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의회-검사장 전면전으로 치달은 '법호촌' 파문
도의회-검사장 전면전으로 치달은 '법호촌' 파문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종배의 도백열전(18) 제7대 도지사 길성운
기정사실로 굳어졌던 제주대학의 국립대학 이관은 그로부터 한달 후인 2월25일에 열린 국무회의에서 좌절되고 말아 도민들의 실망은 대단했다. 그것은 제주읍의 시 승격무산과 함께 도민들에게 적잖은 충격이었다.

이날 국무회의에는 제주대학과 충남대학의 국립이관안이 동시에 상정됨으로써 정부가 재정부담 가중을 이유로 일단 보류한 것이었다. 즉, 제주대학만 국립으로 이관할 경우 충남대학의 반발이 심하고 2개 대학을 동시에 국립으로 이관했을 때에는 정부의 재정부담이 크다는 이유였다.

이 대통령은 이 같은 국무회의 내용을 보고 받고 "제주대학과 충남대학이 정부재정상 국립이관이 어렵다면 해당 대학의 재정부족액을 국고에서 지원해 국립대학이나 다름없이 운영할 수 있도록 하라"고 지시하여 국립 4년제 대학승격만을 학수고대했던 제주대학은 국고보조하의 도립 4년제로 굳어져 버렸다.

길 지사는 도민들의 실망의 소리가 나날이 높아 가자 다시 서울출장을 틈타 함 부통령과 문교부장관에게 지역주민들의 여론을 사실 그대로 전하고 국립대학승격을 반드시 실현해줄 것을 재차 요청했다.

함 부통령은 길 지사의 간청을 듣고 다음 기회를 약속했다.(제주대학의 국립대학 이관은 다음해 제주도제 폐지문제가 갑자기 대두되면서 거론조차 되지 못하다가 4.19 학생의거와 자유당 정권의 붕괴 등으로 1961년 제12대 김영관 지사에 의해 실현될 수 있었다)

김창국 검사장, 4.3 6.25 이재민 수용위한 '법호촌' 건설계획 발표

길 지사는 제주대학의 국립대학 이관문제가 충남대학의 암초에 걸려 무산된 뒤 매우 의기소침한 채 하루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설상가상으로 도의회와 제주지방검찰청간의 엉뚱한 감정싸움에 휘말려 제주발전의 기틀을 마련하자고 부르짖었던 그 해 상반기를 거의 허비하기에 이르렀으며, 이 싸움은 제주사회의 큰 화제가 됐다.

사건의 발단은 김창욱(金昌旭) 검사장이 4.3 사건과 6.25 사변으로 발생한 이재민들을 일정한 지역에 수용하여 생활근거지를 마련해주면서 모든 범죄의 원인으로부터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계획한 「법호촌(法護村) 설립을 수립하면서부터 비롯됐다.

김 검사장은 1954년말 길 지사와 신상묵 경찰국장에게 자신의 계획을 처음으로 밝힌 뒤 도내 전지역을 시찰하고 나서 남제주군 서귀면의 속칭 「선돌」지역에 법호촌을 건설하여 미국 CAC원조로서 150세대의 주민들을 입주시키기로 하고, 다음해인 1955년 1월31일에 개최된 2차 도내 기관장회의에서 정식으로 발표, 도민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이날 김 검사장은 기관장 회의에서 "제주도에 범법자가 없는 낙원(樂園)마을을 건설하기 위해 중앙과 美CAC의 협조로 서귀면의 선돌에 법호촌을 설립할 계획이며, 이미 60세대가 입주해 개간을 서둘고 있고 단장은 김용모(金龍模)라는 사람이 맡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법호촌과 별도로 제주읍의 산천단에도 「법성촌(法聖村)」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김 검사장의 법호촌 건설계획은 행정당국에서 추진하고 있는 「歸農정착사업」과 맞물리면서 기존의 정착사업에 지원되고 있는 자재들이 법호촌 건설사업 쪽으로 빼돌려지고 있다는 얘기들이 나돌면서 도의회가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도의회, 건설자재 법호촌으로 빼돌려지자 건설사업 제동

도의회는 3월11일 길 지사를 출석시킨 가운데 "법호촌 건설은 사법기관에서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행정기관의 귀농정착업과 구분이 애매모호해 사업주관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밝히라"면서 세간에 나돌고 있는 법호촌의 의혹을 따져 들었다.

