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또 불안하다. 2014 회계연도가 지난 10월 1일 개시되었음에도 의회가 예산 승인을 하지 않아, 따로 특별법에 의해 재원이 마련되어 있는 몇몇 사업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정부 활동이 중단되고 있다.

내일(10월17일) 이후로는 정부의 금고가 비어, 만기가 되는 국채 원리금도 지불하지 못할 지경에 이른다고 한다.

현재 미 의회에는 행정부가 의회에 제출한 정부안 외에 하원과 상원이 각각 자체적으로 만들어 통과시킨 두 개의 안이 올라와 있다. 이들 안의 공통점은 적자예산 편성이라는 점이다.

미국의 연간 재정적자는 2013 회계연도에 GDP의 5.5%에 달했고 정부안에 의하면 새 회계연도에도 4,4%의 적자를 면치 못한다. 공화당이 작성한 하원 예산안도 재정적자의 규모는 큰 차이가 없다.

재정에서 부족한 금액은 국채를 발행하여 조달해야 한다. 이것이 한도에 묶여 있다면 그것을 늘려 주는 것이 당연해 보이는데 의회는 이것을 또 하나의, 어쩌면 더 말발이 세게 먹히는 권한인양 휘두르고 있다.

이러한 벼랑 끝 대치를 낳는 원인으로, 이를 테면 미국 정치제도의 여러 문제점을 들 수도 있겠지만 양편이 싸우는데 중요한 불쏘시게 역할을 한 것은 내년부터 본격 시행을 앞두고 있는 "오바마 케어"였다.

의료보험제도는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의 산물이다. 독일의 경우 1880년대 비스마르크 재상 때 마련된 국영 보험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서 현재 전 인구의 85%가 여기에 가입되어 있다. 개인이 납부하는 보험료는 소득에 비례 한다.

영국도 1946년 국민건강서비스(National Health Service) 입법에 따라 국영 의료보험을 실시하는 나라다. 보험료를 따로 징수하지 않고 소득세에 포함시켜 받아 낸다.

정쟁의 불쏘시개, 오바마 케어

캐나다는 1960년 이전에는 미국과 유사한 민간 보험체제였으나 그 후 여러 단계의 전환을 거쳐 1984년 캐나다건강법을 통과시켜 영국 식 국영 보험제도로 완전 탈바꿈했다. "국민의 건강은 평화 및 질서의 유지와 같이 통치권이 져야 하는 책임의 일부"라는 것이 그 법의 취지다.

이에 비해 미국은 개인의 건강은 개인의 책임이라는 자유주의를 고수해 왔다. 국영 보험이 없는 것은 아니나 고령자(메디케어)와 빈곤층(메디케이드)에 국한된 것이다.

국민의 의료 문제를 개인에게 맡길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70년에 테드 케네디 상원의원이 처음으로 미국도 국가가 조세 성격의 보험료를 걷어 국영 의료보험을 운영하자는 안을 내 놓았지만 성사되지 않았다.

오바마의 "오바마케어" 법은 국민건강의 문제에 있어서 자유주의와 결별하지 못했다. 국민건강을 국가가 책임지는 것으로 보았다면 다른 공적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소요되는 재원을 세금을 걷어 충당하면 될 문제였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개인의 의료보험 가입을 강제하는 것은 이데올로기 면에서 이율배반적인 요소가 있었다.

민간 보험회사들의 치열한 반대에 부딪혀 이데올로기에 충실하지 못하였던 대가를 지금 혹독하게 치르고 있다. 가뜩이나 청년실업이 가장 높은 시기에 젊고 건강한 젊은 사람들에게 보험가입을 강제하는 것은 예상대로 엄청난 반발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2011년 8월, 국제신용조사기관 S&P는 부채한도 증액에 실패한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하강 시켰을 때에도 미국 국채금리는 오히려 낮아졌다.

지금 미국의 10년 만기 국채 금리도 한달 전의 2.9%에 비해 훨씬 낮은 2.7% 선에서 움직이고 있다.

재정불안이 국채 값을 올리는 나라

워싱턴 포스트의 젊은 컬럼니스트, 에즈라 클라인은 이런 현상을 정치 거품(Political Bubble)이라고 부른다.

정치권이 이처럼 대책 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음에도 국채 값이 이렇게 안정적인 나라는 세계에서 미국이 유일하다.

이것은 세계경제가 불안할수록 안전한 자산에 수요가 몰리는 현상에 다름 아니다. 바로 이점이 정치 거품을 키우는 조건을 제공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정치의 거품도 집값의 거품과 마찬가지로 언젠가는 깨지게 마련인데 이 거품이 마냥 부풀어 오르고 있는 것은 위험하기 그지 없다. 그것을 깨는데 필요한 충격의 양이 점점 더 커지기 때문이다.

고통을 각오하지 않는 무늬뿐인 개혁, 그리고 그것이 낳은 혼란을 상대방을 비난하기 위한 재료로 삼기에 급급한 정치권, 거기에 더 위험한 요소로서 이러한 일탈을 꾸짖을 장치가 증권시장에서도 마련되지 않고 있음은 실로 경계할만한 일이다. / 김국주 전 제주은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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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내일신문> 10월 16일자 '김국주의 글로벌경제' 에 실린 내용입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제주의소리>에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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