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입산금지' 4.3발발 6년만에 해제
'한라산 입산금지' 4.3발발 6년만에 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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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배의 도백열전(17)] 제7대 도지사 길성운②
길 지사가 동문매일시장의 화재급보를 듣고 급거 귀임한 가운데서도 지역유지들은 길 지사의 출장 성과에 관심이 모아졌다.
길 지사는 이러한 관심을 의식한 듯 제주대학의 4년제 승격은 문교부가 적극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받았고 제주시의 읍승격은 제주출신 김인선 강창용 강경옥 국회의원과 함께 국회 부의장과 운영위원장을 방문한 결과 이번 본회의에 상정시키겠다는 언질을 받았다고 상경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그러나 시 승격안은 또다시 본회의 통과가 좌절됐다. 도민들의 실망은 무척 컸다. 이 같은 소식은 동문매일시장 화재사건에 대한 수습와중에서도 시승격 추진을 위해 상경했던 김종현(金宗鉉) 제주읍의회 의장은 3월25일에 예정된 국회 본회의 통과가 무산된 경위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제주읍의 시승격안은 법제사법위원회의 심의를 거치지 않은 통영(統營)의 시승격안과 같이 상정됐는데 이를 가지고 일부 국회의원이 이의를 제기하는 바람에 당초 3월15일에 표결하려던 것이 3월17일에야 표결될 수 있었다. 그런데 통영시 승격안에 대한 토론을 벌이는 과정에서 내무부장관이 현재의 국가재정상 시승격은 곤란하여 유보해달라는 요청에 의해 강원도 출신의 의원이 강력히 반대함으로써 투표인수 121명 가운데 통과에 필요한 62명에 1명이 모자란 61명이 찬성함으로써 보류됐다. 그때 내무부장관의 유보요청이 없었다면 반드시 통과될 수 있었다"

더구나 제주시 승격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약속했던 국회부의장이 그날 영화관람으로 회의에 불참함으로써 1표가 모자란 사실이 뒤늦게 밝혀져 도민들의 실망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6년간에 걸친 한라산 입산금지 전면 해제

1954년 '5.20'총선이후 정국은 날로 혼란스러워졌다. 자유당은 이승만 대통령의 종신 연임제와 일부 헌법조항의 국민투표제 등을 골자로 하는 헌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함으로써 야당의 강한 저항에 부딪치고 있는 가운데 제주도에서는 4.3 사건이후 6년여동안 일반인의 입산이 금지돼왔던 한라산을 전면 개방했다.

제주도경찰국은 한라산에 남아 있는 재산 무장대가 5명으로 줄어들어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큰 불편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한라산에 대한 일반인의 입산을 그해 9월21을 기해 전면 허용한다고 발표했다.

이날 신상묵 경찰국장은 담화를 통해 "한라산 전역을 개방하고 일반주민에 의한 외곽경비도 철폐한다"고 발표했다.

신 국장은 한라산 출입통제 전면해제를 발표하기 불과 11일전인 9월10일에 서남(西南)지구 전투사령관에서 제주도경찰국장으로 부임한 인물이었다. 그는 부임후에 5명 밖에 남아있지 않은 재산 무장대 때문에 도민들의 생활에 불편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을 하고 전격 개방을 결정했다. 그러나 이는 5개월전인 1954년 4월1일을 기해 중산간 부락에 대한 입주복귀가 허용한 후속조치의 하나였다.

그때 경찰국장은 이경진(李慶進)은 중산간 부락에 대한 전면 입주를 허가한 대신에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서 부락별로 자체경비를 하도록 했었다.
이에 따라 10월10일에는 제주신보가 주최하는 「한라산개방기념 답사」가 길성운 지사, 김창욱 검사장, 신상묵 경찰국장, 美 고문관을 포함한 군··금융·교육·언론계 인사 66명이 참가한 가운데 이뤄졌다.

그런가 하면 제주도청 산하 내무국 산업국 경찰국 등 3개국 합동으로 구성된 한라산횡단도로조사반이 횡단도로공사를 위한 현지시찰에 나섰으며 제주대학 답사반도 한라산 전역에 대한 조사에 나서는 등 한라산 개방은 도민들에게 대단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당시 제주신보는 "辛 국장의 한라산 전면개방조치는 토벌작전에 있어서 심리작전의 중요성을 인식한 것이 첫째였고, 그 다음이 인권옹호와 민생문제 해결을 잔비(殘匪)완멸에 둔 선무공작이다"라고 높이 평가했다.

