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길현 칼럼] 국립대 직원에게도 민생을  

I. 서글픈 총장 간선제

최근 제주대가 언론에 회자하는 2개의 장면이 있다. 하나는, 제주대 총장 선출이 직선에서 간선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간선제 입후보 전에 현직 총장 사퇴 여부를 둘러싸고 후보들 간에 힘겨루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보도이다. 다른 하나는 제주대 교직원이 기성회비 수당 폐지 문제로 천막농성을 벌리고 있다는 보도이다. 전자가 제주대 운영의 차기 리더십 구성을 둘러싼 엘리트들의 경합 문제라면, 후자는 기성회비 수당을 둘러싼 직원들의 민생 문제이다. 

대학 민주주의 상징으로 여기던 총장 직선제가 교육부의 ‘사실상의 강요’에 의해 간선제로 바뀌게 된 것은 이명박 정부 때의 일이다. 직선 총장 선거에 수반하는 선거과열을 박고 상아탑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는 간선제가 요구된다는 것이 그 명분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국공립 대학 스스로가 자체 정화 노력을 통해 자율을 지켜나가지 못한다고 우기면서 총장 간선제를 밀어붙였다. 그렇게 하나씩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는 여기저기서 침식되어 갔다. 

이명박 정부의 후신이라서 그런지 박근혜 정부는 총장 직선제의 폐해보다 더 큰 문제투성이인 국정원의 불법 대선개입에는 눈을 감고 ‘셀프 개혁’을 외칠 뿐이다. 총장직선제 거부에 대한 정부의 완강함에 비하면 국정원의 문제점에 대한 정부의 비호는 정권적 차원의 유용성에 근거하고 있다. 필자에게는 총장직선제 폐지가 그 숨은 의도에 있어서 교과부의 대학 통제를 위한 하나의 책략에 다름 아닌 것으로 비처진다.  

총장 직선제에서 뿐만 아니라 간선제에서도 이른바 ‘선거 과정에 내재하여 있는 인간적인 문제점들’이 그대로 노정되리라 보아 무방하다. 직선이든 간선이든 혹은 임명이든 그에 따른 논란은 제도 자체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예를 들면 총장추천위의 공정성 등 간선제 채택에 따른 논란도 제도를 운영하는 인간의 문제일 것이기에 늘 불가피하다.

제주대 총장 간선 과정에서 일어나는 논란을 쉽게 ‘이전투구’로 운운하는 것은 선거의 본질 내지는 인간사의 복잡다단한 측면을 제대로 읽지 못하는 상업적 저널리즘의 논평일 뿐이다. 

어떻든 대학 사회에서의 선거는 다른 분야의 선거보다는 무언가 조금은 달라야 하리라는 일반의 기대에 부응할 필요는 있다. 그래서 이왕이면 총장 직선제로 대학의 남다른 긍지를 보여주는 게 더 좋을 것이다. 문득 이번 총장 간선제 시행에 명함을 내민 5분의 총장 후보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총장으로 당선되면 대학의 자율과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총장 직선제 도입을 적극 추진해 나가겠다는 것도 공약에 넣어주시길.
 
II. 국립대 직원에게도 민생을

이제 이 칼럼의 주제로 돌아가야겠다. 기성회비 수당 폐지와 관련하여 제주대에서도 직원들의 항의 천막이 들어섰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2013년 9월부터 시행되는 기성회비 수당 폐지와 관련하여 이에 반발하는 직원들의 항의가 이미 전국적으로 진행되고 있기에 충분히 예상된 것이었다.