이에 대해 길 지사는 "제주도내에는 아직까지도 4.3 사건과 6.25 사변으로 재산을 잃고 방황하는 난민이 많이 있다. 이들에게 생활기반시설을 제공해서 생활의 안정을 도모해주는 것이 귀농정착사업의 기본방침이며, 법호촌 건설 역시 이와 같은 방법으로 난민들에게 생계를 마련해주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사법보호위원회의 협조로서 법호촌에 정착하는 주민들에게 법의 보호를 받도록 해주자는 데에 김창욱 검사장과 합의를 보았을 뿐이며, 나머지 지역에 대해서는 성과를 보아가며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또한 법호촌 건설에는 귀농정착용 자재를 쓸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법호촌의 성격문제에 이르러서는 답변이 곤란하다고 말해 묘한 여운을 남겼다. 즉, 행정기관에서 해야 할 일을 사법기관이 하고 있다는 말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었다.

도의회는 이어 제주읍 건입리 명신사(明神祠) 터에도 법호촌을 건립한다는 항간의 얘기와 기존부락에 끼칠 영향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물었다.

길 지사는 "김 검사장으로부터 하천부지를 사용하겠다는 요청이 있었으나 검토 중에 있을 뿐이며 옛 명신사 부지의 얘기는 금시초문이다"라고 말하고 법호촌은 기존부락을 중심으로 건설해 나가겠다고 답변했다.

김창욱 검사장, "법호촌 질의 도의원 검찰로 소환하겠다" 파문

이 같은 도의회의 추궁은 김창욱 검사장을 자극했다.
김 검사장은 도의회가 길 지사를 상대로 집중질의가 있은 다음날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나는 4.3 사건과 6.25 사변으로 갈 곳이 없게 된 이재민들에게 정착의지를 심어주기 위해 법호촌 건설을 추진하고 있는 것인데도 도의회가 마치 내가 행정기관에 압력을 넣는 사람처럼 비치게 함으로써 나의 명예를 훼손시켰다"면서 "당시 질의를 했던 의원들을 소환해서 진의를 밝히고자 하며, 도의회에 출석하여 답변하고 싶다"면서 도의회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터뜨렸다.

김 검사장의 「도의원 소환」발언은 곧 도의회 뿐만 아니라 제주사회에 상당한 충격을 던졌다. 도의원이 신성한 의회에서 발언한 문제를 놓고 검찰이 어떻게 의원을 소환할 수 있느냐는 힘의 싸움으로까지 번져갈 조짐을 보였다.

더구나 법호촌 문제는 김 검사장이 3월30일과 31일자 제주신보에 「제주도의회에 일언(一言)함」이라는 제하의 글을 기고함으로써 더욱 파문을 일으켰다.

김 검사장의 기고문은 다음과 같다.

"지난 3월11일에 있었던 법호촌에 대한 도의회 질의는 검사장이 무슨 불법을 행하거나 행정기관에 간섭이나 하는 사람처럼 불명예를 입혀 분노를 느꼈다. 그래서 도의회에 출석해 답변하고 싶다고 했으며 의원들을 소환하고자 했던 것은 누구의 선동을 받고 나를 비난하기 위해 질의했던 것으로 의심치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부득이 질의자인 김찬익 의원 등을 호출, 질의의 진의를 조사코자 한 것이다. 그런데도 김 의원은 내가 의회에서 해명하고 싶다고 하는 것조차 피의자로 간주하고 있다.

또 행정기관을 간섭하고 귀농정착 자재를 사용한다고 했는데 귀농정착과 법호촌 건설은 CAC원조물자로 추진되는 것이며 법호촌 건설에는 귀농자재를 빌리기는커녕 휴지 한 장도 필요치 않다. 그러므로 해당 의원은 자진해서 진의를 설명해주기를 바란다"

이는 사실상 도의회에 대한 정면 도전이나 다름이 없는 글이었다.
도의회는 김 검사장이 기고문이 신문에 발표된 된 다음날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김 검사장의 의회경시적인 태도를 규탄하는 한편 반박성명을 내고 이 사실을 중앙요로에 보고하기 위해 6명의 도의원을 대표로 선출하여 상경 시키기로 했다.

도의회, 검사장 기고에 발끈…'의회경시풍조' 중앙정부 상경단 선출

4월3일 전인홍 의장은 "김 검사장의 기고문은 매우 유감스러운 것으로서 지난번 도의회에서의 질의는 법호촌의 의구심을 풀기 위한 의결기관의 당연한 일이며, 이에 대해서는 어떠한 사람도 간섭할 권한이 없는 것이다. 더구나 지방자치단체의 의결기관인 의회에 대해 의원들을 소환하여 검사장의 비난진위를 조사하겠다는 것은 도의회를 협박하는 것이며 도민들을 무시하는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하고 김 검사장과의 전면전을 선언했다.