이승만 대통령 제주도 개발 8개 사항 관계부처 지시

제주사회가 한라산 개방 분위기로 술렁이고 있을 때였던 1954년 11월3일 함태영(咸台永)부통령이 초도순시차 제주에 왔다. 함 부통령의 내도는 한라산 개방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이에 따른 제주개발계획을 수립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져 관가에서는 제주도에서는 부통령의 내도를 준비했다.

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제주를 찾은 함 부통령이 도착하는 제주비행장에는 길 지사와 제1훈련소장을 비롯한 도내 대부분의 기관장들이 출영했고 육군 군악대가 부통령을 맞이했다. 함 부통령은 도청과 도의회를 차례로 방문한 뒤 관덕정에 마련된 도민환영대회에서 "자강불식(自强不息)한다면 제주도민의 장래에 소망이 있을 것이다"고 말하고 한국보육원과 주정공장 등을 돌아 봤다. 도지사 관사에서 하룻밤을 머문 그는 백발의 노구를 이끌고 도 전역을 샅샅이 훑어봤다.

길 지사는 3일간의 함 부통령 시찰을 수행하면서 제주지역의 현안 17개 사업을 건의했다.

길 지사의 헌신적인 수행과 노력의 결과는 몇일 후에 나타났다. 함 부통령이 상경한 일주일 뒤인 11월12일 제주도개발을 진일보할 수 있는 희소식이 전해져 길 지사 이하 도청 전직원이 크게 흥분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11월11일의 국무회의에서 이승만 대통령이 제주도개발문제에 대해서 자세히 언급하고 제주지역 개발을 촉진하기 위해 △제주읍의 시승격 △한국은행과 산업은행 설치 △원양어업개발 촉진 △화순항 축조 △감귤생산장려 △종축장 설치 △제주대학의 조속한 국립이관 등 제주개발에 관한 8개 사항을 관계부처 장관에게 특별지시했다는 것이었다.

이 대통령의 지시 내용의 대부분은 함 부통령이 내도할 때 길 지사가 건의한 것들이었다.

제주대 4년제 승격, 제주시 승격한 국회상성 낭보 잇따라

제주대학의 4년제 승격이 문교부로부터 승인됐다는 전문이 날아든 것도 그 때였다. 마침 상경중인 제주대 서무과장을 통해 전해진 소식은 이랬다.

문교부는 제주도가 그동안 모두 4차례에 걸쳐 신청한 4년제 승격에 대한 회시에서 법학과 영문학과 축산학과 외에 상학과와 농학과의 증설건의에 대해 상학과를 삭제하는 것으로 승인했다. 또한 교무과 학생과 서무과 등 3개과의 설치와 기존에 확보된 교육시설의 조속한 수리와 정비를 덧붙였다.

희소식이 그 뿐만이 아니었다.
제주읍의 시승격 진정서를 가지고 상경했던 김영호(金榮浩) 제주읍의회 내무분과위원장이 11월24일 시 승격 안이 이승만 대통령의 특별지시에 의해 국회에 다시 상정됐다는 소식을 전했다. 한동안 제주도민들에게 실망만 주었던 시승격에 새 희망을 안겨주었다.

김 위원장에 따르면 11월20일 제주출신 김두진(金斗珍) 김석호(金錫祜) 강경옥(康慶玉) 국회의원의 발의와 국회의원 102명의 서명으로 국회에 제출된 제주읍의 시승격안은 11월24일 제87차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다는 것이었다.

국회 내무위원회는 12월1일 제주시 승격안에 대해서 조사반을 보내 현지실정을 조사한 후 결정하는 것으로 의결했다.

이와 때를 맞춰 농림부에서는 이 대통령의 지시한 종축장 건설과 제주지역 축산개발을 위해 명재억(明在億) 축정국장과 미국 CAC 직원이 내도했다.

정부 축정국장, 미CAC 내도…송당목장 건설 발판 마련

이들의 방문은 훗날 국립송당목장의 효시가 됨으로써 제주축산발전의 획기적인 전기가 됐다. 12월1일 明 국장 일행은 구좌면의 송당, 표선면의 녹산장(鹿山場), 제주읍의 산천단 등을 돌아보고 대단위 목장설치 가능성을 다각적으로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들의 내도 소식을 전해들은 길성운 지사는 명 국장 일행을 직접 안내하면서 "제주도는 천혜의 축산지역으로서 앞으로 정부의 지원만 있어준다면 얼마든지 축산으로서 성공할 수 있는 입지를 갖추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주축산발전에 필요한 기반조건인 △도립종축장 설치 △공동목장의 시설확대 △도축장 수리용 시멘트지원 △제주도가축시험소 정비강화 △진드기구제 △국립종양장 설치 등 모두 12개항으로 된 건의문을 전달하고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을 요청했다.

