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DC대학생 아카데미] (5) 김영하 소설가

"우리는 왜 소설을 읽는가?"

24일 오후 4시 제주대학교 국제교류회관에서 열린 다섯 번째 JDC대학생아카데미 강사로 나선 김영하 작가는 이 같은 질문을 던지며 강연을 시작했다.

1995년에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로 등단한 김 작가는 2000년대 이후 국내서 손에 꼽히는 베스트셀러 작가다. 문학동네 작가상, 황순원문학상,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등 국내 최정상급의 문학상을 모두 거머쥔 바 있다.

김 작가는 "소설은 이상하다. 세계명작이라고 하는데 막상 보면 이상하다. 왜일까? 소설은 이상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교훈이 없다. 강력한 메시지가 있어야하는데 실은 없다"며 말머리를 열었다.

지난 2008년에 발간돼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아침형인간'은 메시지가 간단하다. 제목이 전부다. 마이클 센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도 마찬가지다. 소설은 그렇지 않다. 작가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방대한 양을 자랑하는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리나', 롤리타 신드롬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어낸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롤리타', 한 남자의 사랑과 몰락을 다룬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등이 그렇다.

▲ 김영하 소설가가 JDC 대학생 아카데미 다섯 번째 강사로 나섰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김 작가는 "소설은 좋은 영향보다는 나쁜 영향을 끼친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은 '베르테르 효과'라는 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문제아를 다룬 이야기인데 미국 청소년들이 가장 좋아하는 고전이 됐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 역시 마찬가지다. 등단 작품인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자살하려는 주인공이 사람들을 모으는 내용이다. '오빠가 돌아왔다'는 가출했던 아들이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때리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퀴즈쇼'의 주인공은 잉여로 퀴즈 푸는 것밖에 할 일이 없다. 이처럼 본받을 게 없고 부도덕한 소설들이 만해문학상, 이상문학상, 문학동네상을 탔다.

김 작가는 "문학계는 이런 곳이다. 이상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면 잘했다고 상을 주는 곳이다. 상 받은 작품을 읽어보면 이상하다. 문학이라는 것은 이상한 사람들의 이상한 이야기를 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문학은 윤리적 판단이 정지된 땅'이라는 체코슬로바키아 출신의 소설가 밀란 쿤데라의 말을 인용했다. 소설에선 이상한 것도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데다, 이른바 '또라이'가 매력적으로 보이는 장르라는 것이다.

김 작가는 "인터넷에 무슨 기사가 올라오면 댓글 달고 단죄하는 것이 요즘 사회다. 문학 바깥의 세상은 냉혹하다. 별것 아닌 실수도 용서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 김영하 소설가가 JDC 대학생 아카데미 다섯 번째 강사로 나섰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하지만 소설은 다르다.

김 작가는 "'안나 카레리나'의 주인공은 요즘으로 치면 장관 정도 되는 직책의 부인이다. 소설을 간추리자면 젊은 육군 장교와 바람이 나서 자식도 버리고 떠났다는 것이다. 이게 신문 기사에 떴다면 말 그대로 큰일 나는 거다. '장관 부인 모씨, 불륜 끝에 자살' 한줄로 끝이다. 현실 세계는 무시무시하다"고 설명했다.

그의 최근 작품인 '살인자의 기억법'의 주인공은 70세가 된 연쇄살인범이다. 늙어서 딸과 둘이 살고 있는데0 딸이 결혼하겠다고 데려온 남자는 자기가 봤을 때 연쇄살인범인 거다. 딸을 구하기 위해 마지막 살인을 벌이려는 사람이다.

그는 "문학의 세계는 그보다 더 심한 일을 해도 욕하는 사람이 없다. 다른 논리가 적용되는 곳이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쉽게 남에게 윤리적 판단을 내리지 않는 땅으로 들어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 인물을 비웃을 수는 있으나 그 인물에게 저주를 퍼붓거나 욕설을 내뱉진 않는다"고 설명을 보탰다.

▲ 김영하 소설가가 JDC 대학생 아카데미 다섯 번째 강사로 나섰다. ⓒ제주의소리 김태연기자

소설은 젊은 남자와 귀부인이 사랑에 빠진다거나 15명의 소년이 먼 바다를 표류한다거나 그런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우리 마음속에 있는 욕망, 현실화되기 어려운 욕망을 주인공들이 대신 겪는다.

김 작가는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를 읽는 동안만큼은 노인이 이기길 바란다. 롤리타의 주인공인 변태조차도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게 된다. 소설만이 그런 세계를 지지한다. 교훈도 실용성도 없지만 정신이 쉴 곳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우리가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소설을 읽을 때는 성공한 삶만이 의미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난다. 실패하거나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살아갈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김 작가는 "먼 옛날 그리스로마신화를 보면 신들은 전능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13세기, 14세기엔 기사가 용이랑 싸우는 문학이 등장한다. 현대소설로 넘어오면 별 볼일 없는 인간들이 나온다. 영웅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닌 인물들"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현대 소설에는 도둑, 바람난 유부녀, 고집 센 노인 등 평범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나 같이 평범한 사람들이 보고 쓰는 것도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소설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소설을 많이 읽다보면 자기도 자기 인생을 써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그런 과정을 통해 남을 이해하게 된다. 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이해를 가능하게 만드는 배경이 있기 마련"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소설이라는 건 자신의 인생을 참신한 방식으로 재구성할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도 그렇게 된다. 이것이 진정한 소통"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김 작가는 "'하라, 하지 말라'는 식의 자기계발서와 달리 소설은 엄마친구아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다. 자기 욕망을 이해하지 못한 인간, 어리석은 인간이 주인공이다.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소설은 우리 자신을 주인공으로 꽤 괜찮은 책으로 만들어준다. 이것이 우리가 아직도 소설을 읽는 이유"라고 말했다. <제주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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