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세상에 내 놓았다. 당시 그의 대부분 작품들이 그러했듯이 이 작품 역시 사회적 주목을 받았고 숱한 논쟁을 불러일으키며 베스트셀러의 지위에 올랐다. 그러다가 '우리들의 일그러진영웅'이 영화로 제작되고 초등학교 교과서에 그 내용이 실리면서 전 국민의 고전이 되어버렸다.

소설의 주인공 '한병태'는 자유당 말기에 중앙공직에 있던 아버지가 시골로 발령됨에 따라 시골학교로 전학 오게 된다. 한병태가 속하게 된 반에는 '엄석대'라는 반장이 있었는데, 그 반은 엄석대에 의해서 엄격하게 통제되고 있었다. 엄석대는 같은 학년의 아이들보다 나이가 많고 키가 커서 힘이 셀 뿐만 아니라 스스로 질서를 만들고 유지할 수 있는 교묘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전학 간 이후 주인공 한병태는 자신에게 가해오는 엄석대의 부당한 공격에 대해 저항도 해보고 엄석대가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행하는 많은 비위 행위에 대해 담임선생님에게 고발하기도 해 봤지만 번번이 좌절하고 만다.

자신의 좌절된 심정을 아버지와 공유하려고 해봤지만 아버지마저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엄석대의 질서 세계 속에서 한병태는 고자질장이에 불과했고 한병태에게 돌아오는 저항의 대가는 담임선생님의 핀잔과 급우들의 집단 따돌림이었다.

결국 한병태는 그 질서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엄석대에 굴복하고 그의 질서와 적절히 타협하게 된다. 한병태는 엄석대를 위해서 자신의 샤프펜슬을 공납하고 매번 그림을 대신 그려주었다.

하지만 엄석대의 질서는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6학년이 되면서 새로 담임을 맡게 된 선생님은 시험 때마다 엄석대가 다른 아이들과 시험지를 바꿔치기해서 전교 1등을 차지한 사실을 알아차렸고 결국 담임선생님에 의해 엄석대의 질서는 붕괴에 이르렀다. 강압과 부정한 질서에 순응하도록 길들여진 반 아이들에게 담임선생님은 다음과 같은 꾸지람을 남겼다.

"나는 되도록 너희들에게는 손을 안 대려고 했다. 석대의 강압에 못 이겨 시험지를 바꿔 준 것 자체는 용서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동안 너희들이 느낌이 어떠했는가를 듣게 되자 그냥 참을 수가 없었다. 너희들은 당연한 너희들의 몫을 빼앗기고도 분한 줄 몰랐고, 불의한 힘 앞에 굴복하고도 부끄러운 줄 몰랐다."-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영웅' 중에서

시골학교를 떠나 다시 도시생활로 복귀한 한병태는 '일류와 일류, 모범생의 집단을 거쳐 자라 가는 동안은 억눌림 또는 가치 박탈의 체험을 안 해도 좋은 시기였기에' 한 동안 엄석대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

하지만 한병태가 명문대학을 졸업한 후 대기업이라는 주류세계에 염증을 느껴 회사를 사직하고 세일즈맨이라는 직업으로 전전하다가 실업자가 되었을 때 문득 과거 시골학교의 '엄석대'를 떠올렸다. 그가 새롭게 체험하는 비주류세계 속에서 엄석대의 질서를 체험한 것이다.

'그전 학교에서의 성적이나 거기서 빛났던 내 자랑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그들만의 질서로 다스려지는 어떤 가혹한 왕국에 내던져진 느낌 ― 그리고 거기서 엄석대는 아득한 과거로부터 되살아났다.'-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영웅' 중에서

몰락하는 또 다른 엄석대

이문열의 작품 속에서 엄석대가 몰락해 가듯 한국 사회에서 또 한 명의 영웅이 몰락해가고 있다. 그 영웅 역시 엄석대를 능가하는 교묘한 속임수와 여론조작으로 학계에서 그만의 독특한 질서를 구축했다. 그는 엄석대처럼 우수한 성적과 성과들을 자랑하며 국민적 영웅으로 존경받아왔다. 그가 요즘 전 국민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황우석 박사다.

엄석대의 반에서는 담임선생님이 그의 부당한 권력에 힘을 실어준 것처럼 황우석 박사에게는 조선, 중앙, 동아라는 부자 종이신문들과 YTN 방송이 힘을 모아주었고, 거기에 참여정부가 돈과 권력을 보태고 있었다. 밀폐된 교실에서 엄석대가 제왕으로 군림했던 것처럼 우리 생명공학계에는 황우석이라는 또 다른 제왕이 군림하고 있었다.

낮에는 부드러운 미소와 예절바름으로, 밤에는 교묘한 데이터 조작과 여론 통제로 유지되었던 그의 세계는 좀체 균열이 보일 것 같지 않았다. 엄석대에 대한 한병태의 도전과 고발이 비난과 고통만 되돌려 준 것처럼 황우석 박사에 대한 MBC와 오마이뉴스, 민주노동당 등의 비판은 사회적 비난만 초래했다.

하지만 그 영웅의 질서도 결국은 파국을 맞이하고 있다. 엄석대가 그보다 더 강한 새로운 질서(담임선생님)에 의해 파국을 맞이한 것과는 달리 이 생명공학의 영웅은 소신과 사명감으로 무장된 'PD수첩'과 민주노동당, 그리고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젊은 과학도들의 헌신에 의해 파국을 맞이하고 있다. 변혁운동에서 이름 없는 대중들의 역할을 신뢰하지 못하는 이문열의 입장에 내가 동의하지 않아도 될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검찰조사가 어쩌니', '서울대에서 자체 논문검증 결과가 나왔느니' 하는 것들은 결국 형식적인 요식 행위에 불과한 것이다. 그의 논문은 조작되었고, 줄기세포에 대한 그의 대부분 주장은 사실이 아님이 드러나고 있다.

'영웅 황우석'을 만드는데 일조했던 노성일 원장, 박기영 보좌관 등 그 측근들은 자신들이 황우석과 한 배를 타고 있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린 듯 그의 거짓을 폭로하기에 여념이 없는데 지금 검증되어 나오는 결과에서 황우석 박사의 가치를 회복할 만한 새로운 내용을 찾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황우석 박사의 연구 보좌진들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 안에는 한병태와 같이 한 번쯤 자신들의 영웅에 대해 저항을 시도해 봤을 이도 있을 것이고, 각종 부당한 회유와 압력에 굴복하면서도 영웅이 차려줄 '달콤한 식탁'에 둘러앉을 날을 기다리며 침묵했던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을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2005년 대한민국 사회 전체가 황우석 영웅의 그늘에서 '국태민안'과 '선진대한'을 꿈꾸며 나른하고 달콤한 위안을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세계든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수많은 엄석대들이 자신들만의 질서를 구축해 놓고 그 질서를 유지하기에 힘을 쏟고 있다. 오늘날 '사학의 건학이념'을 들먹거리거나 '자신들의 사유재산'을 주장하며 자신들의 세계를 유지하고자 이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야외에서 분을 표출하는 이들도 그들의 세계 안에서는 또 다른 엄석대일지도 모를 일이다.

※ 장태욱 시민기자는 제주시내에서 '장선생수학과학교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오마이 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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