당시 제주도의 소와 말의 사육두수는 3만3400마리로서 4.3 사건이 일어나기 전인 1941년의 6만6700마리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어들었다.
이처럼 제주도의 축산은 좋은 여건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대대적인 지원 없이는 자력으로 회복이 상당히 어려운 지경이었으며 영세농가들에 의해 축산이 겨우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실정이었다.

길 지사는 1955년을 제주발전의 기틀을 다지는 해로 생각하고 새해가 시작되자 의례적인 신년사 대신에 담화를 통해 "금년도를 「이승만 대통령 분부사항 실천의 해」로 정했다"고 밝히고 "대통령이 작년 11월에 국무회의에서 지시한 8개 사업실천에 전도민과 모든 공무원이 솔선해주기를 바란다"면서 각오를 새롭게 했다.

이와 함께 제주도의회에서도 1월14일 임시총회를 소집하고 이 대통령 지시사항 실천에 도의회가 적극 나설 것을 결의한 뒤 「이 대통령 분부사항 추진특별위원회」까지 구성했다. 위원장에는 전인홍 의장, 부위원장에는 김옥현 의원이 각각 선출됐고 고문에는 제주출신 국회의원 김인선 강창용 강경옥이 추대됐다.

길 지사는 모처럼 도의회와 합심하여 8개항에 대한 구체적인 추진계획을 세워나가면서 대중앙절충에 온 힘을 기울였다.

이승만 대통령, 제주초급대학 4년제 국립대학으로 승격 지시

신년벽두에 밝힌 도지사의 담화는 도민들의 지대한 관심을 모은 가운데 길 지사가 1월20일 전국지방장관회의 참석차 상경하게 되자 제주도에 뭔가 낭보가 날아들 것 같은 예감에 제주사회가 술렁이었다. 그것은 길 지사가 상경 중에 이 대통령을 직접 면담할 수 있는 일정이 마련돼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감은 바로 적중됐다.

상경 닷새후인 1955년 1월25일 제주초급대학에 대한 국립대학으로의 이관결정이 길 지사의 전보를 통해 전해졌다.
다음날 상기된 표정으로 제주에 도착한 길 지사는 기자회견을 통해 제주대학의 국립대학 이관의 배경을 설명했다.

길 지사는 "전국지방장관회의에서 문교부와 내무부가 올해 예산이 이미 편성된 상태여서 금년도 이관이 어렵다고 이 대통령에게 보고한 뒤에 제가 직접 현지실정을 자세히 설명한 결과, 이 대통령이 문교부장관과 내무부장관, 기획처장관에게 무슨 일이 있어도 올해 안에 제주대학을 국립대학으로 이관시키라고 지시했다"면서 아직도 흥분이 진정되지 않은 목소리로 승격경위를 발표했다.

이 대통령은 길 지사의 설명을 들은 뒤 "제주도지사가 말한 바에 따르면 현재 제주초급대학은 도민들의 기부에 의해 부지와 건물이 마련됐다고 하는데 도민들의 향학열을 생각해서라도 제주대학을 국립대학으로 승격시키고 국고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었다.

이 대통령은 이어 길 지사에게 "4.3 사건으로 파괴된 한라산 복구를 위해 경제부흥대충자금이 방출 되는대로 복구비를 보조해주도록 내무부장관에게 이미 지시했으며, 국립공원이 설치 되는대로 제주도의 식물을 창경원에 옮겨 심어 전국민이 감상할 수 있도록 하라"고 특별지시까지 내렸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도의회도 1월27일 도의회를 열어 길 지사로부터 경위를 들은 뒤 대학재산을 문교부장관에게 이관하는 안을 전격 통과시키는 한편 이 대통령과 함태영 부통령에게 「제주대학 국립이관에 대한 감사 메시지」를 보내기로 했다. 또 제주도교육위원회는 도지사 관사에서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역시 정·부통령에 대한 감사 메시지 발송과 중앙교육위원회에 제주대학 국립이관의 조속한 심의를 건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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