검사장과 도의회의 마찰은 길성운 지사와 지역유지들의 중재에도 불구하고 전인홍 도의장과 김창욱 검사장간의 노골적인 감정싸움으로까지 비화됐다.

김 검사장은 전 의장의 성명에 또다시 반박 성명을 내고 "협박이란 말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이며 오해를 풀기 위해 출석을 요구한 것이 도의회에 대한 간섭이고, 사법기관의 위신확보를 위해 신문에 기고한 것이 협박이 될 수 있느냐. 도의회는 협박이란 뜻도 모르고 있으며 감정을 앞세우지 말고 글을 정심(正心)으로 읽어보라. 직권으로 호출하고 싶지 않아서 자진출두를 요구한 것이다. 전인홍 의장이 도의회에 대해 어떠한 기관도 간섭할 수 없다고 하나 사법기관의 불명예를 씻기 위해 그 기회를 요구한 것은 간섭이 아니다"며 전인홍 의장을 신랄하게 몰아세웠다.

김 검사장은 도의회가 진정단을 서울에 파견하기로 한 데 대해서도 "도의회가 중앙에 가겠다는 것은 좋은 일이며, 국회에서 문제를 일으켜 법호촌을 전국적으로 선전해주면 얼마나 고마운 일이냐. 악(惡) 중에서 가장 큰 악은 남의 선의를 악으로 왜곡하는 것이며 선을 악으로 보복하는 것이다"고 힐난했다.

전 의장과 김 검사장 간의 대립이 점점 사회문제로 확산될 움직임을 보임에 따라 길 지사와 신상묵 경찰국장 등 기관장과 지역유지들은 어떻게 든 수습책을 찾아 보려고 노력했다.

길 지사는 도의장과 검사장을 개별적으로 만나 화해를 종용했다. 또 제주신보 신두방 전무 등은 김옥현 의원, 김선희 의원, 김차봉 제주읍장 등을 불러 수습책을 논의하면서 도의회가 먼저 양보하도록 설득했다.

그러나 도의원들은 진정단 파견은 도의회의 의결사항임으로 변경할 수 없는 것이라고 화해를 거절했다.

길 지사, 긴급 기관장 회의 소집했으나 양측 화해 주선 실패

법호촌 문제는 점점 걷잡을 수 없는 쪽으로 확대돼 나갔다. 그런 와중에서도 김 검사장은 법호촌 건설사업을 계속 추진해나가는 배짱을 보이면서 경찰국 주최의 「법호촌 웅변대회」를 여는 등 도민들의 호응을 얻어내는 일에 주력했다.

길 지사는 4월9일 두 기관 사이의 분쟁을 원만히 해결하기 위해 기관장회의를 긴급 소집했다. 이날 기관장 회의에서는 당사자인 전인홍 도의장과 김창욱 검상장 모두 참석했다.

먼저 김 검사장이 "신문에 게재된 나의 입장에 대해 도의회가 오해를 풀고 이해를 한다면 여러분의 기대에 적극 노력하겠다"는 말로 먼저 화해의 손짓을 해 보였다.

이어 전 도의장은 "개인적으로는 김 검사장을 존경하며 기관간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나 도의장 개인의 의사로서는 전체 도의회의 결정을 번복할 수 없다"고 말해 검찰에 대한 감정의 골이 매우 깊음을 비쳤다.

참석한 기관장들은 팽팽한 두 기관의 감정을 풀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난상토론식의 해결보다는 조정위원을 선출해 개별중재에 나서는 것이 좋다는 데에 합의하고 김헌섭(金憲燮) 법원장 박재우(朴在祐) 도총무국장 등 6명을 위원으로 선출했다.

그러나 바로 다음날 도의회가 진정단 6명을 상경시킴으로써 기관장 회의의 중재노력은 시도도 해보기 전에 무산돼 버렸다. 그런가 하면 검사장도 법무부의 상경지시를 받고 4월11일 서울로 간 뒤 8일만인 19일에 귀임했다.

그때 제주지역에는 상경중인 도의회 진정단과 검사장이 서울에서 회동하여 극적으로 화해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았으나 김 검사장은 "도의회 대표와 서울에서 만날 시간도 없었으며 중앙에서 불원간 나에 대한 도의회의 명예훼손혐의를 조사하기 위해 내려오게 될 것"이라고 말해 모처럼 기대했던 화해의 기미조차 원점으로 돌려놓는 것이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0 / 400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순 추천순 이 기사에 달린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