또한 유감스럽게도 거의 바둑의 수순처럼 교육부는 기성회비 수당 지급 폐지에 반발해 국·공립대 직원들이 근무지를 이탈하거나 불법 집회 등을 여는 등 집단행위에 엄중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에서 박근혜 대통령으로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게 교육부의 막무가내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이명박근혜’ 정부라 명명하는가 보다, 

필자의 선입관일지 모르지만, 그동안 정부의 지침에 가장 순응해 온 집단의 하나로 국공립 대학의 직원을 들 수 있다. 그런데도 이번에 전국적으로 직원들이 천막 농성, 피켓 시위 등 반발을 하는 이유는 단 하나, 기성회 수당 폐지가 그들에게는 곧 봉급 삭감이라는 측면에서 민생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에게는 툭하면 민생을 외치는 박근혜 정부가 더군다나 지난 선거 때 더 많은 표를 주었으리라 생각되는 직원들에게 왜 민생을 어렵게 하는 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의 복지 공약이 줄줄이 취소되는 최근의 정국에서 기성회 문제에 대한 정부의 재정지원은 언감생심일지 모른다. 오히려 정부가 보기에 상대적으로 순응적인 소수 공무원 집단인 국·공립대 직원들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건, 그들의 어려운 민생에는 전혀 고민이 없는 손쉬운 처방책일 것이다. 그런데도 제주대 울타리 안에서 한 가족처럼 살고 있는 필자에게는 정부의 어려운 상황에 대한 이해보다는 제주대 직원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더 피부에 절절히 다가온다.

왜냐하면 1963년 문교부 훈령에 의거 지난 50년간 교육부의 묵인 하에 관행화 되어 왔던 기성회비 수당을 아무런 대책 없이 하루 만에 없던 일로 폐지하는 것은 사실상 감봉이나 다름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감봉 액수라는 게 필자가 아는 바 90만원도 아닌 1인당 연 990만원에 이른다면 그 누가 이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직원에게 지급되는 기성회비 수당을 감액하여 학생들에게 돌려주면 학생 1인당 등록금이 연간 10만 정도가 낮아지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학생 1인당 10만원 환원이라는 액수가 등록금의 2.5%에 불과한 것이라서, 과연 직원들의 민생을 담보로 하는 이번 정책이 적절한 것인지 회의적이다.

작년 대선 과정에서 화두로 떠 올라있는 대학 반값 등록금 문제에 대해 보다 적절하게 그리고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력만 보일 뿐이다. 어떻게든 여론의 눈치를 보아야 하기에 만만한 국립대 직원들의 감봉으로 땜질하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기성회비의 불법성  문제를 이렇게 국립대 직원들의 희생으로 대강 땜질 처방하게 된 배경에는, 주지하다시피 2012년 1월 서울대 등 8개 국립대생들이 제기한 기성회비 반환 청구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은 향후 기성회비를 포함하여 국·공립대의 재정 문제에 대해 정부가 보다 합법적인 틀로 접근해 나갈 것을 주문하는 데 더 의의가 있는 것으로 볼 것이다.

기성회비 징수가 법적인 근거가 없다고 해서 그동안 관행적으로 지급해 오던 기성회비 수당을 아무런 대책 없이 없애도록 한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한 자료에 의하면, 2012년 기준 전국 국·공립대학의 연간 평균 등록금 411만1800원 중 기성회비는 306만4500원(74.5%)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국공립 대학들이 등록금 인상에 대한 학생 반발을 의식하여 편법으로 수업료가 아닌 기성회비를 꾸준히 올려오는 과정에서, 교육부는 해마다 감사니 뭐니 하면서 무엇을 해 왔는지 의아심이 들 뿐이다.

지난 이명박 정부 때에도 국립대 교수의 한 사람으로서 총장 간선제와 성과연봉제 강요 등 교육부의 안하무인에 속수무책을 경우가 한 두 번이 아니다.

▲ 양길현 제주대 교수·제주내일포럼 공동대표.

이번에는 국립대 직원들에게 지급되어 왔던 기성회비 수당을 아무런 대책 없이 없애면서 이에 대해 항의하는 경우 불이익을 주겠다면서 압박을 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기회만 되면 교육부는 전국 국·공립대에 대해 지휘감독을 하는 갑의 위상과 권한을 행사하는 데 한 치의 주저함도 없다. 언제면 교육 정상화에 도움이 되는 교육부를 맞이하게 될까.  / 양길현 제주대 교수(제주내일포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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