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사는 세상] 틀니 때문에 질긴 고기를 못 드시는 어머니

지난 주말 어머니가 계신 서귀포에 다니러 갔었습니다. 결혼 초기에는 아무리 못해도 두 주에 한 번은 어머니를 뵈러 가야지 생각했는데 이제 애를 둘 낳고 하다보니 이 핑계 저 핑계에 그게 뜻대로 되질 않습니다. 차로 한 시간, 지척인 거리를 두고 저는 참으로 무심한 아들입니다.

어머니를 뵐 때마다 많이 늙으셨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도 부러 어리광도 부리고 전화 한 번 하더라도 살갑게 대하지만 늘 마음 한 구석은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과 애틋함이 자리 잡고 있음은 어쩔 수가 없습니다.

저와 아내, 그리고 아들 원재, 돌을 넘긴 지운이까지 해서 어머니와 얼굴을 맞대고 점심을 먹으니 참 좋습니다. 점심을 먹고 이 얘기 저 얘기를 하는데 자꾸 어머니가 바튼 기침을 합니다.

어디 안 좋으냐고 하니까 가끔씩 이런다고 하시면서 별일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젓습니다. 늘 별 이상 없겠거니 그냥 넘어가다 보니 잔병치레가 오히려 잦은 것 같습니다. 이 참에 어머니를 집으로 모시고 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전부터 아내와 그런 얘기를 나누었던 차였습니다.

   
 
▲ 아들 원재입니다. 원재는 스스로 파워포스 포즈가 제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강충민
 
"엄마. 우리 집에 갈래요?" 하고 물으면서 살며시 아내에게 신호를 보냈습니다.

"그래요 어머니 저희 집에 가세요. 밤에도 보일러 기름 아낀다고 춥게 주무셔서 항상 감기를 달고 사시잖아요…."

평소답지 않게 아내가 호들갑스럽게 같이 거듭니다.

"할머니, 우리 집 가요… 네?" 하고 원재도 어머니를 보며 애처롭게(?) 말합니다. 원재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제가 정리를 했습니다.

"그래요. 엄마 우리 집에 가요. 밭일이 걱정되면 토요일이나 일요일 우리랑 같이 오면 되구요…."

그렇게 청하니 어머니가 마지못해 그럼 며칠만 있으마 하셨고 저희랑 같이 제주시 우리 집으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가 오시니 집안에 어른이 계시다는 생각도 들고 참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자주 뵙지 못하는 미안함을 약간은 덜 수 있었습니다.

평소의 식습관을 약간은 바꿔야 했습니다. 왕 멸치를 넣은 배추된장국을 자주 끓였고 진밥을 좋아하시는 어머니에 맞춰서 밥할 때 물의 양을 조금 더 넣었습니다. 저나 아내나 원재나 딱히 음식에 대해 가리거나 하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어머니의 기호에 맞춰서 음식을 먹는 것도 과히 나쁘진 않았습니다.

단지 찌개를 끓일 때 맵고 짠 것을 싫어하시는 어머니를 위해 양념을 하기 전에 미리 덜어놓아야 하는 불편함은 있지만 뭐 큰일은 아니었으니 말입니다. 오히려 어머니를 위한 그 정도의 수고는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었습니다.

어제 퇴근 무렵 아내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저와 아내는 맞벌이 부부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집안일도 나누어서 하는데 집안청소나 빨래는 거의 아내의 몫이고 주방일은 제 몫입니다. 가사분담을 한다고는 해도 아무래도 아내가 훨씬 더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돈가스 만들어 먹자. 원재도 좋아하잖아."

아내가 원재를 핑계로 저에게 돈가스 만들기를 은근히 종용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돈가스를 좋아하는지라 그러자고 했고 퇴근 무렵 회사 근처 마트에 들렀습니다. 찬장에 빵가루와 밀가루는 여분이 있는 것 같아서 돼지고기만 사려고 정육코너에 들렀습니다.

"돈가스용으로 돼지고기 오천 원 어치만 주세요. 한 번 눌러주시구요" 하고 주문을 하는데 순간 어머니 생각이 났습니다.

"저기 죄송한데요. 삼천 원어치 더 주시는데요, 그건 갈아서 주세요."

다들 아시겠지만 돈가스용 돼지고기로는 오천 원어치여도 양이 무척 많습니다. 게다가 돈가스로 만들면 일곱 장은 족히 넘습니다. 거기에다 다시 간 돼지고기를 삼천 원어치 더 산 것입니다.

   
 
▲ 튀기기 바로 전의 돈가스입니다. 크기가 작은 것은 어머니가 드시기 위한 것입니다. 아무래도 갈은 것이다 보니 크기가 작습니다.ⓒ강충민
 
이렇게 어머니를 위한 돈가스 재료를 따로 산 이유는 바로 어머니의 치아 때문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이가 아예 없으십니다. 치아 전체가 틀니이기 때문에 질긴 고기는 씹을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그렇게 산 돼지고기를 집에 돌아와서 밀가루, 우유와 사과즙을 같이 섞은 계란물, 빵가루의 순으로 옷을 입혀 자글자글 돈가스를 튀겨 내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어머니의 돈가스도 같이 튀겨 내었습니다.

다 튀겨 내고 밥상을 차리고 있을 즈음 아내가 애들을 데리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아내가 옷을 갈아입는 동안 저는 후다닥 저녁을 차려 냈고 저와 아내 그리고 아들과 어머니, 이렇게 밥상을 마주 하고 앉았습니다. 돌이 막 지난 딸아이는 밥상머리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제비새끼처럼 저와 아내가 조금씩 주는 밥알을 받아먹었습니다.

"아빠, 할머니 앞에 있는 것이 더 맛있게 보여."

아들이 어머니 앞에 놓여 있는 돈가스를 보며 한 마디 합니다. 어머니 앞에 있는 돈가스는 손으로 뭉친 다음 편편하게 했기 때문에 크기는 작고 두께는 두꺼웠습니다.

"어 그러고 보니 다르네." 아내도 한 마디 거듭니다.

"응 엄마 거는 돼지고기 갈았어. 씹기 편하라고."

"뭘 그냥 하지 번거롭게." 어머니가 그렇게 말씀을 하시면서도 예전보다는 훨씬 쉽게 그리고 많이 드십니다.

어머니는 당신 앞에 놓인 돈가스를 손자의 밥그릇 위에 얹어 놓습니다.

"할머니 많이 드세요. 전 이거 먹을래요." 아들이 도로 돈가스를 어머니 접시에 놓습니다. 아들의 어른 같은 말에 순간 울컥해집니다.

그렇게 저녁을 먹으니 참 행복해집니다. 어머니가 평소보다 많이 드신 것 같아 참 기분 좋습니다.

전 제 아들이나 딸이 효자였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어머니에게 해 드리는 것은 하나도 없으면서 자식들은 효자이길 바라는 참 나쁜 놈입니다.

"아 가시리 가고 싶다."

혼자 그림을 그리다 잠이 든 아들을 안방에 눕히는데 이불을 펴며 아내가 한 마디 합니다. 가시리는 제 처갓집입니다. 그러고 보니 처갓집에 안 가 본 지도 꽤 오래 되었습니다. 다음 주말에는 처갓집에서 돈가스를 만들어 볼까 합니다.

※ 이 글은 강충민 님이 직접 운영하는 제주관광안내사이트 '강충민의 맛깔스런 제주여행(www.jeju1004.com )'과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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